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게 하고 듣기
국악을 지금까지 많이 들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 볼륨을 크게 하고 듣는 것은 좀 부담이 될 수 있다.
국악기의 음색이 낯설게도 느껴지고, 또 어떤 음악은 너무 느려서 지루하게도 느껴지고,
또 어떤 음악에서는 신명하고 경쾌한 듯 싶지만, 또 조금은 시끄럽고 어수선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음악을 듣는 일이 좀 부담이 되고, '
왜 나는 우리 음악인데 이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나'하면서,
음악적 재미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포기 하게 된다.
하지만, 국악을 마치 생활의 배경 음악처럼, 책을 읽거나,
식사를 할 때 들릴 듯 말 듯 작게 틀어 놓으면 국악을 듣는 일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런 무의식적인 일상 속에서 국악을 듣는 일이 습관이 되면,
얼마 지나면 이런 음악에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관심이 갈만한 음악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볼륨을 높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가 어딘가에서 작은 소리가 나면 왠지 더 귀 기울여 지는 것인데,
국악을 우선 작게 듣는 방법은, 바로 이런 심리를 적절히 이용한 것이다.
2. 쉬운 곡부터 듣기
처음부터 긴 곡이나, 어려운 음악을 들으려 하지 말라.
국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어려운 곡을 들으면 쉬 식상을 하게 된다.
"이런 것도 국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되는 곡부터 듣는 것이 좋다.
'쉬운 것부터 듣기'는 '국악 같지 않은 국악듣기', 뭐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모두다 국악기로 연주한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국악기와 서양악기, 또 국악과 재즈와 협연하는 '크로스오버'곡을 처음에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악기는 아무래도 그 소리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기 쉬우니까, 서양악기와 협연하는 곡을 통해서
우선은 친숙한 분위기에서 국악기의 독특한 매력을 아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재즈그룹 레드선이 함께 하는 음악이나,
신해철이 만든 넥스트의 곡 가운데서 몇 곡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이른바 '국악가요'라고 부르는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같은 것이 좋은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영동이나 김수철, 또 슬기둥이나 어울림,
이런 음악들은 시중에서도 쉽게 구입해서 들을 수 있는 곡들이고,
또 김민기나 송창식, 정태춘 등의 노래 속에도 국악적인 정서가 진지하게 배어있는 곡들이 많으니까,
이런 곡들을 들으면서, 깊이 있는 우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소양 내지 훈련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거꾸로 듣기
이 방법은 두번째 방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는데,
옛 전통음악 보다는, 요즘에 만들어진 국악을 먼저 듣는 방법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이런 책들이 잘 읽히는 것처럼
비교적 가까운 시기의 역사는 먼 시기의 역사보다는 관심이 더 가게 마련이고, 또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란 말도 있고, 또한 현재를 통해서 과거를 바라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음악도 혹시 현대의 음악이 과거의 음악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현재의 음악을 듣는 것이 듣기에도 편하고 또 거슬러 올라가서
'이 음악 이전의 음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며 우리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는 동기 유발 효과적이다.
수제천이나 영산회상, 종묘제례악 등과 같은 전통 음악은 명곡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음악은 어렵고 연주 시간이 길기 때문에
우선은 요즘 시대의 쉬운 곡들을 듣고 나서 세월을 역류해서 올라가다 보면,
수제천·영산회상과 같은 음악의 진정한 멋을 곧 느끼게 될 것이다.
4. 움직이며 듣기
민속악은 신명나게 변주가 된다.
이런 음악을 가만히 앉아서 경직된 자세로 듣다보면,
그 음악이 가지고 있는 많은 음악적 의미를 놓치기 쉽다.
또 우리 전통 음악의 상당수가 과거 춤 음악으로 쓰였는데,
그러니까, 그 소리 속에 많은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음악을 들을 때, 그 장단 리듬에 맞추어서 몸을 자유스럽게 흔들어 보는 것도
음악을 깊이 있게 느끼는데 좋은 지름길이 된다.
궂이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전통적인 춤과 같은 몸짓이 아니라도 좋다.
마음 내키는 데로, 자신의 몸이 하는 데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방안에서 문을 걸고
음악을 들으면서 몸을 움직여도 좋고 또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면,
의자에 앉아서 발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리듬을 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러는 가운데서 우리 음악은 어떻게 독특한 가락을 이끌어 가는지
또 우리 음악만의 독특한 리듬인 장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런 것들을 몸으로 직접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5. 상상하며 듣기
어떤 음악이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음악에 관한 정보부터 많이 알려고 하면 그 음악만의 독특한, 본질적인 매력을 놓치기가 쉽다.
또 이런 방법은 음악에 관해 싫증을 내게도 할 수 있는데,
어떤 음악과 친해지는 아주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마음대로 상상이나 공상을 하는 것이다.
[수제천]과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역사극의 한 장면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고,
또 더 나아가서 '내가 왕비가 되고 공주가 되어서 대궐 뜰을 걷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더욱 좋다.
그렇게 되면 그 음악 속에 담겨진 속 깊은 느낌이 아주 잘 다가올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음악이 연주되던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지냈을까 하고
마음껏 상상을 하면서 마치 이 음악이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배경 음악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때로는 왕비가 되고, 신사임당이 되고, 황진이가 되고, 노천명 시인이 쓴 시의 한 구절처럼,
예전 어느 먼 산골에서 밭이나 갈며 사는 이름 모를 여인이 되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악과 관련해서 상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가 쏠쏠한지는 아마 경험해본 사람만이 그 묘미를 알 것이다.
많은 우리 음악은 '표제음악'으로 되어 있다.
음악은 절대 음악과 표제 음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양음악으로 예를 들자면, 베토벤의 [영웅] [전원] 등은 표제음악이 되는 것이고,
특별한 명칭이 붙지 않고 단지 교향곡 1번, 협주곡 2번 등으로 불리는 것이 절대음악인데,
우리 한국음악은 특히나 표제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리고 이런 제목이 붙은 곡들은 대개가 낭만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작품의 제목을 화두로 삼아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듣는다면,
우리 음악이 더 의미있게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가슴으로 머리로,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6. 찾아가서 듣기
우리 음악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게 되면,
국립 국악원이나, 우리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장을 직접 찾아가 보자.
"한국 음악은 현장(現場)의 예술(藝術)"이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자면, '시나위' 같은 음악은 그 음악을 연주하는 현장에서 직접 청중들이 듣는 가운데
새롭게 만들어지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악보에 의존해서 그 악보에 적혀있는 대로 그대로 재연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똑같은 시나위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이렇게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즉흥성이 강한 음악들은 그 음악이 연주되는 현장에서 들어야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판소리도 물론 마찬가지다.
예전 명창들은 관객의 수준을 보고 자신의 소리의 길이나 깊이를 정했다고 한다.
이른바 '귀명창'이란 말처럼, 판소리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청중들이 많이 모였다 하면,
소리도 길게 하고, 또 어려운 대목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불렀지만
그 반대로 청중들의 수준이 떨어지면,
이른바 '토막소리'라고 해서 대중적으로 흥미를 끌만한 한 부분을 택해서,
적당히 우스운 재담을 섞어가면서 불렀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좋은 청중이 좋은 음악을 만든다는 말은 사실이다.
또 '산조'같은 음악도 현장에서 들으면 그 느낌을 더욱 진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산조는 길게 타면 1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이런 것은 도저히 방송을 통해서는 제대로 전달되기가 힘들다.
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타는 연주가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같은 것도
현장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작은 감동이다.
무엇보다도 현장의 강점은, 생음악을 온전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 확성장치, 그러니까 마이크 같은 것을 통해서 듣는 악기소리보다 이런 확성장치없이,
자연음으로 듣는 우리 악기소리가 더욱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찾아가서 듣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7. 여럿이 함께 듣기
우리 음악을 '나눔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우리 음악 속에는 공동체 사회의 흥과 신명이 있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노동요 같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불러야 가치가 있고,
또 야외에서 펼쳐지는 탈놀이 같은 것도 결국 이런 노래와 놀이를 통해서 여러 사람이 하나됨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런 음악을 들을 때는 역시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가서 함께 보며 함께 느낄 때 참 의미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국악 공연장이나 놀이마당은, 동아리 친구나 가족, 가능하다면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가서 보면,
더욱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약 어떤 친구를 선택해서 함께 가고자 한다면, 국악이나 전통 문화를 아는 친구와 함께 가는 것도 좋다.
그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음악적 정보나, 그 음악을 둘러싼 배경지식, 또 사회, 문화적 맥락을 살피면서
한 음악에 관해 온전하고 깊이있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으로 우리 문화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과 함께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외국인과 함께 가면, 자신이 우리 문화나 우리 음악에 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하니까,
미리 준비를 해야 하게 되고, 이러는 가운데 우리 음악과 문화에 대한 식견이 넓혀지게 마련일 것이다.
8. 기본 장단 알고 듣기
국악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어떤 방법을 통해 국악과 쉽게 친해질까 궁리를 하고,
단소나 가야금 장구 민요 등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우선은 '장단'을 아는 것이 우리 음악을 배우는 지름길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장단을 배우고 나서는, 라디오에서 국악을 들을 때나,
또 음악회장에서 무릎으로 장단을 짚어가며 들으면 그 음악을 아주 재미있게 느끼면서 들을 수 있게 된다.
우리 음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뉘고, 그 음악들은 많은 다양한 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우선 민속악 장단 다섯 가지 정도를 알게 되면,
이것을 기본으로 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다섯가지 장단으로
굿거리, 세마치,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영어를 처음 공부할 때, 영어 문장의 5형식을 배웠던 것처럼,
그리고 이런 것을 통해 긴 영어 문장을 분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이 생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다섯가지 장단을 알게 되면, 음악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런 다섯가지 장단은 초등학교, 중학교 또 고등학교의 음악교과서 등을 좀 뒤적여 보면 대개가 나온다.
이 다섯가지를 기억해 놓고 음악을 들어보자.
9. 적어가면서 듣기
우리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들으려는 사람들이
우선 국악은 그 곡 제목부터 어렵고 낯설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이다.
오래된 음악들이다 보니, 한자어로 된 제목이 많고,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말들이 많아 어렵게 느껴진다.
또 이렇게 제목이나 용어들이 낯설게 들리니까, 그 음악 자체도 꽤 거리감 있게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음악을 들을 때 꼭 작은 수첩 하나를 준비하고 제목이나 중요한 음악 용어 등을 적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곡을 들려주기 전에 말하는 제목이나 연주가 등을 그저 메모하는 기분으로 적어 보게 되면,
국악 제목이 곧 친근해질 것이다.
사람은 귀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을 더 잘 기억하고,
또 자신이 직접 기록한 것은 훨씬 잘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국악을 들을 때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이면
우리 음악에 대한 이해나 식견을 넓히는데 아주 요긴하게 도움이 될 것이다.
컴퓨터의 경우, 용어를 몰랐을 땐 무척 다루기 힘들지만,
일단 용어를 알게 되면 컴퓨터가 쉽게 느껴진다.
그래서 컴퓨터 용어를 알면 반을 알게 된다고도 하는데, 우리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한달 정도 이렇게 적어가면서 음악을 듣게 되면, 국악에 대한 초보자 수준은 벗어나게 되고,
한 백일쯤 우리 음악을 듣게 된다면, 이제 [국악개론] 정도의 수준은 넘어 설 것이다.
10. 마음 비우고 듣기
어떤 음악평론가는 늘 음악을 들을 때, 그동안 알고 있는 지식을 다 무시하고
늘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의 상태가 된 자세로 듣는다고 한다.
과거의 지식들에 연연해서 음악을 듣게 되면 그 음악이 새롭게 들리지 않지만,
늘 처음 듣는다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면
그 음악 속에 숨겨 있는 또 다른 매력들을 새록새록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악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떤 곡에 대해서 기존의 책이나 해설 등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시각대로 음악을 듣고 즐기고 판단할 수 있는 식견을 기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듣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국악에 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없애는 것에도 도움이 될 듯 하다.
지금 우리가 '국악'이라 부르는 '우리 음악'은 한국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만들어질 음악이다.
또한 시대에 따라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과거의 것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역사의 순환이다.
지금 우리가 국악이라고 부르는 음악이 대부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기에,
이제 음악들이 '국악'이라는 어떤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국악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이나 또는 몇 가지 음악으로 그것을 국악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다.
덧붙여 말한다면, 내가 사회에서 교양인으로서 대접을 받기 위해서 듣는다거나,
무조건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하는 생각으로 해서 국악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전제로 해서 우리 음악을 듣는다면,
결국은 국악의 참 멋은 모르고 피상적인 지식쌓기에 머무르는 것이다.
늘 우리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늘 새로운 느낌으로 우리 음악을 대하는 자세!!
이것은 국악을 감상하는 그 어떤 방법보다도 훨씬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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