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교향곡 1번 C 장조 Symphony No.1 in C major, Op.21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하이든, 모차르트 뒤를 잇겠다는 야심찬 선언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베토벤의 신고식은 화려했다. 베토벤은 30세가 되던 1800년에 그의 첫 교향곡을 완성하고 1800년 4월 2일에 빈의 부르크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날 음악회 프로그램은 휘황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으로 시작해 하이든의 [천지창조] 중 몇 곡의 아리아와 중창이 연주되고, 베토벤 자신의 피아노협주곡과 실내악곡이 연주된 후 음악회 마지막 순서로 베토벤의 첫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당시 이 정도로 긴 음악회는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빈의 세 거장들의 작품이 한 무대에서 연주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날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며 암묵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뒤를 잇는 거장 음악가들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베토벤 스스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뒤를 잇는 음악가가 되겠다는 야심찬 선언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일반음악신문(Allegemeine musicalische Zeitung)에 실린 음악회 평을 보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에 대해 “대단한 예술, 새로운 작품, 아이디어의 충만함”이란 표현이 보인다. 그러나 “목관이 남용되어 전체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 치고는 목관의 음향층이 너무 두터운 것”이란 비판도 보인다. 이는 이 교향곡의 혁신적인 음향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사실 이 곡의 파격적인 점은 단지 목관악기의 용법뿐만이 아니다. 엉뚱한 1악장 도입부와 느리지 않은 2악장, ‘스케르초’나 다름없는 미뉴에트 악장,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4악장에 이르기까지 베토벤이 그의 첫 교향곡에서 시도한 대담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전의 형식에서 탈피하려는 다양한 시도들
베토벤 교향곡 제1번 1악장 서주의 도입부는 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왔다. 서주의 첫 화음은 C장조의 으뜸화음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F장조의 딸림7화음으로 시작한다. 이런 화음은 곡을 시작할 때보다는 곡이 끝날 때에나 적합한 화음이다. 게다가 목관과 호른의 화음이 현악의 피치카토로 강조되고 있어 더욱 끝나는 느낌을 준다. 청중을 놀리는 듯한 의외의 도입은 베토벤이 던진 일종의 농담처럼 느껴진다. 베토벤의 스승 하이든도 종종 이런 방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베토벤은 더욱 노골적이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런 괴상한 도입 화성에 대해 비판했지만 베토벤은 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서곡에 똑같은 화성적 실험을 감행했다.
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 1 in C major, Op. 21
Beethoven Symphony No.1 C Major,op.21 Oleg Snetkov conductor 제1악장 Adagio molto - Allegro con brio 놀라운 서주에 이어 템포가 빨라지고 현악기가 빠른 제1주제를 연주하면서 본격적인 제시부가 시작되고 첼로와 오보에 사이의 대화가 이어진 후 매우 모험적인 전개부가 펼쳐진다. 전개부에서는 바순과 오보에, 플루트로 이어지는 목관의 릴레이가 나타나 즐거움을 준다. 1악장 말미에는 감각적인 목관악기의 충만한 음향과 상승하는 트럼펫 팡파르가 나타나 더욱 화려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된다. 어찌 보면 1악장은 파격적으로 새로운 음악이라 할 수는 없어도 주제를 추진력 있게 몰고 가는 세부 전략에 있어서는 베토벤다운 개성이 충분히 드러난 명곡이라 할만하다.
제2악장 Andante cantabile con moto 교향곡 제1번의 2악장은 교향곡 2악장이라면 으레 기대하게 되는 서정적이고 가요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음악평론가 마이클 스타인버그도 지적했듯이 이 곡은 베토벤이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현악4중주 작품 18]의 4번 2악장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주며, 산책하듯 가벼운 빠르기의 심각하지 않은 음악이다. 각 성부들이 서로를 뒤따르며 음악적 유희를 만들어내고 팀파니가 강박적인 부점 리듬을 반복하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3악장 Menuetto. Allegro molto e vivace 베토벤은 전통대로 3악장을 미뉴에트라 불렀으나 정작 음악을 들어보면 옛 프랑스 궁정 무곡과 별 관련이 없다. 한 마디를 한 박으로 지휘해야할 정도로 매우 빠른 3박자로 진행되고 있는 이 곡은 재기발랄한 스케르초이지 결코 점잖은 미뉴에트라 할 수 없다. 아마도 베토벤은 전통을 의식해 3악장에 미뉴에트라는 이름을 붙이면서도 정작 음악 자체는 자신의 충동에 따라 스케르초로 작곡했는지도 모르겠다. 스케르초 같은 미뉴에트에 따라붙은 트리오도 위트에 넘친다.
제4악장 Finale. Adagio - Allro molto e vivace 느린 서주로 시작하는 4악장 역시 충격적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익숙한 청중이라면 으레 빠르고 활기찬 4악장 도입부를 기대하겠지만, 베토벤은 엉뚱하게도 느린 도입부로 시작한다. 현악기가 머뭇거리며 연주하는 어설픈 음계는 갑자기 빠르게 변해 4악장의 주제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4악장의 마지막 부분도 역시 화려한 음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코믹한 도입부와 완벽한 세트를 이룬다.
스비텐 남작에게 첫 교향곡을 헌정
베토벤은 애초에 그의 첫 교향곡을 그의 전 후원자이자 고용인인 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프란츠에게 헌정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프란츠는 이 교향곡의 오케스트라 파트보가 출판되기 5개월 전인 1801년에 세상을 떠나자 마음을 바꾸어 베토벤의 또 다른 후원자인 스비텐 남작에게 이 곡을 바쳤다. 스비텐 남작은 빈에 입성한 젊은 베토벤을 적극 밀어주었을 뿐 아니라 베토벤에게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소개하고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소개하여 베토벤이 고전 양식에 강한 영향을 받도록 했던 인물이다. 베토벤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계보를 잇는 음악가로 인정해준 스비텐 남작에게 그의 첫 교향곡을 헌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로써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베토벤과 빈 / 빈의 번화가 그라벤 베토벤은 모짜르트를 숭배하고 있었고(1787년에 모짜르트를 만나려 빈에 갔었다), 본에 부임한 선거후를 비롯하여 기사들이 빈 출신의 귀족이었기 때문에 빈으로 공부하러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나, 1792년에 하이든이 런던에 오고가면서 본에 들른 것이 동기가 되어 대망의 빈 유학이 실현되었다. 모짜르트는 이미 죽었으므로 하이든에게 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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