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NO.1 윤이상 [尹伊桑, 1917.9.17~1995.11.4 한국]
윤이상은 1976년 첼로 협주곡을 시작으로 일련의 협주곡들을 써나갔는데, 이 작품들은 독주악기가 해방과 이상을 향해 몸부림치는 고독한 서정적 자아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작곡가 자신의 심경을 반영하고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의 막강한 힘에 대항하여 내면의 평정을 찾으려고 하나 끊임없이 좌절당한다. 하지만 3악장에 이르면 현세적인 고통, 희망, 절망, 속박, 갈등을 떨쳐버린다.
윤이상 [尹伊桑, 1917.9.17~1995.11.4 한국]
경남 산청(山淸) 출생. 통영에서 서당과 보통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1935년 오사카[大阪]음악학교에 입학, 1937년 귀국하였다. 통영여고 ·부산사범학교 교사를 역임하고 56년 프랑스로 가 파리국립음악원에서 수학하였다.
59년 독일에서 열린 다름슈타트음악제 때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正樂) 색채를 담은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유럽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로 강제소환, 2년간의 옥고를 치뤄야만 했으나, 세계음악계의 구명운동을 힘입어 풀려났다.
71년 독일에 귀화하고, 72년 뮌헨올림픽 개막축하 오페라에서의 《심청》을 비롯, 옥중에서 작곡한 《나비의 꿈》(6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광주여 영원하라》(81),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초연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87),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분신한 사람들의 넋을 추모한 《화염에 휩싸인 천사와 에필로그》(94) 등 15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서양현대음악 기법을 통한 동아시아적 이미지의 표현’ 또는 ‘한국음악의 연주기법과 서양악기의 결합’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범민족통일음악회’의 산파(産婆) 역할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