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에 대한 음모설이 정점에 달한 1572년의 8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오페라는 당시 상당히 개혁적인 오페라였다.
그랑도페라의 탄생
낭만주의 시대의 이탈리아에는 벨칸토 오페라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그랑도페라(Grand opèra)가 있다. 이 오페라는 당시 프랑스 청중의 흥미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시민계층과 평민을 위한 극장들이 생겨났고, 자연히 이들을 위한 화려한 볼거리가 필요해졌다. 이러한 요구에 맞춰 태어난 오페라 양식이 바로 그랑도페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그랑도페라의 유명한 작곡가들 다수는 이탈리아인이었다. 이는 19세기 파리가 전 유럽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한 탓일 것이다.
-필립 샤프롱, 〈위그노 교도〉 1막 무대 스케치, 1874년 화려한 무대가 돋보인다.-
〈위그노 교도〉와 그랑도페라의 확립
19세기 유럽이라는 문화 배경 하에 마이어베어 역시 자신의 작곡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파리를 찾았다. 당당히 오페라 〈악마 로베르〉로 성공을 거둔 그는 〈위그노 교도〉를 통해 그랑도페라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마이어베어에게 그랑도페라의 전통을 확립시킨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것이 바로 이 두 작품인 것이다.
-〈위그노 교도〉 5막 1장의 무대 스케치 많은 수의 연기자와 무용가가 동원되는 화려한 오페라임을 알 수 있다.-
그랑도페라는 일반적으로 5막 구성과 대규모 장면에 합창과 프랑스 오페라의 전통인 발레가 삽입되고, 독창과 합창 그리고 관현악이 어우러진 편성이 특징이다. 마이어베어의 〈위그노 교도〉는 코르넬리 팔콘을 프리마돈나로 생각하고 작곡했고, 테너에는 아돌프 누리, 베이스에는 니콜라스 르바서 등의 명가수들을 고려하였다. 여기에 장대한 관현악, 대규모의 합창으로 이루어진 〈위그노 교도〉가 그랑도페라의 일반적 성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초연 당시 코르넬리 팔콘이 분한 발렌틴의 무대 의상-
학살에 희생된 사랑
마이어베어의 〈위그노 교도〉는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 천 명이 넘는 프랑스 위그노 교도각주1) 가 가톨릭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을 말한다.
-〈위그노 교도〉 초연에서 발렌틴 역을 맡은 소프라노 코르넬리 팔콘-
오페라 〈위그노 교도〉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발렌틴과 라울의 사랑 이야기는 스크리브가 만든 이야기이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을 묘사한 프랑수아 뒤부아의 그림, 1572~1584년경-
작품 구성
제1막
샤를 9세가 프랑스의 신구교간 전쟁을 끝맺으려는 시기, 느베르 백작의 성에서는 신교도인 라울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열린 파티는 사랑 이야기로 무르익어가고, 여기서 라울은 자신을 악당들로부터 구해준 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한 여인이 느베르 백작을 찾아오는데, 모든 사람들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흘깃 훔쳐보는 중이다. 라울은 바로 그 여인이 자신을 구해준 사람임을 깨닫고, 느베르 백작은 그녀가 자신의 약혼녀이고 결혼식을 취소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이야기한다. 마르게리트의 시종 위르뱅은 라울의 눈을 가리고 자신을 따라오라는 서신을 전한다.
제2막
강가에서 시녀들과 여흥을 즐기고 있던 여왕 마르게리트는 발렌틴이 느베르 백작과 파혼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라울과 결혼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한다. 구교도 신봉자인 발렌틴의 아버지인 생브리 백작이 걱정되지만, 발렌틴은 이를 기뻐한다. 마르게리트를 찾아온 라울은 생브리의 딸과 결혼하라는 여왕의 제안을 따르기로 하지만, 발렌틴이 느베르 백작의 약혼녀였음을 알게 된 라울은 결혼을 거절한다.
제3막
느베르와 발렌틴의 결혼식이 거행된다. 결혼식이 끝난 후 발렌틴은 홀로 기도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 마르셀은 생브리 백작에게 라울의 도전장을 전달한다. 그러나 생브리 백작은 부하들에게 결투 대신 라울을 기습하자고 말한다. 이를 엿들은 발렌틴은 마르셀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지만 마르셀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결투 장소에서 기다리는 라울 앞에 모르베르가 무장한 사람들과 함께 나타나는데, 다행히도 마르게리트가 나타나 소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마르셀은 발렌틴을 지목하며 그녀가 정보 제공자임을 밝힌다. 생브리는 그녀의 베일을 벗기고, 이를 본 라울은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다. 마르게리트는 발렌틴이 약혹을 취소하려했음을 말하지만, 생브리 백작은 이미 발렌틴이 느베르와 결혼한 사실을 주지시킨다.
-〈위그노 교도〉 제3막의 스케치-
제4막
라울은 마지막으로 발렌틴을 보고자 방으로 들어간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몸을 숨긴 라울은 신교도들을 대학살하려는 가톨릭 귀족의 계획을 말하는 생브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라울은 동료에게 그 사실을 전하려고 하지만, 발렌틴은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고 애원한다. 라울은 갈등하지만, 대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자 동료를 떠올리며 달려 나간다.
-라울에게 애원하는 발렌틴, 제4막의 한 장면 스케치-
제5막
신교도들이 마르게리트를 영접하고 있다. 이때 발렌틴이 라울을 찾아오고, 그녀는 라울이 개종하면 왕실이 보호해줄 것이라 설득한다. 그러나 라울은 이를 거절한다. 라울의 믿음을 알게 된 발렌틴은 그의 곁에 머무르기로 결심한다. 마르셀은 두 사람의 결혼을 선언한다. 한편 구교도들이 도망가는 신교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한 여인과 부상당한 두 남자를 발견한 생브리는 그들을 쏘라고 명령하고, 발렌틴은 총에 맞아 쓰러진다. 생브리는 곧 그녀가 자신의 딸임을 알아차린다.
-라울과 발렌틴을 공격하는 가톨릭교도들. 제5막 2장의 스케치(1836)-
상당한 기교를 요구하는 오페라 작품
초연 이래 마이어베어의 〈위그노 교도〉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1000번 이상 공연된 최초의 작품이며, 1936년까지 지속적으로 연주되었다. 이처럼 전 세계의 유명 오페라하우스에서 연주되는 19세기 최고의 성공작이었던 〈위그노 교도〉는 그러나 20세기 들어 상연횟수가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했고, 캐스팅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소프라노와 바리톤이 각각 두 명씩, 메조소프라노와 테너, 베이스가 각각 한 명씩, 총 7명의 주요 배역이 필요할뿐더러, 특히 라울은 5막 모두 등장하고 상당히 높은 음을 요구하는 등 오페라 장르를 통틀어 가장 힘든 역할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이 작품은 체력과 탁월한 기량 등 모든 것이 요구되어서 하나의 무대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안전을 위해 가톨릭교도로의 개종을 권유하는 발렌틴의 말을 거절하는 라울-
하얀 모피보다 흰(Plus blanche que la blanche hermine)
1막 라울의 로망스이다. 느베르 백작은 라울을 향해 사랑에 관한 노래를 불러보라고 권하고, 이에 라울은 예전에 자신을 구해준 미지의 부인에 대한 연정을 담아 이 로망스를 부른다. 조용하고 로맨틱한 비올라 다모레 솔로 오블리가토에 맞춰 흐르는 아름다운 테너 로망스이다. 가사는 여인의 뺨을 장미로 눈빛을 별에 비유하면서 그녀에 대한 연정을 표현한다.
오 하늘이시여! 어디로 가는 건가요(O ciel! où courez-vous)
4막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발렌틴과 라울의 이중창. 이는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이중창의 전조가 되었다. 발렌틴을 만나러온 라울은 위그노 교도에 대한 학살계획을 듣게 된다. 라울은 동료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자 하지만, 발렌틴이 위험하다며 그를 만류한다. 이 이중창에서 그녀는 라울에게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고 이야기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발렌틴의 고백은 이중창의 느린 부분인 라울의 감동적인 카바티네 ‘당신이 그랬어요’(Tu l’as dit)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위그노 교도에 대한 말살정책이 시작됨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음악은 갑자기 G♭장조에서 C 장조로 전조된다. 카발레타 부분에서 라울은 동료들을 떠올리며 달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