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rumental

[스크랩] 타레가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P a o l o 2019. 1. 25. 21:15
Francisco Tarrega Eixea (1852∼1909) Francisco Tarrega Eixea (1852∼1909)
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Recuerdos de la Alhambra
를 감상하겠습니다.

프란치스꼬 타레가 [1852.11.21~1909.12.15]

에스파냐의 기타 연주자 ·작곡가.
국적 : 에스파냐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에스파냐 카스티용 근교
주요작품 :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아침의 노래》

카스티용 근교 출생. 근대 기타연주법의 창시자로 일컬어질 만큼 뛰어난 음악성을 보였으나, 1906년 오른팔이 마비되어 그 후 연주생활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작곡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을 비롯한 《아침의 노래》 등 많은 기타독주곡과 연습곡 등을 남겼다. 또한 J.S.바흐와 베토벤 등의 고전을 기타용으로 편곡한 공적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야후백과사전]

알함브라 궁전과 타레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곳은 황홀한 세계였다. 인간의 손길이 얼마나 섬세할 수 있는지 그 실재를 보여주는 그런 곳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수많은 기둥과 벽, 그리고 천장은 아라베스크 문양과 아라비아 서체의 코란 글귀들로 빈틈없이 장식되어 있었다. 여기에 각 부분에는 알맞는 색채까지 곁들여 황홀한 경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랬단 말인가. 또 그런 신기는 어떻게 터득했단 말인가.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Granada)는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주에 있다. 그곳에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 촬영했던 흰눈이 1년 내내 머무는 높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을 이루는 작은언덕, '세로 델 솔'(태양의 언덕)위에 배 모양을 한 작은 대지가 바로 궁전의 터다. 궁전은 한쪽으로 알카사바 요새, 다른 한쪽으로는 정원이 딸린 헤네랄리페란 이름의 여름궁전을 거느리고 있다. 태양의 언덕 아래로는 작은개울 '다로'가 흐른다. 개울 너머의 작은 언덕위에는 하얀색 집들이 들어서있다.

「알바이신」이란 이 지역은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다로 개울반대편으로는 아름드리 수목으로 늘 푸르름을 자랑하는 숲이 있고 숲을 지나면 궁전덕분에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윤기나는 신시가지가 펼쳐진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은 알함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그리고 알바이신이다. 알함브라(Alhambra)궁전의 골격은 13∼14세기 무어왕조의 유세프 1세와 그의 아들 모하마드 5세가 만들었다. 무어왕조의 시작은 8세기초 스페인의 남부에서였다. 7세기 아라비 아반도에서 발흥한 이슬람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도읍한 우마야드 왕조가 탄생하면서 급격히 주변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북부 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반도로 들어간 것이 714년. 무어왕조는 이때 이슬람을 바탕으로 창건되었다.

무어왕조 초기의 대표적 건축물로는 코르도바의 대모스크가있다. 84년 알함브라 궁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알함브라의 땅 그라나다는 무어세력이 가장 늦게까지 버티었던 곳. 이곳이 기독교 세력에 의해 정복되면서 스페인의 기독교화는 완성되었던 것이다.

신시가지의 주 도로인 그란비아로부터 플라자 누에바를 거쳐 쿠에스 타데고메레스란 비탈길을 오른다. 기념품 가게들이 끝나면서 숲이 펼쳐진다. 차도와 인도가 그 속으로 달린다. 인도를 따라 5분쯤 걷다보면 궁전의 정문격인「마디나 알 함라」란 방형의 탑문이 나온다. 문루에는 손바닥이 그려져있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다. 이슬람 교리를 상징한다고도 하고 기독교의 십자가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문은 말발굽 모양의 아치형이다. 아치형은 열쇠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과 열쇠는 서로 통하지 않는가.

거기서 다시 약간 비탈진 정원을 지나면 거대한 카를로스 5세 궁전이 나온다. 16세기 것이다. 그라나다 출신의 작곡가 데 파야(De Falla)를 기념하는 음악제가 여름이면 궁전안의 원형 가설극장에서 열린다. 문제의 알함브라 궁전(입장권과 안내표지판에는「나자리에스 궁전」이라표기)은 카를로스 궁전 바로 뒤에 있다. 알카사바 또한 가까운 거리다.

알함브라 궁전의 명성은 미국외교관 워싱턴 어빙이 쓴 「알함브라 이야기」(1832)와 로드리고의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높아졌다. 여행기와 음악을 먼저 접했든, 접하지 못했든 궁전은 찾은 이들을 우선황홀경으로 빠져들게 하고 그리고는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어빙도 「궁전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다른 시간대, 다른 세계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궁전의 입구는 좁다. 실내는 어둡다. 조금씩 눈이 익숙해지면서 현란한 색채로 장식된 주두와 벽면, 세다나무의 천장들이 보인다. 이 때 쯤이면 누구나 어빙과 같은 느낌을 갖게된다. 우리의 발걸음이 한 발짝씩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는 신비의 세계, 이전에는 결 코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다가가게 된다.

「대사의 방」이 나온다. 방은 3면이 벽으로 되어있고 그중 한벽에는 아름다운 아치형 창이 나 있다. 그 속으로 백성들의 거주지였던 알바이신이 들어온다. 그 반대편의 터진 쪽으로는 연못이 있다. 각국 대사 들을 접견하기 위해 왕림한 술탄(무어왕)은 옥좌에 앉아 한쪽으로는 연못을, 또 다른쪽으로는 시가지를 즐겼던 것이다. 이 방의 압권은 천장 장식. 8천17개의 세다나무 조각으로 짜여진 돔형 천장에는 여러가지 기하학적 문양들이 베풀어져 있다. 벽면, 주두 장식도 이에 못지않다. 마침 이곳을 찾은 파키스탄 중년신사가 벽면에 쓰여진 글귀들을 읽는다.「오직 알라만이 승리자이다」.

궁전을 다할 수 없는 정성으로 섬세하게 꾸민 것은 무어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알라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금붕어가 노니는 긴 장방형의 연못 수면위로 대사의 방 건물이 비친다. 인도의 타즈마할은 이를 모델로 하여 건축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연못은 완전히 건물과 벽으로 안겨 있고 작은 분수가 뽑아 올리는 물로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

사자 궁전. 최고의 신기가 펼쳐진 공간이다. 무하마드 5세 시대의 걸작으로 124개의 대리석 기둥과 화려한 장식이 숨을 멈추게 한다. 기둥들에 완전 포위된 4각의 작은 빈 공간인 파티오(patio)의 한가운데에는 12마리의 돌사자가 연신 물을 뿜어내고 있다. 정적을 규칙적인 분수의 물소리가 깨고있다. 사자궁전이란 이름은 사자분수 때문에 붙었다. 이곳은 내전, 여인들의 처소로 이슬람세계에선 하렘이라 불렀던 곳이다. 남자는 술탄만이 출입이 가능했다. 만약 외부인이 들어섰다가는 목이 달아난다. 여인들의 생활공간에 굳이 사자조각을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사자가 불법을 수호한다고 하여 탑을 세울때에는 사자를 곁에 둔다. 무어왕도 사자가 후궁들을 지켜주리라 생각했단 말인가. 아무튼 사자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리얼」하다.

Recuerdos de la Alhambra

이 곡의 작곡자인 타레가는 제자인 콘차 부인으로부터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아픔을 안고 여행을 하던 중에 알함브라 궁전을 찾게 되었다. (타레가에 관해서는 다른 글 참고.) 일설로는 콘차 부인과 궁전에서 같은 밤을 보냈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그 여인으로부터 사랑의 상처를 겪은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 세상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허락받지 못할 때 그 무엇으로 빈 가슴을 메울 것인가. 아름다운 궁전 창 밖의 달을 보며, 그는 그 상심을 가단조의 우수(憂愁)로 시작한다. 전 곡을 걸쳐 마치 은구슬 뿌리듯 관통하고 있는 트레몰로(Tremolo)의 멜로디와 강약을 교차하는 3박자의 저음 아르페지오...

<알함브라>는 A-A-B라는 형식을 취하는데, 후반의 조바꿈을 통해 어둠에서 밝음으로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 조바꿈은 장조ㆍ단조를 변화시키지는 않고 키를 반음씩 올려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기법으로 흔히 사용되는데, 이 곡은 단조에서 장조로 바꿈으로서 아픔을 딛고 생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 타레가라는 천재만이 빚어낼 수 있었던 감각이라 하겠다. 마지막 코다에서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인상깊게 새기며 아쉬운 듯 아쉬운 듯 여운을 끌다 끝을 맺는다. 이 곡은 원래는 <알함브라풍으로(Ala Alhambra)>라고 이름짓고 <기도(Invocation)>라는 부제를 덧붙여 놓았는데, 출판사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 고쳤다 한다.

기타 음악으로서는 로망스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Recuerdos De La Alhambra)은 에스파니아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타레가(Francisco Tarrega Eixea; 1852 ~ 1909)의 작품입니다. 전통적으로 기타음악이 강세를 보이는 에스파니아에서도 이 음악은 클래식 기타의 표본이라 불리울 만큼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유적지의 하나입니다. 그라나다(Granada)에 위치한 이 궁전은 해마다 수십만의 인파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관광객의 대부분은 타레가의 기타음악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이 곳을 여행합니다. 무어족의 유적지로 알려진 알함브라 궁전은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무어인들의 자취를 느끼게 해 주는 대형 건축물입니다.

알함브라 궁전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먼저 그 호젓함과 공간의 미에 감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언덕위에 자리한 그 건축물의 쓸쓸함에 애수를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1238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는 이 궁전은 당시 건축 자체의 웅장함과 예술성만을 꾀하는 여타의 유럽의 건축물과는 달리 조경과 주위 풍경과의 배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특징이 있습니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타레가는 근대 기타연주법의 틀을 완성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입니다. 사망하기 3년 전에 팔이 마비되는 병을 앓고 난 후 더이상 기타를 연주할 수 없게 되자 이를 비관하며 슬픈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타레가의 음악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특히 팝에서는 최고의 소재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영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에서 그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주제로 한 에뛰뜨(Etude;습작?)가 1984년 오스카의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예술의 최고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알람브라궁전이 이슬람교도 국가가 아닌 스페인 땅에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현재 스페인 지역에 있었던 서고트왕국은 711년 이슬람 옴미아드왕조의 침입을 받아 붕괴되었다. 이슬람 세력은 피레네를 넘어 프랑크왕국도 노렸으나 732년의 투르푸아티에 싸움에서 패배하여 이베리아반도로 물러났으며, 그 후부터 8세기 동안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였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동안 산업이 발전하였는데, 당시의 이슬람의 문화·기술 수준이 서유럽을 능가하였다는 것은, 이미 10세기에 코르도바 도서관이 60만 권의 서적을 소장하여 그리스철학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점, 11세기에 제지(製紙)가 시작되어 있었다는 점 등으로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남쪽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를 한눈으로 바라보는 구릉 위에 세운 알람브라궁전은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왕조인 나스르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후반에 창립하기 시작하여 증축과 개수를 거쳐 완성되었다. 나스르왕조는 이베리아반도에 존재하였던 이슬람 최후의 왕조(1231~1492)로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내쫓으려는 그리스도교의 국토회복운동에 의해 영역을 잃어가다가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5세의 가톨릭 부부왕(夫婦王)에 의하여 1492년 정복되었다.

'중세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 등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알람브라궁전은 그러한 찬사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다른 유럽의 궁전들처럼 거대함, 보석장식, 그림장식 등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우상숭배를 금지한 이슬람 교리에 따라 내부 장식을 식물과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만 구성하였기 때문에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아벤세라헤스의 방', '왕의 방', '두 자매의 방'에서 볼 수 있는 모사라베라고 부르는 종유석 장식과 왕의 공식 접견실인 '대사의 방'의 아라베스크 무늬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물이 귀한 땅(아프리카, 중동)에서 살아온 이슬람교도들의 오아시스에 대한 열망은 곳곳에 연못과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왕의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페에서는 아치형으로 물을 뿜는 분수와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다. 알람브라궁전에서 가장 뛰어난 중정(中庭)으로 손꼽히는 왕궁의 아라야네스의 안뜰은 정확한 대칭구조를 이루는 건물 중앙에 사각형의 연못이 있다.

나스르왕조의 마지막 왕인 보압딜(Boabdil)이 두 왕(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5세)에게 도시를 넘겨주는 조약을 맺은 후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알람브라궁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곳은 '한탄의 언덕'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토를 정복당한 슬픔이 우선이겠지만 낙원 같은 알람브라궁전을 놓고 떠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Recuerdos de la Alhambra
Andrés Segovia, Guitar


.Recuerdos de la Alhambra in the snow .





Classical/guitar, Jim Greeninger, Recuerdos de la Alhambra


Ana Vidovic plays Recuerdos de la Alhambra by Francisco Tárrega


.Recuerdos de la Alhambra - Pepe Romero .


박규희 - Recuerdos de la Alhambra

Recuerdos de la Alhambra
Francisco Tarrega Eixea (1852∼1909)
Andrés Segovia, Guitar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김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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