涉淚 / 박준표
긴 겨울을 품었던 새하얀 조각들은
호수속에 녹아 내린지 오래지만
모두가 떠난 호수 위에
홀로 눈물짓는 이유는
떠나간 벗들을 원망함도 아니요
짝 잃은 슬픔도 아니다
날 수 없는 설움은
다른 모든 슬픔까지 삼켜버렸다
부러진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가해지는 고통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내 몸을 휘감고 있는 절망의 끈이었다
점점 조여오는 절망을 풀기 위해
한 때 백조였다는 자부심도
하늘을 마음껏 날아 다니던 기억까지도
모두 눈물로 태워버렸다
호수 위에 흐드러져 있던
낙엽만이 내 심정을 아는 듯
내게로 흘러와 몸을 간지럽힌다
그들도 가을에 불태워져 버려지지 않았던가
서로를 부벼대며 위안을 삼으려 하지만
그들은 곧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
황혼을 지나 어둠이 덮어가는 순간에도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순간에도
내가 날아 왔던 변함없는 그 곳
난 그 하늘만 바라보았다
세월은 인내하며 기다린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 다는 것을
다시 호수로 날아 드는 옛 친구들을 보며
깨달았지만 그들은 날 알아보지 못했다
깃털마저 검게 퇴색되어버린 날개 잃은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흔들리는 호수속에서
처량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흐르는곡-Black swans/Lacrimas Profund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