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uerdos de la Alhambra Francisco Tarrega 1852∼1909
Francisco Tarrega Eixea
Recuerdos De La Alhambra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Granada)는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주에 있다. 그곳에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 촬영했던 흰눈이 1년 내내 머무는 높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을 이루는 작은언덕, 세로 델 솔(태양의 언덕)위에 배 모양을 한 작은 대지가 바로 궁전의 터다.
타레가는 근대 기타의 아버지로서 현대 기타 발전의 터전을 닦아놓은 은인 이었다. 그는 필연성에 의한 작곡만을 했으므로, 모든 작품이 기타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알함브라궁전의 회상은 타레가가 그라나다 교외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한 후 작곡했다. 제자인 콘차부인과 같이 갔던 그날 밤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던 모양인지, 궁전의 아름다움을 트레몰로 주법으로 그려놓았다.
곡은 전반 가단조와 후반 가장조로 반복된다. 코다에서는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인상깊게 새기며 끝난다. 이 곡은 원래 <알함브라풍으로>라고 이름짓고 <기도>라는 부제를 덧붙여 놓았는데, 출판사에서는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이라 고쳤다 한다.
전곡을 은구슬 뿌리듯 관통하고 있는 트레몰로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준다. 더욱이 우수적인 멜로디는 콘차부인과 실연의 아쉬움을 더해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스페인의 영혼을 되살린 타레가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 1852~1909)는 19세기 후반의 스페인을 대표하는 기타 작곡가이자 20세기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현대적인 연주법을 완성한 위대한 연주가이기도 하다.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비르투오소로서 경이적인 테크닉과 낭만적인 연주 스타일 덕분에 일명 ‘기타의 사라사테’로 불리우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는 기타라는 악기를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한 몸에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랜 동안 다른 악기에 밀려 사라질 운명에 놓였던 기타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해냈다. 특히 그는 신체적인 문제 때문에 생의 마지막 9년 동안은 손톱이 아닌 손끝의 살로만 현을 튕기는 새로운 주법에 매진하기도 했다.
한편 작곡가로서 그는 1880년대부터 1903년에 이르는 20여년 동안 베토벤과 쇼팽, 멘델스존, 베르디, 바흐와 같은 거장들의 음악을 기타로 편곡하거나 현대적인 테크닉을 완성하기 위한 연습곡을 작곡하여 이전과는 다른 혁신적인 테크닉과 확장된 표현력, 새로운 음향을 이끌어냈다. 연주가로서 기타 소리를 더욱 맑게 울려퍼지게 하고 풍부한 울림을 이끌어냈던 것이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된 타레가의 작품들은, 20세기의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칭송받는 나르시소 예페스의 말대로 동시대 및 후대의 기타 거장들과 현격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의 많은 편곡 작품들 덕분에 기타 레파토리 또한 급격히 넓어지게 되었다는 점 또한 그의 선구자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단순히 악기 자체에 쏠려있지만은 않았다. 그의 친구인 알베니스의 영향으로 스페인의 민속적 요소들을 낭만주의적인 감수성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호타’와 같은 스페인 고유의 무곡을 주제로 한 많은 기타 작품과 알베니스의 피아노 작품 편곡들을 꼽을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서 낭만주의 음악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서있다.
Sharon Isbin performs Francisco Tarrega's
"Recuerdos de la Alhambra"
on Korean Television January 2002.
붉은 궁전 알함브라에 드리워진 추억
타레가가 발전시킨 트레몰로 주법이 그 신비로움과 애절함을 더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그가 그라나다를 방문했을 시 접한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받은 감동을 기타로 옮긴 것이다. 이 궁전은 에스파냐에 존재했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중반에 세우기 시작했으며 증축과 개보수를 거쳐 완성된 것으로서, 현재 남아있는 궁전의 모습은 대부분 14세기에 완성된 것이다.
특유의 인공미는 물론이려니와 자연과의 조화 또한 일품으로서, 그 아름다운 때문에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로 일컬어지는 알함브라 궁전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비극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그 해, 스페인의 페르난드 2세의 공격을 막지 못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이 궁전을 평화적으로 내어주고 아프리카로 떠난 것이다. 그리하여 스페인은 비로소 근대 국가로의 이행을 걷게 되었지만, 알함브라 궁전에는 이전 800여년 간 내려온 이슬람 문화의 찬연함을 간직한 채 홀로 오롯이 서있게 된 것이다.
트레몰로 주법이 자아내는 그 애잔한 분위기와 낭만성 넘치는 멜로디 라인은 이러한 알함브라 궁전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음악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일설에 따르면 작곡가의 개인적인 사건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896년 타레가는 그의 제자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타레가의 사랑을 거부했고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이 알함브라 궁전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달빛이 드리워진 이 궁전의 아름다움을 따라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며 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영화 [킬링 필드]의 주제가로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 아름다운 명곡을 들으며 자신의 추억이나 옛사랑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몹시 메마른 가슴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인 작품임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