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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내의 죽음 - 로망스 - 쇼스타코비치

P a o l o 2018. 2. 3. 22:03


시대와 불화한 고독한 천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1906~1975

 소비에트 연방 시절 러시아의 작곡가이다.


이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원래 

 

'The Gadfly (등에: 소, 말등의 가축에 붙어 괴롭히는 곤충)라는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작곡된 곡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합스부르크 통치하에 있던 이탈리아에서의 한 혁명가를 비유한 것이었는데, 쇼스타코비치에게는 소비에트 체제에

그칠 줄 모르고 반항하던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좋아했을지는 모르지만 영국에서는 한 때, 템즈 텔레비젼

 시리즈 " Reilly , Ace of Spies" 에  이 로망스 멜로디가 쓰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영화 어떤 장면에 사용되었든지

음악 자체가 대단히 로맨틱하기 때문에 항상 대중적 인기를 몰고 다니는 명곡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작곡을 통해 러시아인들의 공통된 불행과 운명을 나누어 가진 것뿐만 아니라 제도와 체제에 저항했다. 또 인간의 혼을 개조해 버리려는 압제와 비인간적인 권위에 저항했다”고‘프로무지카’지의 요시프 라이스킨은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추모의 글을 남겼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로스트로포비치가 지휘하고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을 통해 러시아인의 삶을 자신의 음악 테마로 만들었던 쇼스타코비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자신의 스승인 쇼스타코비치를 기리는 이 페스티벌을 단 한 번만  그것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만 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한 쇼스타코비치 1945년

그의 60세 생일을 기념하는 이날 첼로 협주곡 2번 초연이 있었다. 60년대 초반부터 심장 계통의 건강악화에 시달려 온 그는 이전보다 더 왕성한 작곡활동을 보여주었다. 심장 발작 후 모스크바 근교인 쿤체보의 병원에서 요양생활을 하며 작곡에만 전념한다. 


이 시절의성악 작품으로는 ‘블록의 시에 의한 7개의 로망스’ Op.127,

‘마리나츠베타에와의 시에 의한 6개의 로망스’Op.140, ‘미켈란젤로의 시에 의한 모음곡’  Op.145 등이 있다.소프라노 갈리나 비슈네프스카야에게 바쳐진 ‘블록의 시에 의한 7개의 로망스’는 비슈네프스카야의 독창,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연주로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 요양중이던 쇼스타코비치는 라디오를 통해 이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비올라 소나타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1975년 8월 9일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 평론글 발췌-20180202challea5913



Shostakovich / Bolshoi Theater Violinists Ensemble, 1970: Romance from "The Gadfly" (Овод)


The Bolshoi Theater Violinists Ensemble performs the Romance from the Incidental Music, composed by Dmitri Shostakovich, to

the film "The Gadfly." From the LP, "Bolshoi Theater Violinists Ensemble," issued on the Melodiya label.

Inspired by Massenet's "Méditation" from Thais, the "Romance" section from the suite, with its beautiful solo violin melody, is known to Western TV audiences as the theme music for the Euston Films mini-series Reilly, Ace of Spies, about Russian adventurer Sidney Reilly.


쇼스타코비치, 영화 ‘등에’        


 아내의 죽음, 그 황망함과 쓸쓸함…아름답고 슬픈 선율에 담아  


옛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75·사진)가 영화음악 작곡에 처음 손을 댄 것은 1928년이었다. 코진체프 감독이 만든 <신 바빌론>이라는 영화였다. 그후에도 그는 거의 매년 하나씩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마지막 작품은 70년 작곡했던 <리어왕>. 이 영화의 감독도 역시 코진체프였다. 그렇게 해서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40편에 달하는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왜 이렇게 많은 영화음악을 썼을까. 그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쇼스타코비치라는 대(大) 작곡가의 생존 시기. 그 시절은 마침 소련 영화의 융성기였다. 쇼스타코비치와 무려 10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던 코진체프는 당시 소비에트의 대표급 감독이었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두 편 외에도 <막심의 청년시절> <막심의 귀환> <소박한 사람들> <선구자의 길> 같은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그렇게 유도한 것은 물론 ‘당’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의 권유를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곤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영화음악 작곡이 쇼스타코비치에게 긴요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년시절 그는 영화관에서 무성영화 배경음악을 연주하며 아르바이트를 했고, 좀더 나이 들어서는 영화음악을 작곡하며 ‘밥’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가장’의 애환 같은 것이 느껴진다. 33세에 레닌그라드음악원 교수로 부임했다가, 42세에 즈다노프의 비판을 받고 교수직을 사임해야 했던 정황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내향적이고 성실했던 쇼스타코비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던 듯하다. 이런 ‘유추’는 충분히 가능하다. 왜냐하면 36년부터 40년 사이에, 그는 다른 시기의 두 배나 되는 분량의 영화음악을 쏟아놓기 때문이다. 이 때는 바로 쇼스타코비치가 ‘아버지의 기쁨’을 만끽하던 시절. 딸 갈리나가 36년에, 2년 후에 아들 막심이 태어난다. 물론 ‘아빠’ 쇼스타코비치는 고된 노동으로 피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두 아이에게서 많은 위로와 기쁨을 얻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영화음악을 만들었던 쇼스타코비치. 그는 55년에 영화 <등에>(Gadfly)를 위해 모두 12곡으로 이뤄진 모음곡(Suite)을 작곡한다. ‘등에’는 ‘쇠파리’라고도 부르는 날벌레. 영화의 원작은 영국 작가 에델 릴리언 보이니치가 쓴 낭만적 혁명소설이다. 국내에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 출판돼 있는 이 소설은, 혁명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사회주의적 대의보다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고, 옛 소련에서도 스탈린 사후에야 영화로 만들어졌다. 


쇼스타코비치의 영화음악 중에서도 이 작품이 좀더 특별한 것은 음악에 담긴 애수(哀愁) 때문이다. 특히 7번부터 10번까지의 곡들은 애틋하기 그지없다. 그는 왜 이렇게 아름답고도 슬픈 선율을 쉬지 않고 풀어 놓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이렇게 짐작해본다. 아내 니나가 세상을 떠난 것이 54년. 물론 쇼스타코비치는 결혼 전에 타티아나 글리벤코라는 여인을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3년간 아내의 자리를 지켜온 니나의 죽음은 그를 황망하게 했을 것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아내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심정. 특히 모음곡 8번 ‘로망스’와 10번 ‘녹턴’은 당시의 쇼스타코비치가 느꼈을 쓸쓸함과 허망함을 진하게 투영한다. 음반으로 듣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리카르도 샤이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95년 녹음(Decca)을 추천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아내 니나가 떠나고 8년 후, 편집자 출신의 이리나 스핀스카야와 재혼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091734295&code=960802#csidx1c89c01b2d7c4cc83e621d3f011fe29



  러시아 볼쇼이 합창단- 쇼스타코비치 로망스  


로망스
* 쇼스타코비치 로망스

고독의 땅을 넘어 다가간 사랑
영원의 강을 건너 다가온 사랑
그대는 나를 위해 노래를 한다
나는 그대를 위해 노래를 한다

(글 출처 - Daum칼럼, 고전음악의 향기)


Dmitry (Dmitriyevich) Shostakovich


15곡의 교향곡을 비롯해 수많은 실내악곡, 협주곡 등으로 유명하며, 그중 많은 곡들을 예술에 대한 소련 정부의 규정과 검열하에서

작곡했다.1923년까지 레오니드 니콜라예프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925년까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와 막시밀리안 슈타인베르크(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사위)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교향곡 1번(1924~25)은 발표되자마자 급속도로 전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1937년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작곡과교수로 임명되었고,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에도 그는 계속해서 레닌그라드에 남아 있었다. 그의 최고 걸작들은 당국의 통제 속에서 샘솟는 창작력이 진솔한 음악 언어(관리들은 언제나 그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요구했음)와 만남으로써 가능한 작품들이었다.




Dmitry Shostakovich - Romance


Dmitry Shostakovich (1906-1975), Россия
- Romance: ("Овод" / L'Œstre / "The Gadfly" / "Die Hornisse"),
Op. 97 (1955)
Academy of St. Martin-in-the-Fields
Sir Neville Marriner


시대와 불화한 고독한 천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

1906,9,25 레닌그라드-. 1919년,13세 때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이 허용되어 주로 글라주노프에게서 배웠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한때는 영화관에서 피아노를 친 적도 있으나. 1925년에 뛰어난 성적으로 음악원을 졸업할 때, 그의 제 1교향곡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최근에 작고한 프로코피에프 이후 현대 소련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1962년에는 제13변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오페라, 실내악, 영화음악에 이르는 온갖 분야에 걸친 다작가로서, 1934년의 오페라 <무?스크의 멕베드 부인>, 1935년의 무용 음악<맑음 시냇물>이 부르조아 취미이며, 형식주의 음악이라는 이유에서 소비에트 당국의 탄압을 받았으나, 1950년에는 ??첸팀? 대식목계획을 찬미한 칸타타<숲의 노래>를 썻으며, 현재는 명실공히 소련의 작곡계를 대표하는 진두에 서서 활약을 계속하고 있다.

인상주의 음악의 융성 이래로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절대음아그로서의 교향곡은 56세 때까지는 이미 13편의 교향곡을 작곡한 쇼스타코비치에 의해서 20세기에 있어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감이 있다. 이들 교향곡은 모두 그의 재능을 잘 나타낸 개성적인 것이며, 그 스타일은 현실적이며 투명하고 색?거이며, 그리고 서정성을 지니고 있으며, 선율법이나 율동법에 있어서도 러시아의 국민주의적인 강한 반영을 보이면서, 그 화성과의 복잡한 조합을 통해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교향곡에는 혁명의 찬미나 국책을 고무시킨 내용을 가진 것이 많으며, 그의 작품이 소련 당국으로부터 수차에 걸쳐서 비판을 받은 때문인지 음악이 그 어떤 방편으로 쓰여진 감이 있다. [ 자료출처 ; 네이버 ]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혁명 직전에 태어났고, 공산주의가 몰락하기 14년 전에 사망했다. 그는 창작의 자유와 전제주의 국가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쓰면서, 생의 대부분을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살았다. 그의 역경은 회고록 증언(Testmony)에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은 소련에서 몰래 반출되어 1979년에 출판되었다. 소련에서 음악은 체제의 정책을 재현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는 종종 공개 비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여러 작품들의 연주를 철회해야만 했고, 작곡을 하고도 출판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쇼스타코비치의 공포는 당연한 것이었다. 스탈린 치하에서 화가, 작가, 음악가를 포함하여 2천만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Quoted from[서양음악의 이해] - 20170913challea5913 -



Romance from The Gadfly op 97 by Dmitri Shostakovich - Jonathan Carney, violin.


Romance from The Gadfly op 97 by Dmitri Shostakovich - Jonathan Carney, violin.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London
Frank Shipway, conductor
London 1995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chall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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