교향곡 제7번은 그 전의 작품과 궤를 달리하며 드보르자크의 최후의 Trilogy(제7번, 제8번, 제9번)의 첫 시작이 된다. 이 곡 이전의 작품에서, 드보르자크는 멜로디의 빈약함으로 고생하기 보다는 넘쳐나는 멜로디를 주체하지 못하여 고생하였다. 결과적으로 곡의 진행이 지리해지거나 논리적으로 수미일관(coherent)하지 못하여 통일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그러나 제7번은 이런 단점을 훌륭히 극복하고 악상끼리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한 통일성을 획득하였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곡 전반에 걸쳐 브람스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 것이 독자성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Francis Tovey는 이 곡을 그의 최후의 삼부작 중에 가장 위대한 곡이며 슈베르트의 제9번 교향곡, 그리고 브람스의 4개의 교향곡에 비견되는, 베토벤 이 후 작곡된 교향곡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서슴없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분에 넘치게 유명해진 제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곡의 분위기가 너무 어둡다는 데도 그 이유는 있다. 또 하나는 테마의 선율이 너무 길어 당시 평론가들이 그 프래이징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있다고 한다.
문제는 자신들의 무지를 탓하는 대신 드보르자크를 비판할 때 늘 따라다니는 상투적인 말인 “나이브하다” “논리적이지 않다” 등의 비판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곡은 아직도 정당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제7번의 느낌을 단적으로 말하면 비극적 에너지가 충만한 아름다운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비장하고 역동적인 제1악장, 아름답고 수수께끼 같은 선율의 만화경인 애절한 제2악장, 불 같은 에너지가 분출되는 제3악장, 그러나 결국 비장미를 한껏 보여주고 폭발하는 제4악장의 구조로 되어있다.에너지는 충만하고 폭발하되 그 방향이 비극적이라 듣는 기분이 늘 특이하다. 큰 슬픔도 삶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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