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곡을 통해 가장 활약이 돋보이는 인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장엄한 합창과 아리아들 사이사이에 나타나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담담하게
노래하는 ‘복음사가이다. 그는 말하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를 통해, 때로는 초연하게 때로는 극적으로 복음서 내용을 읊조린다. 레치타티보는 대부분 복음사가가 노래하지만 때때로 예수와 베드로, 유다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각기 자신의 대사를 노래하는데, 바흐는 특히 예수가 등장하는 부분에 현악기의 반주를 곁들여 좀더 풍부하고 장엄하게 처리했다.
실제 복음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레치타티보이지만, [마태 수난곡]의 백미는 역시 웅장한 합창이다. 제1부의 첫 도입 합창으로부터 제2부의 마지막 합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합창들이 계속되면서 예수 수난의 이야기에 깊이를 더해준다. 바흐는 각 장면에 따라 다양한 양식의 합창을 선보이는데 그 효과는 매우 놀랍다. 예를 들어 제54곡(신 전집에서는 제45곡)은 사형 판결을 받는 예수의 이야기가 레치타티보와 합창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 외치는 군중 합창은 매우 강력한 푸가로 제시되고, 제59곡(50a)에서 이 푸가는 다시 한 음 높아진 B음에서 시작되어 점점 거칠어지는 군중의 분노를 사실적으로 표현해준다.
또한 제33곡(27)에서는 이중창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가운데 합창이 짧게 응답하는 독특한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 곡에서 소프라노와 알토가 ‘마침내 나의 예수는 붙잡혔다’는 내용의 이중창을 부르는 동안 합창단이 ‘그를 풀어 주라! 그만 둬라! 묶지 마라!’는 내용의 짧은 악구들을 노래하며 긴박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후반부에서는 두 개의 합창단이 모방 악구가 포함된 대위법적인 다성 합창을 부르며 안타깝고 복잡한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두 개의 합창단을 배치하여 입체적인 음향을 만들어내는 이중 합창 기법은 초기 바로크 시대에 주로 유행했던 것이었지만 바흐는 이를 [마태 수난곡]에서 적절하게 활용하여 큰 효과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깊은 감정을 전하는 코랄, 유려하게 흐르는 아리아
[마태 수난곡]에는 이러한 다성적인 양식의 합창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교회 성가와 같이 부드럽고 화성적인 코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복잡한 다성 합창과 단순한 레치타티보를 유연하게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코랄은 예수의 수난 사건을 지켜보는 신도들의 느낌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제21곡(15)의 경우 음악이 진행되는 동안 몇 차례 반복되어 점차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숨을 거두시는 예수를 묘사한 부분에 이르러서 이 코랄의 화음은 반음계적으로 변형되어 깊은 슬픔 속에 빠진 신도들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듯하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주는 또 하나의 기쁨은 유려하고 표정이 풍부한 다양한 아리아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슬픔이 가득 배어 나오는 제48곡(40) 알토를 위한 아리아는 인상적인 바이올린 독주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명곡이다. 또한 플루트의 활약이 돋보이는 제58곡(49)은 [마태 수난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프라노 아리아로 꼽힌다. 이러한 아리아들 역시 화성적인 코랄과 마찬가지로, 웅장한 합창과 조용한 레치타티보 사이에 끼어들어 달콤한 선율미를 통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