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in.Viola

[스크랩] 파가니니 - Variations `롯시니의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

P a o l o 2007. 4. 18. 19:20


Variations on a theme from the opera 'Moses'

파가니니 '롯시니의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

Nicolo Paganini (1782-1840)

 

작품해설

잘 알려진 곡은 아니지만, 작곡자 특유의 기교와 아름다운 가락이 잘 어우러져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저절로 토하게 하는 그런 곡이다. 이 곡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두 사람 사이로 교우 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이탈리아 사람으로 파가니니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10살 적은 롯시니도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고 있었다. 파가니니는 롯시니의 오페라에서 그 주제를 빌려와 몇 곡의 변주곡을 만들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 이것은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1818년)』중에서 주제를 취한 것이다. 원 곡은 피아노 반주에 의한 바이올린 곡으로서, G선만을 사용하여 연주하도록 되어있고 G선의 조율은 내림나음으로 지시되어 있다. 

니콜로 파가니니가 연주회를 갖고져 했을때, 그를 시기한 어떤사람이 그의 바이올린줄을 다 잘라버렸다..알아차렸을때에는 이미 다 잘리고 G 선만 남아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거다.

그는 즉석해서 로시니의 모세라는 오페라의 주제에  변주곡을 갖다붙혔다.. 파가니니는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

바이올린으로 이 곡을 연주하면, G 선만 B-flat 음정까지 올려야 한다.. 그렇게 표기가 되어있다..음계를 생각해본다면,, 솔 라 시니까.. 3개의 음정을 올려야 하게 되는것이다. 정확한 음악적용어로 이야기 하자면 단3도를 올리게 되는것이다. 그렇게 연주를 한다. 줄의 음정을 더 올리게 되면.. 그만큼 현이 팽팽해지고 음색에 좀더 Tension(긴장) 이 들어가게 된다.

 

Gary Karr, Double Bass

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

Fantasia On 'Moses'

 

곡의 도입부는 Adagio로서 느리고 폭넓은 가락이 주제로 암시되며 중간에 플래절렛이 사용되고 마지막 부분에서 장조로 조바꿈된다. 주제는 Tempo alla marcia의 2부 형식으로서 밝은 선율이 앞꾸밈으로 장식되며, 16분음표에 의한 1변주는 유동성을 띠고, 2변주는 활발하게 연주되는데 뒷부분에 중음과 플래절렛이 끼어 든다. 3변주는 다시 16분음표에 의한 눈부신 움직임이 되어 레가토와 스타카토가 교체된다. 전반 반복할 때와 뒷부분에는 술 폰티첼로란 지시가 있다. 피날레(finale)는 다시 6잇단음표의 섬세한 움직임으로 화려하게 부풀어 끝을 맺는다.

중국계 첼로연주자인 요요마의 연주(지구CBS-LP)가 뛰어난데, 더구나 바이올린조차도 상당히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이 곡을 그는 노래로 가득 채우고 그러면서도 첼로란 악기가 기능 면에서 어느 악기 못지 않게 뛰어난 악기임을 들려준다.

 

 

폴 토르틀리에 (1914 ~ 1990) : 첼리스트

 

 

토르틀리에는 어린 시절, 음악을 상당히 어렵게 공부했다. 부모들도 상류 사회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가구직공이었고, 어머니는 하숙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초의 파리의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도록 부추겼다. 토르틀리에의 어머니는 아들을 음악 공부를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은 굳은 일을 마다않고 했다. 오늘날 우리나 일본의 어머니들 같은 모습이라 할까.

하숙집에서 음악가들의 점심을 제공하는 일도 했던 그녀는 어린아들을 이끌고 첼로 레슨을 시키러 다녔다. 거기다 토르틀리에의 타고난 재능도 한몫해 10세 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한그는 피아르, 제라르 에킹에게 배운 후 16세 때 첼로 부문 1등상을 차지하며 졸업했다. 35년에는 대위법과 작곡에서도 1등으로 졸업했다. 이윽고 미국으로 건너가 쿠셰비츠키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의 수석이 되었다. 그가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까지 배의 요리사까지 마다않고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있었다.

어려운 서민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유난히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것일까. 토르틀리에는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상심, 연주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첼로라는 악기는 사람을 너무나 깊은 생각에 빠뜨리나 보다. 전쟁이 끝난 후 2년이 지난 4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주활동을 제대로 시작한 그는 토마스 비첨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를 연주, 녹음해 성공했다. 이후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던 그는 1950년 프라도에 가서 역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한 카잘스를 만났다. 이 만남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나이는 비록 40년 이상 차이가 났지만 두 사람은 닮아 있었다. 음악적 지향점도,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같았다. 처음 만나 마치오랜 친구인 것처럼 얘기했고, 음악으로도 대화했다.

56년 파리 음악원 교수로 초빙되어 12년간 재직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술을 연마하고 개혁하는 대기만성형의 연주가로서,새로운 기술은 그의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라틴 민족의 본질과 어울려 후대에게 전달되었다. 필요하다면 전통과도 과감히 맞서 새로운 장점을 증명하고 반영했다. 그는 첼로 연주시의 몸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악기를 보다 수평으로 잡는 것이 음의 울림을 좋게 만들며, 보잉을 더욱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 구부러진 엔드 핀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는 일명 ‘토르틀리에 핀’이라 불리는데, 그와 친교가 있던 로스트로포비치는 이를 도입해 모스크바 음악원에 보급하기도 했다.

그는 1년간 라무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도 있었고 작곡 활동도 했다. 두 곡의 첼로 협주곡 두 대의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과 많은 실내악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아들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는 이러한 영향을 이어받아 지휘자로서 활동중이다.

출처 : 파가니니 - Variations `롯시니의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
글쓴이 : ros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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