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스크랩] 드보르자크 // 교향곡 제1번 `즐로니체의 종` Antonín Dvořák: Symphony No.1 in C Minor B.9

P a o l o 2018. 4. 23. 22:19


오늘부터 틈 나는대로, 교향곡 팬이라면 너무나 잘 아시는 유명한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의 교향곡 제1번 부터 제9번까지 전작을 유튜브 동영상으로 소개해 올릴까 합니다.

그리고 작곡가에 대한 소개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시리즈 시작인 오늘 한번만 삽입하고

Symphony No.2 in Bb major, Op.4 부터는 생략 함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루종일도 감상 할수 있도록 반복재생 설정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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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1번 '즐로니체의 종'


“즐로니체”는 체코 수도 프라하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 이름인데요.

드보르작이 거기서 음악의 기초를 배울 때의 추억을 기억하고자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제1번은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과 음악의 흐름이 유사하다고들 하지요.

참고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들은 동구권 악단의 해석이 대체로 서구권들보다 낫다고 합니다.

최선 :

노이만/체코필/Supraphon – 체코의 노이만을 빼놓고 드보르자크 교향곡을 얘기할 수는 없겠지요.

“노이만의 드보르자크”라고까지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제1번은 드보르자크에 일가견있다는 쿠벨릭, 커테쯔, 로비키 등을 멀리 따돌리는 호연인데

해석의 섬세함을 느껴 보실려면 제1악장 파곳과 혼의 선율, 제4악장 피치카토를 유심히 들어보세요.


차선 :

1) 마칼/밀워키심포니/Koss

2) 로비키/런던심포니/Philips – 이 두 음반은 노이만의 해석과는 색깔 차이가 많은데요.

구성이 열악한 것은 아니지만 노이만의 해석에 비해 약간 밝은 톤이라서

서구 지휘자의 해석에 익숙해 있다면 더 좋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체코 음악의 배경에 깔린 우수는 느끼기 힘듭니다



드보르자크 / 교향곡 제1번 '즐로니체의 종'

Antonín Dvořák: Symphony No.1 in C Minor B.9



Antonín Dvořák

보헤미아 민족음악의 아버지 안토닌 드보르자크 Antonín Dvořák

1841년 09월 08일~1904년 05월 01일


대표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첼로 협주곡 B단조〉, 〈현악 4중주 '아메리카'〉 등

<교향곡 제8번 G장조 Op.88>. <교향곡 제9번 e단조 신세계로부터>. <슬라브 랩소디 A플랫장조 Op.45의 3>.
<서곡 사육제 Op.92>. <슬라브 무곡 제1번>. <제10번>.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Op.53>.
<첼로 협주곡 b단조(협주곡)>. <피아노 5중주곡 A장조 Op.81>. <현악 4중주곡 제6번 F장조 아메리카>.
<피아노 3중주곡 e단조 둠키 Op.90>. <위모레스크 Op.101의 7>. <스타바트 마테르 Op.58>.
<나의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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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닌 드보르자크는 1841년 체코(당시에는 보헤미아)의 네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났다.

정육점과 술도가를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그는 치터와 바이올린 연주를 즐겼으며, 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드보르자크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보헤미아에서는 독일어가 공식 언어였다.

상업과 무역업을 하려면 반드시 독일어를 익혀야 했다.

아들이 가업을 잇기를 원했던 드보르자크의 아버지는 1853년 독일어 공부를 위해 그를 츨로니스로 보냈다.

당시 그에게 독일어를 가르친 사람은 안토닌 리만이라는 음악가였는데, 그로부터 독일어 외에 오르간, 피아노, 비올라, 음악이론 등을 배웠다. 드보르자크의 재능을 간파한 리만은 그의 아버지를 설득해 드보르자크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도록 했다.

16살 때인 1857년, 드보르자크는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2년 동안 공부했으며,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프라하 지역 앙상블에서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를 연주하며 전업 음악가로 일했다. 그러다가 1862년, 작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취직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나중에 국민극장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드보르자크는 20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1865년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는데, 초기 작품은 바그너나 브람스 음악처럼 무겁고 진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1866년 국민극장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부임한 보헤미아 최고의 작곡가로부터 민족 정서에 입각한 음악을 쓰라는

조언을 들은 후 작품 경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보르자크는 1873년, 제자였던 안나 체르나코바와 결혼했다.

그리고 11년 동안 일하던 국민극장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성 아달베르트 교회의 전속 오르가니스트로 부임했다.

이 일로 그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 작곡에 전념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얻게 되었다.

1874년, 드보르자크는 오스트리아 작곡 콩쿠르에 응모했다.

당시 심사위원 중에 브람스가 있었는데, 그는 보헤미아의 민속 소재를 서양 클래식 양식에 접목시킨

드보르자크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드보르자크는 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때부터 브람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다.


1877년, 그의 오페라 〈교활한 농부(The Cunning Peasant)〉가 오페라의 중심인

오스트리아의 빈 오페라 극장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때 빈 오페라 극장 측이 드보르자크에게 독일어로 된 오페라를 의뢰했지만,

보헤미아 사람으로서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거절했다.

1878년, 드보르자크는 보헤미아 폴카와 민속춤곡을 바탕으로 한 〈슬라브 무곡(Slavonic Rhapsody)〉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고향인 보헤미아에서는 물론, 독일 함부르크와 프랑스 니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도시에서 연주되었다.

그 덕분에 드보르자크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특히 영국에서 인기가 높았다.

1883년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Op.58)〉의 영국 공연이 성공을 거둔 후,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영국을 방문했다.


1891년, 드보르자크는 프라하 음악원 작곡과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듬해 미국에 있는 뉴욕 음악원으로부터 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수락했다.

일 년에 만오천 달러를 받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는 뉴욕 17번가에 살았는데, 향수병을 이기지 못해 여름이면 아이오와 주에 있는 보헤미아 집단촌 스필빌을 방문하곤 했다.

1893년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를 구경하고 '체코의 날'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Symphony No.9 in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와

〈현악 4중주 '아메리카'(String Quartet No.12 in F major Op.96 'American')〉를 작곡했다.


1895년, 드보르자크는 프라하로 돌아온 뒤 프라하 음악원 교수로 복직했으며, 1901년에는 음악원 원장이 되었다.

말년에는 오페라와 실내악에 전념해 1901년과 1904년에 오페라 〈루살카(Rusalka)〉와 〈아르미다(Armida)〉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르미다〉의 초연은 실패로 끝났다.

그로부터 몇 주 후 그는 독감에 걸렸으며, 이것이 악화되어 1904년 5월 1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보르자크는 〈슬라브 무곡〉을 비롯해 보헤미아의 고유한 민족성이 드러난 작품을 많이 썼다.

그는 보헤미아 사람으로서 가질 수 없는 긍정적인 천성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는데, 이런 긍정적인 성품이 음악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외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민족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음악을 썼다. 이 점이 배타적으로 민족음악 운동을 벌였던 러시아 5인조와 다른 점이다.


드보르자크는 1865년에 첫 교향곡을 작곡한 후 일생 모두 9편의 교향곡을 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인데, 여기서 신세계는 미국을 의미한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 작곡해 1893년 5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독일 지휘자 안톤 자이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느린 첼로와 플루트의 서주로 시작한다.

서주가 끝나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짧지만 매우 강렬한 음형을 연주한다.

격렬하고 힘찬 울림과 소박하고 이국적인 멜로디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악장이다.

느리게 연주하는 제2악장에서는 잉글리시 혼이 연주하는〈꿈속의 고향〉 멜로디가 나온다.

제3악장은 아주 빠르게 연주하는 악장으로 전곡 중에서 가장 이국정취를 많이 담고 있다.

중간에 현악기들의 피치카토에 맞추어 관악기들이 민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러다가 궁중의 우아한 춤곡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제4악장은 위대한 인물이나 사건의 등장을 예고하는 극적인 서주로 시작한다.

서주가 끝나면 혼과 트럼펫이 당당한 행진곡풍의 주제를 연주하는데, 이 후 음악은 이 선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나온 음악의 소재들을 두루 사용한 후, 웅장하고 호방한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끝난다.


협주곡으로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각각 한 곡씩 작곡했다.

이 중에서 〈첼로 협주곡(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은 드보르자크가 미국에 있던

1895년에 작곡한 것으로 첼로 협주곡의 명곡으로 꼽힌다.

이 곡에는 아메리카 민속음악과 흑인영가, 슬라브 민요의 열정과 애수가 융합되어 있다.

엄청난 힘과 기교를 요구하는 독주 첼로와 이를 받쳐 주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통해 첼로의 남성적인 풍모를 마음껏 보여 준다.

제1악장 알레그로는 이국적이고 정열적인 제1주제와 목가풍의 서정성이 담긴 제2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제2악장 아다지오는 세 개의 악절을 가지고 있는 단순한 가요의 악장이다.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아름답게 노래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분위기를 고조시켜 드라마틱하고

웅장한 울림을 들려주는 것이 특이하다.

제3악장은 보헤미아 민속춤곡풍의 주제 선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드보르자크는 상당히 많은 수의 실내악을 작곡했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현악 4중주이다. 그 외에 피아노 3중주, 피아노 5중주, 현악 6중주 등이 있다.

드보르자크는 모두 13곡의 현악 4중주를 작곡했는데, 그중에서 제12번 '아메리카'가 가장 유명하다.

미국에 있던 1893년 여름, 아이오와 주의 보헤미아인 집단 거주지인 스필빌이라는 마을에서 작곡했다.

작품에 흑인영가 선율이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보헤미아적이다.

제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에 나오는 제1주제는 5음 음계의 민요조로 작곡되었다.

음악의 첫 마디부터 이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이어지는 제2악장 렌토는 가슴에 스며드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악장이다.

제3악장 몰토 비바체는 세도막 형식의 스케르초로 아주 밝은 분위기이다.

제4악장은 결렬한 열정과 끌어 오르는 야성미를 보여 준다.


그 밖의 작품으로 관현악곡 〈슬라브 무곡집〉, 〈사육제 서곡〉, 종교 합창곡 〈스타바트 마테르〉,

실내악곡 〈피아노 3중주 '둠키'〉, 〈피아노 5중주〉, 피아노 독주곡 〈8개의 유모레스크〉, 오페라 〈루살카〉,

가곡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등이 있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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