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아이디어를 하인리히 하이네에게서 얻었던 바그너는, 다시 한 번 하이네의 풍자적인 시를 바탕으로 하여 〈탄호이저〉를 구상하였다. 그는 하이네의 시 뿐만 아니라 루트비히 티크의 소설 《진실한 에카르트와 탄호이저》와 15세기의 민담 ‘탄호이저의 노래’, 그리고 벡슈타인이 수집한 튀링겐 설화집을 참고로 대본을 완성했다.
-바르트부르크 성-
이렇게 완성된 〈탄호이저〉의 대본은 독일 오페라의 신화적 요소와 프랑스 그랑 도페라의 중세적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다. 바그너는 역사적 실존인물인 14세기의 한 음유시인의 이야기와 베누스 신화를 결합시킴으로써, 역사적 요소와 신화적 요소를 하나로 묶었다. 무대의 배경 역시 바르트부르크 성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신화적인 베누스베르크로 양분되도록 연출했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앞 광장-
더욱 중요한 요소는 악기편성에 있다. 프랑스의 오페라 양식에 따라 무대 위에 관악기 앙상블을 편성하였으며, 발레 장면도 삽입하였다. 하프를 사용한 것 역시 프랑스적인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금관악기의 편성에 있어서는 독일의 관습을 따라서 12개의 발트호른을 사용했다.
-바그너가 일했던 젬퍼오퍼 극장-
초연의 실패와 개정
〈탄호이저〉를 작곡하던 당시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연출과 지휘를 맡아 초연하기로 결심한 바그너는 3막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고민하다가, 탄호이저가 베누스 산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엘리자베트의 죽음 등을 무대 위에서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환상과 설명으로 처리하기로 한다.
-폴린 메테르니히 공녀-
그러나 1845년의 초연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청중들은 무대 위에서 직접 사건이 전개되지 않고 설명으로 이어가는 연출에 지루함을 느꼈고, 바그너는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생생히 펼쳐지도록 수정을 가한다.
-마네스 필사본(12세기)에 수록된 탄호이저 삽화-
몇 년 후, 독일에서의 정치적 박해로 피해 프랑스에 자리잡기를 원했던 바그너는 파리에서 오페라작곡가로 성공하리라는 포부를 품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나폴레옹 3세와 친분이 두터웠던 머물던 오스트리아 대사의 아내 메테르니히 공녀의 제안으로 파리 무대에서 〈탄호이저〉를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된 바그너는, 오페라가 공연될 파리 오페라극장의 전통을 수용하여 발레 장면을 삽입하였다. 그러나 파리 공연 역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와 메테르니히 공녀에 대해 적대감을 품고 있던 일련의 귀족들이 공연 중에 야유를 퍼부었고, 이로 인해 오페라의 중심지 파리에 자리를 잡으려 했던 바그너의 희망은 좌절로 끝나게 된다.
불행한 천재의 초상
〈탄호이저〉는 중세의 음유시인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그는 역사적인 실존인물이면서도, 동시대의 볼프람 폰 에셴바흐나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와는 달리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인물이다. 바그너는 이 인물을 둘러싼 전설적인 설화들을 통해 ‘인습에 저항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는 사회적 인습에 순응하지 못해 비극을 맞게 되는 탄호이저의 모습 속에 ‘불행한 천재’라고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확신하면서도, 청중들의 야유와 경제적 빈곤에 시달렸던 바그너는 종교적 금기를 어김으로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탄호이저의 운명에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
〈탄호이저〉에는 정숙하고 순결한 엘리자베트와, 관능적인 베누스라는 상반된 여성이 등장한다. 전설상의 엘리자베트는 바르크부르트의 영주 헤르만의 조카딸이지만, 바그너는 또 다른 인물의 성격을 엘리자베트에게 투영시켰다. 튀링겐의 영주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한 헝가리의 공주 엘리자베트 폰 운가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흔히 ‘장미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트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것에 생애를 바쳤고 훗날 성녀로 추앙받았다.
한편, 베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잘 드러나듯이 관능적인 쾌락을 상징하는 여성상이다. 사실 1843년에 〈탄호이저〉의 대본을 완성했을 때 바그너가 붙인 제목은 〈베누스의 산, 낭만적 오페라〉였다. 그만큼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 베누스가 상징하는 관능적인 사랑을 중요한 주제로 생각했던 것이다. 평생 동안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했던 바그너는 이 작품을 통해 베누스가 상징하는 감각적인 사랑을 죄악시하는 종교적 관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여성의 희생을 통한 구원
민담과 하이네의 시는 탄호이저가 베누스의 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바그너는 이러한 결말을 탄호이저가 구원되는 것으로 바꿔버린다. 탄호이저의 구원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성스러운 엘리자베트의 희생적인 사랑과 죽음이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절망했던 바그너는, 엘리자베트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의 헌신과 희생을 통한 예술가의 구원’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는 또한 바그너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이며, 바그너 자신이 일생 동안 찾아 헤맨 이상적인 여성상이기도 했다. 특히 바그너는 당시 아내 민나와의 불화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어려움들을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는 여성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줄거리와 주요 음악
제1막
베누스 산의 시녀들이 펼치는 화려한 발레에 이어 베누스의 무릎에 누워 있는 탄호이저의 모습이 보인다. 베누스와의 관능적인 사랑에 권태를 느낀 탄호이저는 인간 세계의 자유와 교회 종소리를 그리워하면서, 베누스에게 자신을 놓아줄 것을 간청한다. 베누스는 탄호이저를 유혹하며 그를 만류하려 하지만, 그의 결심이 확고하자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퇴장한다.
바르트부르크로 돌아온 탄호이저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우연히 만난 볼프람 일행에게 노래경연대회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노래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자가 엘리자베트의 약혼자가 될 것이라는 소식에 탄호이저는 일행에 합류하기로 한다.
제2막
탄호이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트는 노래경연대회에 참석하기로 결심하고 음유시인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향한다. 탄호이저가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두 사람이 기쁨의 2중창을 부르는 동안, 남몰래 엘리자베트를 연모하던 볼프람은 단념의 노래를 부른다.
영주가 노래경연대회의 개막을 선포하고, 각각의 민네징어들이 순서대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첫 번째 순서인 볼프람이 노래를 마친 후, 탄호이저는 관능적인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교회에서 악으로 규정한 베누스를 찬미한다. 그가 베누스의 산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분노한 청중들이 그에게 달려든다. 볼프람은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노래를 부르고, 엘리자베트는 탄호이저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영주는 탄호이저에게 로마 순례를 명령하고, 탄호이저는 자신의 죄를 자책하며 순례 행렬에 동참한다.
제3막
엘리자베트가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중 바르트부르크로 돌아오는 순례자의 합창소리가 들린다. 엘리자베트는 일행 중에서 탄호이저를 찾으려 하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그의 죄가 용서받는다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리겠다고 기도한다.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보면서 볼프람은 그녀를 위한 노래를 부른다.
잠시 후, 기진맥진한 탄호이저가 절뚝이며 등장하여 ‘로마의 이야기’를 부른다. 죄 사함을 청한 그에게 교황은 그의 나무 지팡이에 잎이 돋을 때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탄호이저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베누스의 산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부르자 베누스의 세계가 사라져 버린다.
곧이어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이 등장한다. 엘리자베트의 유해 앞에서 비탄에 빠진 탄호이저가 비통하게 용서를 빌고 숨을 거둔다. 이때 한 순례자가 꽃이 핀 교황의 지팡이를 들고 등장하여 탄호이저가 죄를 사함 받고 구원되었음을 알린다.
주요 음악
서곡
너무나 유명한 〈탄호이저〉 서곡은 금관이 숭고한 주제선율을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이 선율은 제3막에서 순례자의 합창 선율로 제시된다. 금관을 중심으로 웅장한 진행이 계속되다가, 현악이 이를 이어받는다. 곧이어 트롬본이 다시 한 번 순례자의 선율을 장엄하게 연주한다. 템포가 빨라지면서 베누스 산의 관능적 쾌락을 묘사하는 환락의 모티브가 연주된다. 이 선율은 제1막에서 베누스가 탄호이저를 유혹하는 부분에서 사용된다. 후반부에서 다시금 금관이 순례자의 선율을 장엄하게 연주하면서 탄호이저의 구원을 암시한다.
베누스의 노래, ‘사랑하는 이여, 이리 오세요(Geliebter, komm)’
베누스 산을 떠나려는 탄호이저를 만류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고혹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고음의 선율이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오케스트라 반주 역시 시종일관 여성성을 강조하는 현악과 목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성적인 미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탄호이저에 대한 베누스의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관능적 사랑을 악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습을 음악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대 고귀한 전당이여(Dich, teure Halle)’
제2막의 첫 장면에서 제시되는 음악으로,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행진곡이 노래경연이 개최될 전당으로 입장하는 모습을 묘사한 뒤, 엘리자베트가 노래를 시작한다. 유려한 선율 속에 탄호이저의 우승을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엘리자베트의 노래는 순결한 그녀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순례자의 합창, ‘행복할 지어다, 오 고향이여, 내가 바라보도다(Beglückt darf nun dich, o Heimat, ich schauen)’
제3막의 첫 장면에서 제시되는 음악으로, 베누스와 관능적인 쾌락을 즐긴 죄를 사함 받기 위해 탄호이저가 순례를 떠나는 장면에서 연주된다. 순례자 일행이 서곡에서 제시되었던 숭고한 선율을 합창으로 노래하고, 오케스트라 역시 서곡에서 사용된 모티브를 그대로 연주한다. 순례자들이 ‘할렐루야’를 반복하고, 엘리자베트의 비통한 탄식이 들리는 가운데 합창소리가 서서히 멀어진다.
‘저녁별의 노래(O Du, Mein Holder Abendstern)’
엘리자베트를 남몰래 사랑하는 볼프람이, 꺼져가는 엘리자베트의 생명을 염려하면서 별들에게 그녀를 돌보아주기를 간청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바리톤의 깊이 있는 음성과 억제된 감정 표현이 고요하면서도 애조를 띤 반주와 어우러져, 볼프람의 애잔한 사랑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