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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Smetana, Bedrich / Festive Overture in C major

P a o l o 2018. 11. 16. 20:41
Smetana, Bedrich (1824-1884 Cz.) Smetana, Bedrich (1824-1884 Cz.)
의 축전서곡 C장조
Festive Overture in C major
를 감상하겠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족 음악 작곡가인 스메타나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천품을 나타낸 신동으로, 국민적인 음악 양식을 광범위한 예술적 음악 형식에 도입하였다. 6세 때 소년 피아니스트로 대중 앞에서 연주를 했는데 4세 때 벌써 4중 주곡의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맥주 양주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843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 공부를 위해 프라하로 갔습니다. 당시 프라하에는 프로크시 (Josef Proksch)라는 유명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스메타나의 재질을 인정하고 보수 없이 피아노와 작곡 이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때 어떤 백작 집에서 악장으로 일했는데 이 때부터 생활도 안정되어 음악인들과 교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휴가를 이용하여 여러 지방을 여행하여 농민 음악에 접촉하여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보히미아 (현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이에 반항하는 혁명이 일어났지만 결국 실패하여 압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스메타나도 이 혁명에 참가하여 애국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여 요 시찰 인물로 지목되기도 하였습니다. 1859년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와의 싸움에서 패하자 비인 정부는 독일 계통이 아닌 소수 민족에 대하여 탄압 정책을 완화하였습니다.
첵코슬로바키아에서는 이에 따라 국민 문화 건설의 기운이 점차 높아져 프라하를 중심으로 민족 예술 부흥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프라하에는 국민 극장이 건설되었습니다.
스메타나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프라하로 가서 문인들과 손을 잡고 국민 오페라 창작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보히미아 음악의 창설자로서 스메타나는 음악계를 이끌어 민족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슈만과 리스트의 영향이 크게 반영되어 낭만적인 색채가 강하고 슈만 풍의 풍부한 화성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 다시 비교적 단순한 선율을 더하여 깊이와 실질이 겸비된 스메타나 특유의 음악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교향시에서는 그 구상과 주체의 자유로운 발전을 보아 리스트의 영향을 보이고 있지만 <나의 조국>에서는 그것을 탈피하여 스메타나 특유의 민족적인 경지를 개척하였습니다.
스메타나는 8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이탈리아식과는 달리 자기 나라의 민족적 정서에서 소재를 얻고 있습니다. 그의 오페라 중 <팔려간 신부>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는 오페렛타입니다. 그의 작품은 오페렛타 <팔려간 신부>를 비롯한 8개의 오페라와 교향시 <나의 조국> 현악 4중 주곡 <나의 생활로부터>, 그 밖에 많은 피아노곡과 성악곡이 있습니다.
만년에는 귓병으로 인하여 귀머거리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정신 착란증이 생겨 정신병원에서 1884년 5월에 생을 마쳤습니다.

Festive Overture in C major




Festive Overture in C major


Festive Overture in C major
Smetana, Bedrich (1824-1884 Cz.)
Fastival Symphony Orchestra
Loic Bertrand : Conductor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김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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