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오규원 / 고요
"Сирень" ("Siren' "), op. 21 no. 5 (1902). По утру, на заре, По росистой траве, Я пойду свежим утром дышать; И в душистую тень, Где теснится сирень, Я пойду свое счастье искать...
В жизни счастье одно Мне найти суждено, И то счастье в сирени живёт; На зелёных ветвях, На душистых кистях Моё бедное счастье цветёт...
In the morning, at daybreak, over the dewy grass, I will go to breathe the crisp dawn; and in the fragrant shade, where the lilac crowds, I will go to seek my happiness...
In life, only one happiness it was fated for me to discover, and that happiness lives in the lilacs; in the green boughs, in the fragrant bunches, my poor happiness blossoms...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2년, 러시아에서 망명한 피아노계의 거장 라흐마니노프는 미국 비버리 힐즈의 주택가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역시 러시아에서 망명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유명한 두 음악가는 서로를 만나본 적이 전혀 없었고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180Cm에 가까운 큰 키에 죄수를 떠올릴 만큼 짧게 깍은 머리, 그리고 깊은 슬픔이 드리운 무뚝뚝한 라흐마니노프에 비해 스트라빈스키는 키가 작고 말이 많은 사람으로 그들은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이 두 음악가 사이를 오가던 친구들은 서로를 한번 만나볼 것을 청했지만, 그 때마다 라흐마니노프는 어눌한 목소리로 '저 시대에 뒤진 노인과 만난다 해도 난 할 말이 없다'고 말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그 엉터리 혁명가와 만나라구?" 하며 정색하곤 했다.
어느날 한 지휘자가 두 사람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식탁에 앉은 두 사람은 냉랭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손님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나고 물었을 때야 비로소 라흐마니노프는 '버터 바른 빵'이라고 대답했고 스트라빈스키는 '벌꿀'이라고 간단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 날 두 음악가는 인사도 나누지 않고 그대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며칠 후 스트라빈스키의 집 앞에 한 대의 자동차가 멈춰섰다. 이어 묵직한 병을 손에 든 라흐마니노프가 차에서 내렸다. 그가 스트라빈스키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 마침 문을 열고 나온 스트라빈스키는 라흐마니노프의 뜻하지 않은 방문에 놀라 잠시 멈칫거리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라흐마니노프는 손에 쥔 병을 스트라빈스키의 가슴에 들이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별꿀이요, 당신이 좋아한다기에..."
그리고는 차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꿀통을 품에 안은 스트라빈스키는 멍한 표정으로 멀리 사라져가는 자동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한달 후 라흐마니노프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