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좋 은 글

[스크랩] 모래내, 1978년 (이 성 복)

P a o l o 2005. 12. 23. 10:10
                                                                사진 : 모래내 아이들

  

                              모 래 내
                                                               이 성 복

        1.
        하늘 한 곳에서 어머니는 늘 아팠다
        밤이 으슥하도록 전화하고 깨자마자
        누이는 또 전화했다 혼인婚姻날이 멀지 않은 거다
        눈감으면 노란 꽃들이 머리 끝까지 흔들리고
        시간時間을 모래 언덕처럼 흘러내렸다
        아, 잤다 잠속에서 다시 잤다
        모았다, 달려드는, 눈 속으로 트럭, 거대한

        무서워요 어머니
        ……얘야 , 나는 아프단다

        2.
        어제는 먼지 앉은 기왓장에
        하늘색을 칠하고
        오늘 저녁 누이의 결혼 얘기를 듣는다
        꿈속인 듯 멀리 화곡동 불빛이
        흔들린다 꿈속인 듯 아득히 기적汽笛이 울고
        웃음 소리에 놀란 그림자 벽에 춤춘다

        노새야, 노새야 빨리 오렴
        어린 날의 내가 스물여덟 살의 나를 끌고 간다
        산 넘고 물 건너 간다 노새야, 멀리 가야 해

        3.
        거기서 나는 살았다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기차 소리 목에 걸고
        흔들리는 무꽃 꺾어 깡통에 꽂고 오래 너는 살았다
        더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연히 스치는 질문---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담벽을 타고 오르며 동네 아이들 노래 속에 가라앉으며
        그리고 어느날 너는 집을 비워줘야 했다 트럭이
        오고 세간을 싣고 여러 번 너는 뒤돌아보아야 했다



 모래내 철길

 

                     

                            시인 이성복(李晟馥)

    *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 서울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1977년). *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호랑가시나무의 기억』등 * 시선집 『정든 유곽에서』 * 잠언집 『그대에게 가는 먼 길』 * 산문집 『꽃핀 나무의 괴로움』 * 문학앨범 『사랑으로 가는 먼 길』 등 * 현재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이전에는 불문과 교수) * 2004년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로 제12회 대산문학상 수상
   이성복(李晟馥) 시인은 70년대적 문학주의 정신을 대표한다. 자유로운 연상과 그 연상을 따르는 의식을 통해 절망,희망,기쁨을 보여주는 시들을 길어냄으로써 80년대 이후 한 때 우리 시단에 ‘이성복 신드롬"을 몰고 왔다. 시인 지망생들이 그의 시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그의 시와 비슷한 발상법의 모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많은 평론가들이 앞다투어 그의 시에 대해 찬사를 보냈으며 등단 이래 짧은 시간에 그토록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문인은 드물다고 한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푸른종소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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