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ín Dvořák -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
일명 〈신세계 교향곡〉으로 불리는 이 곡은 1893년에 작곡되었다. 당시 드보르자크는 미국 국립 콘서바토리(National Conservatory of Music of America)의 원장으로 재직하며 1892년부터 1895년까지 콘서바토리의 원장직을 맡았다. 그가 남긴 9개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교향곡으로 손꼽히는 동시에, 낭만주의 시대의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일 것이다.
미국 땅에 발을 내딛은 드보르자크 드보르자크가 미국행을 초대받았던 것은 1891년 여름이었다. 그는 미국 국립 콘서바토리의 두 번째 원장으로 취임해줄 것을 요청받았고, 그가 제시받은 연봉은 15,000달러였다. 이 액수는 여섯 자식을 둔 50살의 드보르자크에게 꽤 큰돈이었고, 그가 프라하 콘서바토리에서 받는 연봉보다 25배나 되는 액수였다. 그러나 자신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드보르자크는 처음에 이 제의를 거절한다. 하지만 그를 초청한 쟈넷 마이어 터버(Jeanette Meyer Thurber)는 드보르자크의 작곡가로서의 명성, 그리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미국음악을 건립’하는 데에 있어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녀의 설득으로 드보르자크는 1892년 9월 27일 뉴욕 항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드보르자크의 손에서 새로 태어난 미국적인 것들 드보르자크가 미국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선택한 장르는 교향곡이었다. 작곡가로서 그가 원했던 것은 ‘미국 음악에 대해서’ 쓰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미국 음악원에서 드보르자크의 학생이었던 해리 버레이(Harry Burleigh)는 흑인 영가와 스티븐 포스터(Stephen Collins Foster, 1826~1864)의 플랜테이션(Plantation) 노래(일종의 노동요)들을 연주하는 데에 초청을 받았는데, 이를 통해 알게 된 음악은 드보르자크를 매혹시켰다. 또한 드보르자크는 미국 원주민 음악 자료들을 사보해놓은 자료들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이 선율들을 그대로 자신의 음악에 가져다가 쓰는 대신에, 드보르자크는 미국 작곡가들에게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어떻게 그들이 작업해야 할지’를 보여주었다. 1893년 12월 15일 뉴욕 필이 〈신세계 교향곡〉을 초연하기 바로 전 날, 드보르자크는 〈뉴욕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제가 이 나라에 발을 내디딘 이래, 저는 흑인과 인디언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민족의 성격, 특징들이 바로 그 음악들 안에 담겨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원주민의 선율들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 새로운 교향곡에서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정신입니다. 실제로 저는 어떤 멜로디도 직접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그 음악의 특징들을 나타내는 주제들을 썼고, 현대적인 리듬, 화성, 대위, 오케스트라 색채 등으로 이 주제들을 발전시켰습니다.”
제1악장 아다지오-알레그로 몰토
교향곡은 첼로가 연주하는 느린 서주의 멜랑콜리한 선율로 시작한다. 이 주제가 갑작스러운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내면, 알레그로 몰토로 템포가 바뀌고 박자도 2/4로 전환되어 프렌치 혼이 시작하는 강력한 제1주제가 등장한다. 제2주제는 플루트와 오보에로 연주되는 애상적인 선율로 등장한다. 이 제2주제는 도리안 모드로 구성되어 이 곡에서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내는 데 공헌한다. 이와 함께 전반적인 선율에서 등장하는 5음음계는 이 곡에 ‘민속적인’ 감성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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