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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랑수와 조세프 고섹: 대편성 찬미가 Te Deum

P a o l o 2010. 6. 16. 11:23

Te Deum à Grand Orchestre 'for the Federation of July 14, 1790'
프랑수와 조세프 고섹: 대편성 찬미가 Te Deum
François-Joseph Gossec 1734 – 1829
1. Te Deum - Track 전곡 연주

     

Te Deum à Grand Orchestre 'for the Federation of July 14, 1790'
Jill Feldman, soprano
Brigitte Lafon, mezzo-soprano
Gérard Lesne, countertenor
Howard Milner, tenor
Glenn Chambers, baritone
Choeur: Choeur national
Orchestre: Choeur et Orchestre de l'Universite de Paris-Sorbonne
conductor: Jacques Grimbert
Level: Adda 1989
     
Charles Monnet : Festival of the Federation 14 July 1790
     
Te Deum à Grand Orchestre 'for the Federation of July 14, 1790'

1. Te Deum
2. Te Aeternum Patrem
3. Tibi Omnes Angeli
4. Te Gloriosus
5. Tu Rex Gloriae
6. Tu Devicto Mortis
7. Tu Ad Dexteram Dei
8. Judex Crederis
9. Te Ergo Quaesumus
10. Aeterna Fac
11. Et Laudamus
12. Dignare Domine
13. Non Confun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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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조제프 고세크 François-Joseph Gossec
프랑수아 조셉 고세크프랑수아조제프 고세크(François-Joseph Gossec, 1734년 1월 17일 ~ 1829년 2월 16일)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벨기에의 음악가이다.

바이올린 독주용의 소품 〈가보트〉의 작자로 잘 알려진 그는 교향곡과 오페라, 종교음악의 작곡가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베르니에서 태어나 성가대원이 되어 바이올린을 배웠고 17세 때 파리로 가서 지휘자 겸 작곡가로 활약하여 파리 음악원 교수, 학사원 회원 등으로 있다가 그 곳에서 별세하였다. 작곡 활동은 여러 갈래에 걸쳤으며, 만하임 악파의 영향이 강하나, 40곡 이상의 교향곡, 협주교향곡, 20곡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다수의 발레곡, 종교곡, 실내악곡이 있고 특히 그 때까지 교향곡 면에서 뛰어난 작곡가를 갖지 못하였던 프랑스에서 그의 교향곡 활동은 오스트리아의 하이든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1769년 초 고섹(Gossec)이 창립한 '아마추어 음악회'(Concert des Amateurs)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것은 정기회원 기부자를 중심으로 한 기부 음악회였다. (...) 음악회는 대성공이었고 1781년까지 12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경희, 243쪽)
고섹(François-Joseph Gossec, 1734-1829)은 프리메이슨 'Grand Orient de Belgique' 지부 회원이었으며 프랑스 혁명기를 주름잡은 작곡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별 주저없이 프랑스 혁명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프랑스와 조제프 고섹을 꼽을 것이다. 특별히 혁명의 불길이 거세게 번지고 있었던 1789년부터 1794년 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아무도 그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고섹의 위치는 확고했다. 흔히 그의 경쟁자로 지목되는 메율(Méhul)이나 르 쉬에(Le Sueur), 케루비니의 활동도 집정내각 시대에만 겨우 그와 겨룰 수 있을 뿐이다. (59쪽)
그는 음악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음색의 선택에 있어 매우 확실한 감각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대중의 음악수준을 올려놓기에 적당한 그의 음악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선율은 딱딱하지 않으면서 절제되어 있고, 화성은 명확하고, 악기의 관용적인 처리는 항상 매우 정확하다. (60쪽)
- 민은기, "프랑스 대혁명의 음악사적 의의." 『음악이론연구』(서울: 서울대학교 서양음악연구소, 1997), 제2권, pp.33-85.
     
     

'아마추어 음악회'는 미국 독립전쟁을 맞아 돈 때문에 중단되었다. 그러나 음악회는 곧이어 프리메이슨 지부 이름을 딴 음악회로 되살아난다. 정황을 보아 음악회 후원자가 다른 프리메이슨 지부로 바뀌면서 좀 더 시민 중심으로 거듭난 듯하다.

'아마추어 음악회'가 중단된 지 얼마 안 되어, '올림픽 지부 음악회(Concert de la Loge Olympique)'가 시작되었다. 올림픽 지부 음악회의 모든 회원들은 프리메이슨 지부에 가입해야 했고, 입회는 기존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었다. 1785년에는 남자 300명과 여자 102명이 회원이었고 점점 숫자가 증가했다. 회원의 출신 성분도 귀족에 한정되지 않았고, 은행가, 의사, 출판업자 등이 가입했고, 협력회원으로는 메훌(Méhul), 필리도르(Philidor)와 같은 음악가들도 있었다.

- James H. Johnson, Listening in Paris. A Cultural Histor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5), p. 74. 재인용: 이경희, 243쪽.

프랑스 혁명기에 고섹의 경쟁자였다는 메율(Méhul)도 프리메이슨이었단다.

'올림픽 지부 음악회'를 만들고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사람은 고섹의 제자이자 프리메이슨이었던 조제프 생조르주(Joseph Saint-George, 1745-1799)이다(Saint-Georges, Joseph Bologne,Cheval!ier de, NGD2). 생조르주는 이 음악회를 띄우려고 빈으로 가서 하이든에게 교향곡을 의뢰했으며(82, 84, 90, 91번) 대성공을 거두었다.

글 출처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음악 이야기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6)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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