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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Haydn Missa in Angustiis - "Nelsonmesse" d-minor 불안한 시대의 미사(넬슨미사)d단조

P a o l o 2018. 3. 7. 21:30

Missa in Angustiis - "Nelsonmesse" - Franz Joseph Haydn
 
 

1790년, 하이든을 30년간 음악감독으로 고용했던 헝가리의 귀족 니콜라우스 에스터하지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파울 안톤 에스터하지 2세가 뒤를 이었는데 음악에 관심이 없는 그는 선대(先代)로부터 내려온 음악에 대한 지원을 거의 없애버렸고 오케스트라마저 해산시켰다.

이에 하이든은 빈으로 거취를 옮길 기회를 잡았고,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아래 작곡활동을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 영국에서 초청이 왔고 이에 응한 하이든은 두 차례의 방문을 통해 영국 귀족들과 국민들에게 대단한 환대(歡待)를 받게 되었다.

하이든은 그의 두 번째 영국방문 도중인 1794년 1월 런던에서 그의 아들 파울 안톤 2세의 서거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후계자인 니콜라우스 에스터하지 2세로부터 조속히 본국으로 귀환할 것을 명받았다. 니콜라우스 2세의 직접적인 의도는 그의 아버지가 해체한 오케스트라를 재건하여서 종교음악부문을 발전시키되, 특히 매년 9월 마다 부인인 마리 요제파 헤르메네길트의 명명축일(the Name Day)을 기념하는 새 미사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하이든은 관현악 반주가 붙는 미사곡을 모두 14곡 작곡하였는데, 8번째 곡에 해당하는 '미사 첼렌시스(Missa Cellensis)'를 작곡(1782년)한 이후로는 14년 간, 이렇다 할 종교 음악을 작곡하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다시 종교음악에 손대게 되어, 1796년부터 1802년에 걸쳐, 유명한 후기 6대 미사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넬슨미사>는 이 후기 미사곡 중 '하일리히미사(Heiligmesse)'와 '파우켄미(Paukenmesse)'를 뒤 따르는 세번째 작품에 해당되며, 빈 국립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자필 원고에는 1798년 7월 10일에서 8월 31일에 걸쳐 아이젠쉬타트에서 작곡되었음이 명기되어 있고, 그 해 9월 23일에 아이젠쉬타트의 성 마틴 교회에서 초연되었다.

에스터하지 2세의 위촉에 따라 작곡한 여섯 개의 큰 미사들은 교회 음악이라는 영역 안에 펼쳐놓은 교향악적 형태의 연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말하자면 신께 바치는 장대한 교향곡들인 셈이다.

두 차례의 영국 방문 이후, 하이든은 기존의 소박하고 경쾌한 스타일에 더하여, 그 때까지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웅대한 수법이 더해져서, 특히 '키리에'나 '베네딕투스'의 장중하고 격정적인 성격, '글로리아'의 화려함 등은 66세의 노인의 작품이라고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신선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키리에'에 경도(傾倒)된 나머지 이 곡을 두고 '하이든의 모든 미사곡 중 가장 기복이 심하고 긴장과 격정에 차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는데 그치고 있으나, 곡을 전체적으로 조망(眺望)했을 때는 밝은 분위기와 하이든 특유의 유모어가 넘쳐나고 '교향곡의 아버지'로서 전체를 포괄하는 구조적 치밀성이 돋보인다.

이 곡의 원래 부제는 '불안한 시대의 미사(Missa in Angustiis)'이다. '불안한 시대'라는 제목과 어둡고 위협적인 '키리에'의 d단조로 된 전주는 아마도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불안함,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원정으로 인해 생긴 오스트리아 국민의 공포와 슬픔을 나타낸다고 생각된다.

원래 부제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진 것이 '넬슨미사'라는 별칭인데, 이는 영국의 영웅적 해군 제독인 넬슨과의 몇 가지 직·간접적인 인연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해몽(解夢)을 더 즐기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첨가 및 과장이 대부분이며, 이런 거창한 제목들과는 달리 이 곡은 귀족의 명명축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작곡된 미사곡의 하나로 표제음악(Program Music)과는 거리가 멀다.

하이든이 이 곡을 완성하여 초연할 때, 이 곡의 관현악은 목관파트와 호른이 빠진 현악기, 3개의 트럼펫, 드럼 및 오르간으로 구성되었다. 니콜라우스 2세가 경제적 사정으로 오케스트라에서 목관파트를 없애버렸기 때문인데, 이에 따라 부족한 부분을 오르간이 메꾸게 되었고 이러한 판본에서는 오르간이 독주악기로서 큰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1802년 '브라이트코프&헤어텔' 출판사에서 이 곡의 악보가 출판될 때, 하이든은 오르간이 담당하던 부분을 목관악기에 할애(割愛)하여 오케스트라를 재편성하는 것을 용인하였고, 이미 작곡가 자신이 몇몇 부분의 목관파트를 직접 써 넣은 바 있다. 오늘날엔 작품의 다채로운 성격을 드러내고 풍부한 대비를 나타내기에 적당한 후일의 편곡판이 널리 선호되고 있다. 특히 이 곡의 바이올린 파트는 하이든의 모든 곡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것에 속한다.

하이든은 '크레도'의 몇 몇 생략을 제외하면 대체로 미사 전례문을 충실히 사용하였다. '키리에'의 도입부는 3화음에 기초를 둔 강렬한 울림의 시작부분과 부드러운 현악기의 선이 잘 대비를 이루고 있다. 소프라노 화려한 솔로가 큰 비중을 하는 이 부분은 소나타 형식을 따라 발전해가고 있다. 또한 붓점과 화성적 계류의 효과적인 사용을 통해 긴장을 지속하고 있다.

'글로리아'와 '크레도'는 3부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어두운 '키리에'의 분위기가 반전된 앞 부분의 'Gloria'는 다분히 익살이 섞인 생기있는 합창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고, 베이스 솔로에 의한 웅혼(雄渾)하면서도 부드러운 'Qui Tollis'에 의해 대비감이 이루어진 후 'Quoniam'에서 다시금 앞부분과 같은 활달함으로 돌아간다.

'글로리아'는 전체적으로 작곡 몇 달전에 초연된 천지창조의 많은 부분을 연상케 하며, 화성적 부분과 선율적 부분의 대비가 명확히 이루어진다. '크레도'도 이와 유사하게 구성을 되어있으며, 첫 주제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크레도 선율이 엄격한 카논 형식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어지는 'Et incarnatus'는 정적이고 느린 부분으로, 중간의 '고난받으시고 죽으시었네(passus et sepultus est)'부분의 쉼표에서는 마치 시간이 멎은 듯한 감동적인 부분이다. 'Et resurrexit'에서는 다시 첫 부분과 비슷한 약동(躍動)감을 느낄 수 있으며, 마치 승리의 개가와 같은 부분이며, 중간중간의 관현악의 움직임은 마치 교향곡의 한 부분을 듣고 있는 듯 하다.

비교적 짧은 '상투크스'는 12마디에 걸친 엄숙하고 경건한 합창이 '거룩하시다'를 노래한 후, 셈여림의 대비를 보이며 'osanna'로 발전되어 간다. 일반적으로 작곡가들은 '베네딕투스'를 서정적으로 작곡하는 데 비해, 하이든은 이 미사곡의 절정 부분을 이 곳으로 끌어왔다. 소프라노 독창과 합창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를 격정적으로 주고 받으며 전개되고, 트럼펫과 팀파니의 힘찬 셋잇단 음표를 통해 클라이막스를 유도하며, 합창이 'osanna'를 반복하며 마친다.

'아그누스 데이'는 알토 독창자의 매우 서정적인 독창으로 시작되어 솔로의 4중창으로 확대된 후, 합창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의 D장조 대위적 음악을 매우 밝고 가볍게 부르면서 힘차게 곡을 마친다. 하지만 다소 불완전한 마침 화성은 이 곡 제목인 '불안함'을 나타내는 듯 하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지광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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