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480명 중 400등.’
난치병 환자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세계 최고의 생명공학자로 우뚝 선 황우석(黃禹錫·52·수의과대 수의학과) 서울대 교수의 고등학교 시절 첫 시험 성적이다.
1969년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한 황 교수는 1학년 중간고사에서 400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충남 부여의 은산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3년 장학생으로 중학교를 마친 황 교수로서는 충격적인 성적이었다.
황 교수는 이후 ‘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겠다는 각오’로 친구들과 ‘등안대기 클럽’을 만들어 공부에 매진했고 2학년 때는 전교 200등, 3학년 때는 상위 10% 안에 드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루 4시간밖에 안 자며 세계적 연구 성과를 이끌어낸 뚝심은 고교시절부터 그 싹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황 교수의 학창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중학생 때부터 대전의 친척집에서 기거한 황 교수는 차비가 없어 1년에 두 번밖에 고향집을 찾지 못했다. 이발비가 없어 생활지도 담당교사로부터 머리를 깎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하며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받았다. 그래서 고교 동창들은 황 교수를 ‘도서관 장학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대전고 동창으로 황 교수와 절친한 조석준(趙錫俊) 전 KBS기상캐스터는 “황 교수는 대전에 친척집이 있었지만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구김살이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황 교수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황 교수가 ‘축구를 좋아하고 협동심이 강함’ ‘성실하고 노력하는 학생’ ‘근면하고 명랑함’ 등으로 다소 ‘평범하게’ 기재돼 있다.
황 교수는 또 청소년적십자(RCY)에서 활동하며 농촌 일손 돕기 등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특히 특별활동으로 3년 내내 원예반에서 활동했던 황 교수는 고등학교 때 장래 희망을 ‘축산’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고교 3학년 때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라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수의대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소를 키웠던 어머니를 도우며 소에 대한 최고 전문가가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
황 교수와 절친했던 고교동창 오연군(吳淵군·준장) 공군본부 교육훈련감은 “함께 공군사관학교로 진학하자고 권유했지만 황 교수는 끝까지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leon@donga.com ) [ 출처 : 동아일보 ( http://www.donga.com/ ) 2005. 5.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