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 함께 듣는 흥보가
두번째
[아니리]
하로는 이놈이, 비 오고 안개 다뿍 찐 날, 와가리 성음을 내어 가지고 제 동생 흥보를 부르는듸,
“네 이놈, 흥보야!” 흥보 감짝 놀래, “형님, 저를 불러겠읍니까?”
, “오냐, 너 불렀다. 너 이놈, 네 자식들 장개를 보냈으면 손자를 몇을 놓쳤겠니?
너 이놈, 늙어 가는 형만 믿고 집안에서 헐일 하나 없이 되똥되똥 슬슬 돌아다니
는 게 내 눈궁둥이가 시어 보아 줄 수가 없구나. 요놈. 오날부터서는 네 계집, 자식 쏵 다리고 나가부러라!”
, “아이고, 형님.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고 무엇이고 쓸데없이,
썩 나가! 너, 내 성질 알제, 잉! 만일 안 나가서는,
이놈, 살륙지환이 날것이다, 이놈. 썩 나가!”
[중몰이]
흥보 듣고 기가 맥혀 놀보 앞에 가 꿇어 엎져,
“아이고, 여보 형님. 별안간 나가라 허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까?
이 엄동설한풍으 어느 곳으로 가오리까?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 숙제 주려 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형님, 한번만 통촉하옵소서.”, “이놈, 내가 너를 갈 곳까지 일러 주랴!
잔소리 말고 나가거라!”흥보 기가 맥혀 안으로 들어가서,
“여보 마누라, 들어 보오. 형님이 나가라 허니 어느 영이라 거역허며,
어느 말씀이라고 안 가겄소? 자식들을 챙겨보오. 큰자식아, 어디 갔나,
둘쨋놈아, 이리 오너라.”이삿짐을 챙겨 지고 놀보 앞으 가 늘어서서,
“형님, 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옵소서.”, “잘 가거라.” 울며불며 나갈 적에,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부모님이 살아 생전으는 네것 내것 다톰 없이,
평생으 호의호식, 먹고 입고 쓰고 남고 쓰고 먹고도 입고 남어 세상 분별을
몰랐더니, 흥보놈의 신세가 일조에 이리 될 줄을 귀신인들 알겼느냐?
여보소, 마누라. 어느 곳으로 갈께? 아서라, 산중으로 가자. 경상도는 태백산,
전라도로는 지리산. 산중으 가 사자 허니 백물이 귀하여 살 수 없고.
아서라, 서울로 갈까? 서울 가서 사자 허니 경오를 모르니 따구만 맞고,
충청도 가 사자 허니 양반들이 억시여서 살 수가 없으니, 어느 곳으로 간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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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 - 박봉술
흥보가 2 / 흥보 쫓겨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