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는 그 동안 작곡한 총24곡의 전주곡을 정리하여 2권으로 나누어 제1권은 1910년에, 제2권은 1912년에 출판하였다. '아마빛 머리의 소녀'는 제1권의 8번 곡으로 르콩트 드 릴의 시에 나오는 소녀에게 바쳐진, 다정하고 감미로운 화음의 곡이다.
이곡은 드뷔시의 첫번째 프렐류드 모음집에 있는 작품중에 하나로 원래는 피아노 곡이지만 바이올린 곡으로도 연주되기도 하고 또 그 선율의 아름다움과 정적인 분위기가 하프의 음색과 어울려 하프로도 많이 편곡되어 연주되고있습니다.
이곡에서 드뷔시의 독특한 인상적인 색채는 하프의 아르페지오에 의한 음의 분산을 통해 마치 인상파 화가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림처럼 풍성하고 여유롭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드뷔시는 `아마빛 머리의 소녀'에서 긴 속눈썹과 부드러운 금발의 곱슬머리를 가진 처녀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구름속 선녀의 머리처럼 부드럽고 따사로우며, 그녀의 입술은 붉은 체리빛깔의 달콤함을 머금고 있으리라 상상됩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이 음악을 감상하노라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곡을 작곡한 드뷔시가 틀림없이 당시 새로운 가치의 예술적 지평을 열었던 인상파 화가 르노와르의 유명한 작품 "이레느 깡 딘베르 양의 초상"(1879년)을 보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런 제목의 작품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위에서 감상하시는대로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 명화는, 당시 별로 많지 않았던 르노와르의 후원자 가운데 가장 그를 잘 이해하던 은행가 루이 깡 딘베르의 귀여운 막내딸 "이레느" 양을 모델로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 르노와르의 이 아름다운 그림과 드뷔시의 아름다운 음악을 서로 연계시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군요.^^ 물론 전혀 정설은 아닙니다.
가을날, 깨트려질 것만 같이 파랗고 청명한 하늘 아래 부드러운 바람이 어깨를 스칠 때, 해맑은 미소의 "아마빛 머리카락"의 귀여운 아가씨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플룻 선율 속에서 이 귀여운 아가씨의 해맑은 웃음이 혹 보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