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2번 다장조, Op.61
1844년, 부인 클라라와 러시아 연주여행을 마치고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한 상태가 되어 라이프찌히로 돌아온 슈만은 다시 한번 실망감에 젖어든다. 오랜 동안 공석이었던 라이프찌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멘델스존 후임으로 슈만이 아닌 덴마크인 닐스 가데(Niels W. Gade)가 지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슈만은 의사의 권유로 1844년 12월에 드레스덴으로 이주를 결심한다. 1845년 들어서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바흐의 작품연구에 골목하던 슈만은 그 해 말에 다시 창작의욕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교향곡의 스케치를 약 보름동안(12월 12일-28일)에 완성한다. 그러나 오케스트레이션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작품의 총보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1846년 10월 19일이다. 이 곡은 같은 해 11월 5일 멘델스존의 지휘로 라이프찌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공연의 성과는 작곡가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제2번 교향곡의 양식적 특징으로는 베토벤 교향곡의 투쟁적 성격에 보다 접근한 점을 들 수 있다. 제2악장에 스케르초가 배치된 것, 도입부의 금관악기에 의해 팡파레처럼 연주되는 5도가 아다지오 악장을 제외한 모든 악장의 결정적인 순간에 이 곡의 상징으로 승리의 환성처럼 나타나는 점, 특히 제1, 제2악장이 가지는 "프로레스탄적" 성격, 이것을 특징짓는 강렬한 부점 리듬, 마지막 악장에서 베토벤의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An die ferne Geliebete)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다단조에서 다장조로 전조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출생과 환경 1810년 독일 작센 근교에서 출생 문학에 관심이 높은 교양있는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성장
교육과 작품 활동 7세에 교회 오르가니스트에게 피아노 배웠는데 음악적 진보가 놀라워 11-12세 무렵부터 피아노곡이나 합창곡, 관현악곡 등을 작곡 중학교 졸업 무렵부터 슈만은 낭만주의 문학에 깊이 심취하고 칸트. 피히테등 관념 철학을 탐구 20세에 파가니니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 음악가의 길을 결심 프리드리히에게 피아노를 도른에게는 작곡을 배움 작곡과 문학의 길을 걷기로 하여 작품1에서 23에 이르는 수많은 피아노곡을 작곡 1834년에는 음악 신보를 창간하여 음악 비평에 착수 1840년 비크의 딸 클라라와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성공 현악 4중주곡. 피아노 5중주곡. 피아노 4중주곡 창작 1843년 멘델스존의 음악학교에서 강사 1850년까지 드레스덴에 머물면서 개인 교수와 창작 1847년 리더타펠의 지휘자 역임 1850년 뒤셀도르프 관현악단 합창단의 지휘자 1854년 정신적인 병세가 악화되어 46세로 생애를 마감
작품의 특징 슈만은 아버지에게 문학적 관심을 어머니에게는 민감한 성격과 교양을 물려받았다. 슈만의 예민한 성격과 우울증 등의 유전적 영향이 그의 정신 세계를 지배했으며 때로는 그의 정신 분열 상태가 음악 속에서 드러날 때도 있었다. 슈만의 작품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렵다. 그의 작품은 음의 울림, 음과 음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긴장과 이완 그리고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모티브 이러한 소재를 추상화하기보다 구체화하는데 흥미를 갖고 있었다 . 그리고 음악의 구성보다는 어느 한 점을 포착하여 그것을 확대. 해체해가는 데 전념하였다. 그러나 그의 즉흥적인 음들은 단순히 공상과 정열에만 멈추지 않고 깊은 지성을 바탕으로 개인적 자유주의 속에서 무한한 감동을 전달해주는 낭만주의 환상적인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슈만의 작품은 매우 아름답다 .단지 아름다운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안, 절망, 고뇌, 기쁨, 감동 등을 성숙한 이미지로 전환시켜 무한한 감흥을 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