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vonic March in B flat Major, Op. 31 차이코프스키 / 슬라브 행진곡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Paul van Kempen (16 May. 1893 ? 8 December, 1955), cond. The Dutch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Amsterdam Leonard Bernstein (1918-1990), cond.
Daniel Baremboim, cond. Chicago Symphony Orchestra
Gennady Rozhdestvensky,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Charles Dutoit, cond. MSO (Montreal Symphony Orchestra)
Yehudi Menuhin, cond.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Mikhail Pletnev, cond. RNO (Russian National Orchestra)
1876년에 터키와 세르비아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러시아는 슬라브 민족인 세르비아를 원조하게 되면서 결국 러시아와 터키의 전쟁으로 확대되게 이르렀다.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장이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은 상이용사들의 의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음악회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에게 부탁해 작곡된 작품이 슬라브행진곡이다. 전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난을 상징하는 무거운 멜로디(장송행진곡)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세르비아의 민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슬라브 민족정신을 찬미하고 있다. 곡 중의 트리오는 C장조의 유니즌으로 장중하게 연주되며 민족적인 기백이 조성되는 행진곡이다.
작품번호 31. 원래의 제목은 세르비아러시아행진곡(Serbo-Russian March)이다. 러시아음악협회로부터 세르비아투르크전쟁의 부상병을 위한 자선연주회용으로 의뢰를 받아 1876년에 작곡하였다. 차이코프스키는 의뢰받은 후 5일 만에 곡을 완성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니콜라이 루빈시타인(Nikolai Rubinshtein)의 지휘로 초연되어 청중들의 갈채를 받았다.
1870년대 중반, 아나톨리아 반도는 극심한 가뭄과 기근에 시달렸다. 그로 인해 재정난에 처하게 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발칸 반도의 속국들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했고, 당연히 그 나라 국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증폭되었다. 결국 1875년 여름,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군대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듬해 4월에는 불가리아에서도 봉기가 일어났다. 일련의 사태는 일단 오스만 제국의 승리로 정리되는 듯했다. 세르비아 군대는 알렉시나크와 주니스에서 투르크 군대에게 패퇴했고, 불가리아의 봉기도 무참히 진압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러시아의 개입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러시아는 일련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주도하여 세르비아와 투르크 사이에 강화를 주선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슬라브 동포의 독립을 위하여
사실 러시아는 처음부터 세르비아와 투르크의 전쟁에 개입하고 싶어 했다.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 후 절치부심하며 흑해 연안으로 재진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독 출병을 하면 자칫 열강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먼저 회의를 열어 투르크에 대한 내정개혁을 요구하는 공동권고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투르크가 거부하자 오스트리아의 중립을 확약 받은 다음, 마침내
투르크에 선전포고를 했다. 1877년 4월, ‘범슬라브주의’를 표방한 러시아 군대가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제2차 동방전쟁’의 발발이었다. 당시 러시아가 내세운 명분은 ‘슬라브 민족’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세르비아와 투르크의 전쟁은 러시아인들의 민족의식을 자극했다. 러시아의 출병이 지연되면서 세르비아가 수세에 몰리자, 러시아 국내에서는 ‘슬라브 동포’인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이 각계에서 일어났다.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의 원장이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도 그러한 운동의 일환으로 세르비아 부상병 위문 성금을 모금하기 위한 자선음악회를 기획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친구인 차이콥스키에게 음악회에서 연주될 ‘애국적인 관현악곡’을 의뢰하기에 이른다.
제 2차 동방전쟁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투르크, 세르비아 병사들
평소 정치적 사안에는 둔감한 차이콥스키였지만, 이번에는 ‘슬라브 민족주의’라는 대의명분과 발칸 반도에서 들려오는 긴박한 소식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루빈스타인의 제의를 받아들인 그는 세르비아의 민요선율과 러시아의 국가(國歌)를 활용하여 불과 며칠 동안 전곡을 완성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1876년 11월, 모스크바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초연되어 청중들로부터 ‘진정한 조국애에 불타는 흥분의 폭풍우’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이 곡의 제목은 ‘러시아-세르비아 행진곡’이었지만, 악보가 출판될 때 프랑스어로 ‘슬라브 행진곡 Marche Slave’이라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슬라브 행진곡]은 차이콥스키의 가장 인기 있는 관현악곡 중 하나이다. 그 원동력은 작곡 당시를 전후하여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백조의 호수], [로코코풍 주제에 의한 변주곡], [교향곡 제4번],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등 걸작들을 줄줄이 내놓던 차이콥스키의 한껏 고양된 창작력이다.
이 장엄한 행진곡은 대성공을 거둔 초연 이후에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각광받아왔다. 특정 행사를 위한 ‘이벤트성 음악’이 1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 하겠다. 그 주된 이유로는 연주시간 10분 전후라는 적당한 길이, 귀에 잘 들어오는 선명한 선율선, 화려하고 폭발적인 관현악법, 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곡은 듣는 이에게 격렬한 투쟁을 거쳐 역경을 이겨낸 승리에서 기인한 벅찬 감흥을 선사한다. 차이코프스키 자신도 이 곡을 자주 지휘했는데, 모스크바에서 처음 지휘자로 데뷔했을 때를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 투어에서도 공연의 피날레를 청중의 열광으로 장식하기 위해 종종 무대에 올렸다.
승리를 향한 장엄한 행진곡
곡의 구성은 장대한 종결부가 딸린 3부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제1부는 ‘모데라토 인 모도 디 마르차 푸네브레(장송곡풍의 보통 빠르기로)’의 처연한 행진곡으로 시작된다. 여기에 흐르는 b♭단조의 무거운 선율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으로, 세르비아의 민요 [오 빛나는 태양이여, 그대의 빛은 불공평하단 말인가?]에서 유래했다.
이 의미심장한 선율이 관현악 편성을 달리하여 되풀이되며 격렬한 첫 번째 클라이맥스를 구축한다. 제2부에서는 관악기들의 스타카토로 장조의 새로운 선율이 등장한다. 희망을 상징하는 이 밝고 경쾌한 선율 역시 세르비아 민요에 기초한 것이다. 빠른 전개 속에서 다시금 긴장이 고조되며 연결악구로 넘어가면 저현부에서 귀에 익은 선율이 들려온다. 훗날 [1812년 서곡]에서도 사용된 이 선율은 제정 러시아의 국가인 [신께서 차르를 구원하신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부분은 위기에 처한 세르비아를 구출하겠다는 러시아인들의 결의를 나타내는 듯하다.
열기를 더해가며 제3부로 넘어가면 제1부의 선율이 다시 등장한다. 이제 음악은 긴박감을 고조시키며 더욱 격렬한 투쟁을 펼쳐 보이고, 마침내 두 번째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그 배후에서 타악기와 관악기로 울려 퍼지는 리듬은 베토벤의 '운명적 리듬'을 연상시킨다.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적인 제1부, 밝은 서광이 비치는 듯한 제2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제3부를 차례로 통과하고 나면, 종결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시작된다.
템포가 알레그로 피우 모소(조금 더 빠르게)로 변경된 가운데 팀파니의 타격음이 울려 퍼지면, 클라리넷이 이끄는 목관 파트와 트럼펫이 이끄는 금관 파트가 러시아 민요에서 취한 경쾌한 가락을 릴레이식으로 연주한다. 그리고 이어서 트롬본과 튜바가 [신께서 차르를 구원하신다] 선율을 강력하게 부각시킨다. 이후 음악은 극도로 열광적인 분위기로 치달아 현란하고 떠들썩한 패시지가 숨가쁘게 이어지다가 장엄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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