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스크랩] 말러 / 교향곡 제8번 `천인 교향곡`(Symphony No.8 in Eb major)

P a o l o 2018. 1. 2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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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 교향곡 제8번 '천인 교향곡'

Mahler,Symphony No.8 in Eb major

Gustav Mahler 1860∼1911

 

 

 

말러의 [교향곡 제8번]은 말러의 교향곡들 가운데서도 ‘특수 교향곡’으로 분류된다. 그 이유는 단지 이 교향곡이 수많은 연주자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특이하게도 이 교향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되는’ 교향곡이며 중세 성령 찬미가와 괴테의 [파우스트]를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엮어놓은 음악이다. 라틴어로 된 중세의 성령찬미가와 독일어로 된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이 하나의 교향곡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말러가 이 교향곡에서 구사하고 있는 음악 언어 역시 새롭다. 이 교향곡에선 말러의 음악에서 종종 들려오던 불안한 팡파르나 죽음의 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찬란한 긍정과 사랑의 충만함이 교향곡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말러가 그의 [교향곡 8번]에 대해 남긴 글을 보면 작곡가 자신에게도 이 곡이 얼마나 특별한 작품인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 교향곡들은 이 작품을 위한 전주곡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작품들 속에서 모든 것들이 여전히 주관적인 비극이었다면 이것은 엄청난 환희의 근원이다.”

 

Mahler: Symphony No. 8 / Bernstein ·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성령에 사로잡힌 마지막 환희

 

말러의 일생을 통해 본다면 이 찬란한 환희의 교향곡은 그의 생애 정점에서 이루어진 삶의 마지막 긍정이었다. 말러가 [교향곡 제8번]을 작곡한 1906년 이후 그의 삶은 하향 곡선을 그렸다. 교향곡을 완성한 이듬해인 1907년에 말러는 장녀 마리아를 잃었고 심장 발작의 고통을 겪었으며 빈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 자리를 내놓았다. 이후 미국에서 생활하던 1910년에는 부인 알마의 외도로 결혼 생활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잇따른 불행을 맞이하기 직전, 말러는 그의 생애 최고의 전성기에 창조의 성령에 사로잡혀 그의 마지막 환희를 단숨에 터뜨렸다.

 

알마의 증언에 의하면 말러가 처음 [교향곡 8번]의 악상을 떠올린 것은 1906년 6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당시 말러는 갑자기 [교향곡 8번] 1부의 도입부인 “오소서, 창조의 성령이여”의 모티브를 떠올린 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악상을 주체할 수 없어 갑자기 떠오른 “신비의 합창”의 멜로디를 휴지 조각에 급히 메모할 정도였다. 말러가 음악학자 리하르트 슈페히트와의 대화 내용을 보면 그가 얼마나 들뜬 상태로 작곡에 몰두했는지 잘 나타나있다.

 

“지난 3주간 나는 새로운 교향곡의 스케치를 완성했습니다. 내 다른 작품들은 단지 이 교향곡을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에 지나지 않아요. 나는 전에 이런 식으로 작곡해본 일이 없습니다.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이것은 나의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은 분명 위대한 성취입니다. 나는 이러한 충동에 휩싸여 작곡해본 일이 없어요. 이것은 마치 번개가 나를 내리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모든 것은 즉각적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저 받아 적기만 하며 되었어요. 마치 누군가가 내게 음악을 불러주는 것 같았죠.”

 

말러는 이 특별한 교향곡을 위해 유례없는 거대 편성을 시도했다. 8명의 독창자(소프라노 3, 알토 2, 테너 1, 바리톤 1, 베이스1)와 대규모 성인 합창단과 어린이 합창, 그리고 하프와 피아노 등 특수 악기들이 포함된 5관 편성의 관현악과 별도의 금관 밴드를 무대 위쪽에 배치해 교향곡의 마지막을 입체 음향으로 장식했다. 1910년 9월 뮌헨 초연 당시에는 [교향곡 8번]의 연주를 위해 무려 858명의 성악가들과 171명의 연주자들이 동원되었다. 당시 최대의 연주 효과를 위해 합창단의 규모를 최대한으로 늘린 탓에 오케스트라의 규모도 총보에 요구된 것 이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 덕에 [교향곡 8번]은 ‘천인(千人)교향곡’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오늘날 이 교향곡을 연주할 때 반드시 1천 명 이상의 연주자가 동원되는 것은 아니며 대략 350명에서 400명 정도의 인원으로도 이 교향곡을 충분히 연주할 수 있다.

 

 

 

1부 - 성령의 빛과 사랑

 

<1부는 창조의 성령을 통해 빛과 사랑을 노래한다>


라틴어 성령 찬미가를 가사로 하는 제1부의 도입부는 마치 성령의 은총이 내리듯 찬란한 음악으로 시작한다. 이 곡에서 성령 찬미가를 구성하는 몇 개의 키워드는 말러의 음악적 모티브에 정확히 상응하고 있기에 찬미가의 키워드와 음악 모티브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이 교향곡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제1연의 핵심어인 ‘창조의 성령’(creator spiritus)은 성령의 창조적 힘을 암시하는 남성적인 음악으로 표현된다. 마치 번개가 내리치듯 4도 하행한 후 7도 상행하며 곧은 직선을 그리는 선율의 모양은 매우 힘차고 역동적이다. 반면 제2연의 핵심어인 ‘위안의 영’(paraclitus)는 아치 모양의 부드러운 곡선이 강조된 여성적인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이는 성령의 자비로운 측면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처럼 성령 찬미가에 암시된 성령의 두 가지 측면, 즉 남성적인 창조의 성령과 여성적인 자비의 성령은 각기 적절한 음악적 모티브로 대변되며 이 곡의 핵심적인 동인으로 작용한다.


1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3연 후반부의 “축복의 빛으로 우리 정신을 인도하시고 우리 마음을 사랑으로 넘치게 하소서”(Accende lumen sensibus, Infunde amorem cordibus)라 할 수 있다. 이 극적인 음악이야 말로 [교향곡 8번]의 1부와 2부를 묶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빛’과 ‘사랑’을 노래한 이 음악은 ‘파우스트’를 바탕으로 한 제2부에서 파우스트의 구원을 암시하는 장면에서 똑같이 사용된다. 제2부의 구원 암시 장면에서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영의 세계에서 고귀한 한 사람이 악의 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누구든 줄곧 노력하며 애쓰는 이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의 핵심 구절이라 할 만한 이 부분의 음악이 제1부 성령찬미가의 핵심인 ‘빛’과 ‘사랑’의 음악과 일치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말러는 파우스트의 구원, 혹은 인간의 구원이 그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성령의 빛과 사랑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2부 – 파우스트의 구원과 환

 

[교향곡 8번]의 제1부가 일종의 칸타타라면 제2부는 음악극이라 할 만하다. 2부는 괴테의 [파우스트] 중 은둔자 장면으로부터 마지막 신비의 합창까지의 텍스트를 사용하고 있으며, 합창단과 독창자들이 각기 특정 배역을 맡고 있어서 오페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부는 영광의 성모에 의해 구원받는 파우스트를 그린다>


제2부의 막이 오르면 먼저 숲 속의 스산한 바람소리를 묘사하는 오케스트라의 서주와 성스러운 은자들의 신비로운 합창이 들려온다. 이윽고 황홀경에 빠진 감격한 신부(바리톤)가 신과의 합일의 기쁨을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명상하는 신부(베이스)는 번뇌에 괴로워하며 그의 모든 고통을 이겨낼 전능한 사랑을 구한다. 그러자 천사들과 승천한 소년들이 나타나 “누구든 줄곧 노력하며 애쓰는 이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라는 [파우스트]의 핵심 사상을 노래하지만, 성숙한 천사들은 “지상의 찌꺼기”를 나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경고하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노래한다. 바로 이 장면에서 1부의 “우리의 덧없는 육신을 당신의 힘으로 강하게 하시고”(Infirma nostri corporis Virtute firmans perpeti)에 해당하는 어두운 음악이 흐르고, 말러의 [교향곡 4번] 2악장을 연상시키는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젊은 천사들과 승천한 소년들이 파우스트를 보살펴 좀 더 높은 완성의 경지에 오르도록 도와주고, 마리아를 숭배하는 박사(테너, 이하 ‘마리아 박사’)는 파우스트를 구원할 수 있는 영원한 여성, 즉 영광의 성모를 숭배한다. 그러자 멀리서 영광의 성모가 떠오고, 바이올린이 지극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성모의 주제를 연주하면서 성모의 자비로움을 표현한다.

 

영광의 성모 앞에 세 명의 죄 많은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소프라노)과 사마리아 여인(알토), 그리고 이집트의 마리아(알토)로서 모두 지난날의 죄를 참회하며 파우스트를 용서해줄 것을 청한다. 그리고 제2부의 프리마돈나라 할 수 있는 그레트헨(소프라노, 텍스트에는 ‘속죄의 한 여인’이라 표시됨)이 성모께 매달리며 그녀의 옛 연인이었던 파우스트의 구원을 간절히 청하자, 영광의 성모(소프라노)는 마침내 파우스트를 용서하고 하늘로 불러올린다.


여기서 영광의 성모의 대사는 단지 두 줄밖에 안 되지만 그녀는 이 교향곡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서 파우스트를 구원하는 영원한 여성상이며, 말러에게 있어서는 그의 영원한 연인 알마를 상징한다. 이윽고 마리아 박사가 엎드려 경배하며 “동정녀, 어머니, 여왕, 여신”이라 외치며 영광의 성모를 찬양하고, 파우스트가 첼레스타와 피아노, 하프가 만들어내는 영롱한 음악에 맞추어 승천하자 어디선가 아주 고요하게 시작된 신비의 합창이 점차 벅찬 환희로 상승하고 감격한 신부의 주제와 영광의 성모 주제가 결국 제1부의 ‘창조의 성령’ 모티브로 통합되면서 오로지 성령만이 남아 거대한 교향곡의 대미를 장식한다.

 

 


다양한 소리들이 어우러진 거대한 작품

 

연주 시간만도 1시간 반에 이르는 말러의 [교향곡 8번]은 실로 엄청난 대작이다. 그러나 기악과 성악이 함께 울리는 이 교향곡의 거대한 규모와 압도적인 음향에 현혹되어 이 작품의 가치를 ‘질’보다는 ‘양’으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1910년 뮌헨 초연 당시 공연기획자였던 에밀 구트만에 의해 붙여진 ‘천인교향곡’이란 별명 덕분에 이 작품의 규모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해져 말러 [교향곡 제8번]은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과대 망상적 감정 표현이나 거대화 경향의 대표적 예로 거론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이 교향곡을 잘 들어보면 가장 섬세한 실내악으로부터 가장 웅장한 합창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소리들이 존재한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우주의 모든 만물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듯 잘 조화되고 있어 말러의 다른 교향곡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걸작으로 우뚝 서있다.

 

 

 

 

 

 

 

 



출처 : 관악산의 추억(e8853)
글쓴이 : 이종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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