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 오페라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Puccini, Opera 'Tosca' (Vissi d'arte, vissi d'amore) Giacomo Puccini 1858∼1924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대표 아리아입니다. 이 노래 제목을 보면 이 오페라도 상당히 낭만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지요. 하지만 이 오페라는 비밀경찰, 고문, 살인 같은 살벌한 소재로 이루어집니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역시 가장 끔찍하고 절망적인 순간에 여주인공이 외치는 탄식과 절규의 노래랍니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Maria Callas 1923-1977
1798년 나폴레옹 혁명군이 이탈리아와의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로마 교황청의 위신은 완전히 추락했습니다. 교황은 프랑스로 끌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고, 로마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이곳을 공화국으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1799년에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떠나자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연합군은 로마를 공격하지요. 나폴레옹 군대에 밀려 시칠리아 섬까지 쫓겨갔던 나폴리의 전제군주 페르디난트 4세와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는 이 해 9월에 군대를 이끌고 로마까지 진격해 프랑스 군대를 몰아내고 로마 공화국을 무너뜨립니다.
다시 권력을 잡은 군주제 옹호론자들이 공화정을 지지해온 자유주의자들과 계몽사상가들에게 보복과 박해를 가하자, 이탈리아 자유주의자들은 지하조직을 만들어 투쟁을 전개합니다. 오페라 [토스카]는 이처럼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로마를 배경으로 해 1800년 6월 17일에서 다음날 새벽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그려낸 사실주의 오페라입니다.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이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은 그 시대 로마가 처했던 상황 그대로입니다. 극중에서도 오페라 가수인 여주인공 토스카(토스카)를 사이에 두고, 자유주의자인 화가 카바라도시(테너)와 전제군주에게 충성하는 경찰청장 스카르피아(바리톤)가 대결을 펼칩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리앙 사르두(Victorien Sardou, 1831-1908)가 명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쓴 희곡 [토스카]를 토대로 이탈리아의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가 대본을 썼습니다.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티토 고비가 [토스카]에서 열연하는 모습 현대적인 화성 속 명곡의 향연
탐미적인 호색한 스카르피아는 국가의 주요 행사 때마다 독창자로 무대에 서는 오페라 가수 토스카의 미모에 반해 어떻게든 그녀를 손에 넣으려 기회를 엿봅니다. 그러나 토스카는 카바라도시와 열애중.
이 사실을 알게 된 스카르피아는 연적 카바라도시를 정치범으로 엮어 교수대로 보내고 토스카를 차지할 계략을 꾸밉니다. 예술가답게 열정과 질투의 화신인 토스카는 간교한 스카르피아의 덫에 걸려 카바라도시와 다른 귀족 부인과의 관계를 잠시 의심하고, 탈옥한 동지(공화국 집정관 안젤로티)를 자기 별장에 숨겨주었다가 체포된 카바라도시는 스카르피아 집무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연인의 목숨을 구하려는 토스카는 평소 뇌물을 밝히기로 유명한 스카르피아에게 돈을 제시하지만,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의 몸을 요구합니다. 연인은 살려야겠고, 뱀 같은 경찰청장에게 몸을 허락하는 일은 너무 끔찍하고... 그런 극한의 심리적 고통과 갈등 속에서 터져나오는 독백이 바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랍니다. ‘예술과 사랑을 위해 살았을 뿐 누구에게도 몹쓸 짓을 한 적이 없는 저에게 왜 이런 가혹한 벌을 내리시나요?’ 하며 신을 원망하는 노래죠.
이 오페라에는 이 아리아 말고도 테너의 멋진 아리아가 두 곡 더 나옵니다. 첫 곡은 성당에 기도하러 온 후작 부인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 마리아 막달레나를 그리던 카바라도시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연인 토스카의 아름다움과 비교하며 부르는 ‘오묘한 조화’, 그리고 두 번째 아리아는 총살형을 앞두고 토스카와의 즐거웠던 날들을 가슴 저리게 회상하며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입니다. 갈등하던 토스카는 스카르피아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카바라도시의 석방 약속을 얻어냅니다. 그리고 로마를 빠져나갈 통행증까지 받은 다음 토스카는 식탁에 놓여있던 칼로 스카르피아를 찔러 죽이죠.
죽음을 기다리던 카바라도시에게 달려온 토스카는 ‘거짓처형’을 알려주지만, 총성이 울린 후 그는 주검으로 돌아옵니다. 교활한 스카르피아는 가짜로 처형한다고 약속하고는 카바라도시를 진짜로 처형하게 했던 것입니다. 스카르피아의 시신을 발견한 부하들이 달려와 체포하려 하자 토스카는 ‘스카르피아, 하느님 앞에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안젤로 성벽 꼭대기에서 몸을 던집니다.
토스카가 악질 경찰청장 스카르피아를 살해하는 2막의 장면을 담은 포스터 (1899) <출처: Adolfo Hohenstein at en.wikipedia> 드라마틱한 연기 펼치다 총상에 골절상
1900년 1월 14일 로마에서 초연된 [토스카]는 [마농 레스코](1893)나 [라 보엠](1896) 같은 푸치니의 전작들보다 더 20세기 음악에 접근한 현대적 음악세계를 펼쳐보였습니다. 각 등장인물에게는 바그너의 음악극에서처럼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시도동기) 가 주어졌습니다. 토스카나 카바라도시, 스카르피아 뿐만 아니라 조역인 안젤로티 또는 성당지기까지도 자신을 나타내는 음악적 모티프를 갖게 된 것입니다. 격정적인 극의 내용에 어울리는 어두운 선율과 자극적인 화성도 [라 보엠]의 서정성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푸치니는 탁월한 무대감각을 지닌 작곡가였고, 관객이 오페라극장에서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파리에서 유행하던 공포-괴기극 ‘그랑 기뇰(Grand Guignol) ’ 기법을 [토스카]에 도입했고, 불협화음을 자주 사용해 극 전체의 불안과 공포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도록 했습니다. 1막의 성 안드레아 성당, 2막의 파르네제 궁, 3막의 성 안젤로 성채 등 로마의 명소이자 역사적인 장소들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도 관객의 흥미를 끄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시간적 배경뿐만 아니라 장소까지 극적인 실감을 더했던 것입니다. 3막에서 로마의 새벽이 열릴 때 들려오는 호른의 음색이나 양치기의 서글픈 노랫가락, 성당의 종소리 등은 이런 효과를 더욱 완벽하게 해주었습니다.
[토스카]는 푸치니의 어떤 다른 오페라보다도 주인공들에게 드라마틱한 연기를 요구합니다. 그때문에 극에 지나치게 몰입한 주인공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1965년 런던 코벤트가든 공연 때는 2막 스카르피아의 집무실 책상 위에 있던 촛대에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머리카락에 불이 옮겨붙어, 당시 스카르피아 역을 맡았던 바리톤 티토 고비가 서둘러 불을 꺼야 했습니다. 1920년대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토스카 역을 노래하던 마리아 예리차는 스카르피아에게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실제로 그의 배에 칼을 꽂아 상처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가장 위험한 장면은 역시 3막의 총살 장면입니다. 장면을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실제로 탄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2005년 이탈리아 마체라타 극장에서는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테너 파비오 아르밀리아토가 공포탄에 다리를 맞아 의사가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고, 공연은 중단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총살을 집행하는 연기자들이 무대 위에서 누구를 쏘아야 하는지 몰라 카바라도시 대신 토스카에게 총을 겨누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토스카가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연습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뛰어내려 소프라노 가수가 골절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위험한 만큼 열정이 넘치는 [토스카]는 그때문에 푸치니 오페라 중 [라 보엠] 다음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는 오페라입니다.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종교 의식이 성대하게 치러질 때 로마의 경찰청장 스카르피아가 음탕한 속셈을 드러내며 토스카에게 다가드는 제1막의 휘날레(피날레, finale)로부터, 그 스카르피아가 토스카의 애인 카바라도씨(카바라도시, Cavaradossi)를 탈옥한 정치인을 숨겨준 죄를 물어 그녀 앞에서 고문하며 애인의 목숨은 네 몸을 내게 허락하느냐에 따른다고 다그치는 제2막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리얼하고 박진감이 있어, 마지막 막이 무색해져 박력이 뚝 떨어진다.
[토스카]는 눈으로 봐야 할 오페라
특히 제3막은 CD로만 들으면 유명한 카바라도씨의 아리아 “별은 빛나고”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사족이 되기가 십상이다. 즉 CD로는 대천사 미카엘 상(像)이 사람들을 위압하듯이 솟구쳐 있는 로마의 성 안젤로 성 옥상(屋上)에서 동트는 새벽하늘의 별들도 보이지 않고, 토스카가 스카르피아에게 약속을 받아낸 거짓 처형이 결국은 실제로 카바라도씨가 총살되고 마는 역전(逆轉)된 결과와, 뒤이어 성벽에서 토스카의 투신자살이라는 스펙타클한 장면도 일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리로만 들으면 그 전 막이 끝날 무렵에 토스카가 스카르피아와의 거래를 승낙한 듯 보이나 그를 찔러 죽인 뒤, 지금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확 풀려 그 전의 분위기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노래로 살고 사랑으로 살며’의 가사를 살펴 보면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다는 식의 사랑의 관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노래에 관해서도 앞에 나오는 ‘arte’(예술)이란 단어가 나오지만 그것은 토스카가 가수니까 ‘예술’이란 ‘노래’를 뜻한다고 이해할 뿐이다. 호소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노래도 아니다.
Maria Callas - Vissi d'arte (Puccini, Tosca)
이 가사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前半)은 한 성숙한 여성이 일상적인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깊은 신앙심을 지닌 일반 이탈리아 여성의 규범적인 행위이다. 토스카는 이 카톨릭적인 선행(善行)을 쌓아왔는데 ‘왜, 어째서’(perchè,perchè)하고 질문하고 있다. 기도도 애원(哀願)도 아닌 질문이다.
후반(後半)은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장식하기 위한 보석류를 바치고, 그리고 하늘의 별에게 노래를 바친다 하여, 비로소 처음 ‘노래’(canto)라는 말이 나온다. 그녀에게 가장 소주한 문제는 마지막 무렵에 와서야 떠오른다. 사랑의 대상에는 일체 말이 없다. 이 역설적인 표현은 이 노래를 서정적인 것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 아리아 다음에 토스카는 우발적인 충동처럼, 이 살인의 동기가 로마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던 경찰 총감 스카르피아를 찔러 죽인다. 이 살인의 동기가 ‘어째서’(perchè)이다. 드라마의 결론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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