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한용운
나는 서투른 화가(畵家)여요.
잠 아니 오는 잠자리에 누워서 손가락을 가슴에 대고
당신의 코와 입과 두 볼에 샘 파지는 것까지 그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작은 웃음이 떠도는
당신의 눈자위는 그리다가 백 번이나 지웠습니다.
나는 파겁 못한 성악가여요.
이웃 사람도 돌아가고 버러지 소리도 그쳤는데
당신이 가르쳐 주시던 노래를 부르려다가
조는 고양이가 부끄러워서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는 바람이 문풍지를 스칠 때에 가만히 합창하였습니다.
나는 서정 시인이 되기에는 너무도 소질이 없나 봐요.
<즐거움>이니, <슬픔>이니, <사랑>이니, 그런것은 쓰기 싫어요.
당신의 얼굴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집과 침대와 꽃밭에 있는 작은 돌도 쓰겠습니다.
한용운 시집《산사에 새겨진 이름 p.58》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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