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스크랩] 베토벤 / [운명](Symphony No.5 c minor) Op.67 `Schicksall`

P a o l o 2018. 3. 3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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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mphony No.5 c minor Op.67 'Schicksall'

 

베토벤 / 교향곡 5번 다단조 [운명] 1악장

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


Allegro con brio

 

Karajan - Berlin Philharmonic

 

 

 


베토벤 교향곡 5번 다단조 [운명]

모두 4악장으로 이루어졌다. 교향곡 제3번 《영웅》(1804)이 완성된 뒤 곧 쓰기 시작했으나 이보다도 먼저 교향곡 제4(작품번호 60, 1806)이 완성되고 그 후 본격적인 작업이 계속되어 마침내 1808년에 완성, 빈에서 초연되었다이 곡의 이름은 제1악장 첫머리의 동기에 대해 베토벤 자신이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고 설명한 데 연유하고 있다. 베토벤의 귀에 이상이 생기고, 영원한 애인으로 알려진 테레제 브룬스비크와의 파국, 나폴레옹의 침공 등 시련이 겹쳤던 시대의 작품이다. 기법적으로도 뛰어나 마지막 악장에서는 트롬본 3, 피콜로 1을 곁들여 빛나는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작곡: 1807~1808
초연: 1808 12 22,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초연
출판: 1809
헌정: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
편성: 플룻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5, 그리고 4악장에서만 피콜로, 콘트라파곳, 트럼본 3이 추가된다. 이들 악기소리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서 음색의 차이로 구별해보는 것도 좋다.

 

 

 

 

Warsaw Philharmonic

Peter Tiboris

 

 

 

 

1 악장 소나타형식 Allegro con brio

네 개의 음으로 된 그 유명한 제1주재가 힘차게 연주된다. 이 것은 남성적이고 장쾌하고 호방하다. 이 주재는 여러 모양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면서 곡은 클라이맥스로 향하여 박진감이 더해진다. 호른 독주의 브릿지에 이어 바이올린, 클라리넷, 풀륫이 차례로 제2 주재를 부드럽게 연주한다. 보통 제1주재가 남성적이면 제2주재는 여성적이고 부드럽게 구성되어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발전부에서는 화려한 음색의 호른의 연주에서 시작하여 시종일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주재는 종횡무진한 활약을 거듭하여 드디어 최고의 정점에서 재현부로 이어진다. 매력적인 오보의 Adagio 연주가 잠간 휴식감을 주고는 다시 박진감을 더하여 나가다가 화려한 코다로 장엄한 끝마침을 한다.

소나타 형식. 교향곡 역사상 드물 게 보는 격렬함을 지닌 악장이다. 더욱이 이 악장은 서로 현저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주제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처음의 [운명의 동기]의 제1주제이다. 이 주제에서는 페르마타가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주제는 호른에서 시작되어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노래한다. 그 반주에서도 '운명의 동기'를 들을 수 있다.
발전부는 거의 제1주제를 취급한다. 재현부는 물론 제시부의 재료를 차례대로 재현하며, 1주제와 제2주제 사이에 아다지오로 템포를 늦추어 오보에 의한 짧은 카덴차를 삽입한 것은 진기한 느낌을 주며 긴장을 풀어준다. 또한 제2주제의 재현은 파곳에 의해 유도된다. 제시부에서는 호른이 그 역할을 맡지만 재현부에서는 호른으로는 연주가 어려웠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계속 파곳이 연주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호른으로 연주하게 하는 지휘자도 있다. 마지막 코다도 제1주제에 의한 전개풍의 것으로 충실한 느낌을 갖게 한다.

 

Staatskapelle Dresden

Herbert Blomstedt 

 

 


 


작품 배경 및 개요

1828년 어느 날 파리 국립 음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대학의 대 강당에서는 베토벤의 제 5번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많은 음대 교수들과 유명한 작곡가, 지휘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위대한 작곡가의 걸작품이 연주되게 된 것이다. 다음은 이 대학의 교수였던 브리엔느씨가 이 연주회에 참석하였다가 그의 자서전에 남긴 글 한 도막이다.

“나는 그날 이 유명한 음악가의 작품 연주에 초대를 받고 좌석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장쾌한 음악의 연주가 시작되자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빠져들었습니다. ……… 드디어 음악회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박수 칠 생각을 그만 잊어버린 것입니다. 한참 후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드디어 청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여 나도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자를 집어 들고 머리를 찾으니 머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그런데 이 곡이 [운명]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까닭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그의 제자이며 베토벤의 전기(傳記)로서 유명한 신틀러가, 하루는 이 곡의 제1악장 서두에 나오는 주제의 뜻을 물었더니 베토벤은,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하면서, 힘찬 몸짓까지 하였다고 한다그 뒤에 이 교향곡은 [운명]이라는 참으로 극적(劇的)인 제목으로 불리게 되었고, 또 그것이 인기를 높이는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베토벤의 비통한 생애와 너무나도 잘 통하는 말인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 [다다다다-] 하고 두드리는 동기(動機), 베토벤이 비인의 공원을 산책하다가 들은 새소리를 소재로 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가 새삼스럽게 발명해 낸 것은 아니다.

교향곡 속에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도 이미 썼던 것이다. 게다가 이 4개 음부(音符)의 움직임이라는 것이,실은 아무 변화도 가락도 없는, 말하자면 아무 데나 뒹굴고 있는 돌무더기같은 것이어서, 그것만으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훌륭한 계산에 의해, 전곡을 통하여 완벽한 구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극적(劇的)인 장대(壯大)한 음의 확산(擴散)이 되어서 만인을 한결같이 감격케 한다. 정히 하나의 경이(驚異)라 아니할 수 없다.

음악학자 리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이 교향곡은 끝악장을 목표로 진행되며, 전체가 그렇게 계획된 것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분석은 옳다. 왜냐하면, 1악장 서두의 [다다다다-]라는 모티프가 이 악장만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 3악장에서도, 4악장의 재현부 직전에서도 변형되어 나타나서 전 악장을 튼튼히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882년 파리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 한 노병은(老兵), [이것은 황제(皇帝).]하고 외쳤다고 한다. 그런 뒤에 한때는[황제교향곡]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슈만은 이 곡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
아무리 들어도, 마치 자연의 현상처럼 외경(畏敬)과 경탄이 새로와진다. 이교향곡은 음악의 세계가 계속되는 한 몇 세기(世紀)고 간에 남을 것이다.]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808 (38)이다. 작곡에 착수한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대개[ 3-영웅]을 완성한 직후인 1804 년 무렵부터 진지하게 손을 댄 것 같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1795 (25 ) 무렵의 노우트에 이 곡의 선율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의 스케치가 있다고 하니, 통산하면 약 12 년이나 걸린 셈이 된다. 이런 점을 보면 베토벤은 정말로 신중파(愼重派).하기는 그랬으니까 이같은, 하나의 음도 허실이 없는, 견고하고 정밀한 구성을 갖춘 걸작이 이루어졌지만.

[
암흑에서 광명으로!]---이것은 평생을 통한 베토벤의 신조였는데, 그것이 작품성에서 보다 힘차고 감동적으로 표현된 것이 이 [ 5 ]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으로서 보다 장대(壯大)하고, 보다 울림이 좋고, 보다 정돈된 곡은 이 곡 말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의지의 응결(凝結)이라는 면으로 볼 때는 이 [ 5]이 단연 대표적이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는 베토벤=[운명], [운명]=베토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요즘 외국에서는 [운명]이라는 별칭을 쓰지 않고 그냥 [ 5]만으로 표시한다. 레코드를 보아도 역시 그렇다. [ 3] [ 6] 등은 뚜렷이 [Eroica], [Pastoral] 등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유독 [ 5]의 레코드 자켓에는 아무 표지가 없다.

그 이유는 [영웅]이나 [전원]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명칭인데 반해서, [ 5]에 대해서는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는 데서 후세에 [운명]이라는 별칭이 생겼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별칭이 너무나도 사랑을 받고 있어서, [운명]이라 해야 곧 알지, [ 5]이라면 빨리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되어 있다. 언젠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줄 안다. 굳이[운명] [운명]하고 강조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가라 앉혀서 조용히 듣고 있노라면, 높고 두꺼운 운명의 벽을 하나하나 넘어서 가시밭길을 돌진하는 베토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출처 : 관악산의 추억(e8853)
글쓴이 : 이종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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