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징크스 들어 보셨나요? 베토벤부터 시작해서 10번 교향곡을 작곡한 사람이 없다는... 베토벤에 이르러 교향곡은 작곡가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장르가 되었고 길이만 해도 하이든,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비해 배로 늘어났습니다. 베토벤 이후 작곡가들은 교향곡에 있어 베토벤이라는 넘지 못할 산을 늘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브람스 같은 사람은 교향곡 1번을 작곡하는데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죠. 교향곡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서인지 베토벤이 아홉 개의 교향곡을 남긴 후 말러에 이르기까지 아홉이라는 숫자를 넘긴 작곡가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말러 이후 20세기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가 15번까지 작곡하긴 했네요.
말러는 1911년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4년 전인 1907년은 말러에게 악몽 같은 한 해였습니다. 6월에는 그가 10여 년간 봉직했던 빈 궁정 오페라의 음악감독 직에서 사임해야 했고, 7월에는 다섯 살짜리 큰 딸이 디프테리아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큰 딸을 유별나게 사랑했던 말러에게 딸의 죽음은 엄청난 정신적 타격이었죠. 설상가상으로 말러는 딸이 죽은 지 얼마 후 심장병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시련을 겪고 나서 말러가 작곡한 작품이 <대지의 노래> 인데 사실 이 곡이 9번 교향곡이 되었어야 함에도 말러는 차마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못하고 <대지의 노래> 라는 제목만 붙였습니다. ‘9번을 작곡하면 죽는다’ 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거죠(<대지의 노래>를 형식상 교향곡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논쟁이 있지만 말러 자신은 이 곡의 부제를 ‘테너와 알토,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이라고 붙였습니다). 1910년 말러는 또 하나의 교향곡(순서로는 열 번째)을 완성하고 마침내 9번이라는 번호를 붙입니다. 그리고 말러는 10번 교향곡(열한 번째)의 작곡에 착수하지만 끝내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말러도 결국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 한 거죠.
Mahler: Symphony No.9 - Abbado: BPO - I 1/2 - 1/6
Gustav Mahler (1860-1911): Symphony No.9 in D major Symphonie n°9 en Ré majeur I Andante comodo1/2 1/6 Abbado: Berliner Philharmoniker Orchester
말러의 〈교향곡 9번〉은 죽음에 대한 예감을 통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심각한 심장병으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그는, 베토벤이나 브루크너, 드보르작 등이 9번째 교향곡을 작곡한 뒤 사망했다는 사실에 미신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불길함을 피하기 위해 9번째 교향곡에 〈교향곡 9번〉이라는 제목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던 그는, 다음 작품인 〈교향곡 9번〉의 자필 악보 곳곳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암시하는 글귀를 남겼다. 죽음을 체념한 듯 받아들이는 1주제와 이에 대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2주제를 대비시키고 있는 1악장에서는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라는 글귀와 “안녕! 안녕!”이라는 체념어린 글귀가 적혀있다. 2악장과 3악장에서는 삶을 비웃는 듯한 악마적인 음악이 펼쳐지고, 4악장은 죽음의 장면을 그리듯 장엄한 음악으로 시작해 사라지듯 마무리된다.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둘러싼 불길한 예감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1910년 완성되었고, 그의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작품이 초연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교향곡 9번〉은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소나타형식이나 조성체계를 벗어난 혁신적인 기법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전작인 〈대지의 노래〉의 영향을 보여주는 동양풍의 선율이 사용되었고, 황량할 만큼 텅 빈 텍스처와 꽉 찬 텍스처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독특한 음향의 실험이 과감하게 시도되고 있다. 말하자면, 〈교향곡 9번〉은 전통적인 교향곡에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음향의 시대를 여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Mahler symphony n° 9 Abbado Wiener Philarmoniker Adagio PartIV /
recording from 1988 WPO
much better than the berlin version
Simply phenomenal
OMG! This is the spiritual death of Mahler, after his wife was cheating on him!
4악장 매우 느리게, 주저하듯이(Adagio. Sehr langsam und noch zurückhaltend)
피날레 악장에서는 이전에 제시한 혼돈과 비웃음의 인상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면서 겸허하고 숭고한 느낌을 연출한다. 옥타브로 도약하는 인상적인 선율로 악장이 시작된 뒤 현악성부가 칸타빌레의 주제선율을 연주한다. 꽉 찬 음향의 화음 속에서 짙은 호소력으로 연주되는 현의 울림이 숭고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어지는 2주제는, 최고음역의 바이올린과 최저음역의 콘트라바순, 첼로, 더블베이스의 진행이 2중주처럼 펼쳐진다. 말러는 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음역을 더없이 투명한 느낌으로 연출함으로써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숨겨진 긴장감을 연출한다. 뒤이어 하프가 〈대지의 노래〉 6악장에서 가져온 선율을 연주하고, 마침내 1주제가 숭고한 찬가처럼 울려 퍼진다. 뒤이어 첼로의 독주가 코다를 연주한다. ‘아주 느리게’로 지시된 템포와 피아니시모를 넘지 않는 극단적인 약음이 영원한 시간을 암시하고,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4곡에서 인용한 선율이 환영처럼 연주된다. 이 선율은 채 마무리되지 못한 채 피아니시시모의 긴 음으로 신비로운 여운을 남기며 악장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