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락[국악]

[스크랩] 사설과 함께 듣는 흥보가(세번째) - 박봉술

P a o l o 2006. 11. 3. 12:59
 
 
 
사설과 함께 듣는 흥보가 
세번째
 

 

[아니리]

그렁저렁 돌아다닐 적에, 고을에를 찾아 들면 객사, 동대청에도 좌기를 하야 보고,

빈 물방아실에도 좌기를 하야, 마누라 시켜 밥 얻어오면 고초장

아니 얻어왔다고 담뱃대로 때려도 보고. 흥보가 이렇게 풍마우습을 젂일 제,

어떻게 되겄느냐? 그렁저렁 성현동 복덕촌을 당도했는듸,

일간 초옥이 비었거늘, 그 동네 사람들이 흥보 내외를 인권하야 거다가

몸을 잠시 의탁하여 있을 적에, 흥보 내외 금실은 좋던가, 자식들을 낳았으되,

깜부기 하나 없이 아들만 똑구 형제를 조롯이 낳았것다. 권솔은 많고,

먹을 것이 없어 노니, 흥보 자식들이 배가 고파 노니, 밥을 달라,

떡을 달라, 저그 어머니를 조르는듸 이런 가관이 없던가 보더라. 한놈이 나앉이며,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배고파 나 죽겠소, 밥 좀 주오, 밥 좀 주오.

”또 한놈 나앉이며, “어머니, 나는 거 호박 시리떡 좀 하여 주시오.

그놈이 거 두 가지로 답넨다. 따수면 따수아도 달고, 식으면 식은 대로

호박 시리떡이 달지요.”또 한놈 나앉이며, “어머니,

나는 거 육계장국에다가 흐헌 쌀밥 좀 말아 주시오.”또 한놈 나앉더니마는,

“어머니, 나는 거 영계탕, 생치구이, 어만두, 육만두, 두누 산적 좀 해 주시오,

먹어 볼라요.”, “어따, 그놈, 입맛도 안다.”또 한놈 나앉이며,

“압따, 그놈들이 음식타령을 하여 노니까 속이 니웃니웃하여 죽겠구려.

나는 아무 것도 말고, 우유차나 한 그릇 뜨끈뜨끈하게 끓여 주시오.”,

“아이고, 이놈아, 나는 우유차 이름도 모린다.”흥보 큰아들놈이 썩 나앉더니마는,

“어머니.” “아이고, 이놈아. 너는 왜 코 안 뚫은 코동부사리 목성음으로 어미를 부르느냐?”,

“어머니 아부지 공론허고 날 장가 좀 들여 주시오.

어머니 아버지는 거 손자도 안 늦어가요?”흥보 마누라, 이 말을 듣더니마는,

[진양]

“어따, 이놈아, 야, 이놈아, 말 듣거라.

우리가 형세가 있고 보면 네 장개가 여태있으며, 중헌 가장을 헐벗기고,

어린 너희들을 벗기겄느냐? 못 먹이고 못 입히는 어미 간장이 불이 난다. 이놈들.” 



 

 

박봉술

박봉술은 1922년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나서 순천에서 자라났다.

어려서 형인 박봉래와 박봉채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서울에 올라와서

송만갑에게 잠깐 배웠는데, 박봉래는 송만갑의 으뜸 제자로 꼽히던 명창이었다.

박봉술은 ‘아이 명창’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어릴 적부터 소리를 잘하였으나

변성기에 소리를 너무 심하게 닦다가 목이 상해 버렸다.

소리가 거칠어지고 높은 소리인 상성은 나지 않게 되자 뜻을 잃은 적도 있으나,

다시 일어나서 소리 공부를 계속하여 그 공력으로 명창이 되었다.

 지금도 목이 궂으나, 소리 공력으로는 그에 맞설 명창이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을 모두 익혔는데,

그 가운데서도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에서 능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그의 <수궁가>는 전통적인 동편제의 더늠을 모두 간직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73년에 중요 무형 문화재 판소리 <적벽가>의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흥보가 - 박봉술

흥보가 / 흥보 가족 배 곯는데...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풀처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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