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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켈란젤로와 다윗

P a o l o 2005. 7. 4. 11:29

아래 작품 다비드상에 대해서 말해볼께여

다비드상은 실제 유대인이었으므로

태어나면 8일만에 할례의식을 치뤄야하니 당연히 포경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포경수술을 하지 않는 유럽에 살았던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의 성기를 유럽화하여 표현했다 하겠습니다.

1501년 피렌체 모직 무역상 조합의 주문으로

제작된 다비드상은 여러가지 문제로 몇세기동안 시뇨리아 광장에 방치되었다가

1873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Accademia)으로 옮겨져 보호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이탈리아 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조각품중의 하나입니다.

'다비드'는 구약성서 사무엘 상 17장에 나오는 적군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리고 승리한 소년 다비드(다윗)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제작된 베로키오와 도나텔로의 다비드상들은 보통 골리앗의 머리를

발밑에 두고 손에 칼을 쥔 승리한 젊은이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싸움 전의 모습을 묘사하였습니다.

몸 전체의 근육이 단단하게 긴장되어 있고,

노기 띤 얼굴은 왼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몸 오른편은 손과 발이 모두 수직으로 지면에 고정되어 있지만

왼손은 돌팔매를 잡기 위해 올려져 있고 왼발도 약간 움직여

다음 행동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도시국가 피렌체(플로렌스) 공화국의 시민이었고,

당시 피렌체는 주변에 자신들보다 더 강력하고도 거대한 적들로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다비드상이 시청사 앞(현재 복제품이 놓여 있음)에 있었을 때 피렌체 시민들은

거대한 적을 물리쳤던 다비드와 자신들을 동일시 했습니다.

피렌체의 영주 메디치의 뒤를 이은 종교적 압제자 사바나롤라를 몰아낸 피렌체 시민들에게 있어

다비드는 힘과 분노의 포르테자와 이라의 재현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비드의 캐릭터가 만들어진 배경은 다비드가 골리앗에게 승리한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으며,

이는 미켈란젤로가 왜 싸움에서 승리한 모습이 아닌 강한 의지를 지니고

싸움에 임하는 전투 전의 그를 묘사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흐르는곡은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입니다.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hcw5823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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