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Clarin

[스크랩] 리스트 / 녹턴 3번 Ab 장조 "사랑의 꿈"( (Liebestraum No.3) in A Flat major) Op.64-3

P a o l o 2017. 10. 11. 10:55


Liebestraume N°3, Notturnos for piano, S.541

    (Liebestraum No.3) in A Flat major, Op.64-3

리스트 / 녹턴 3번, Ab 장조 "사랑의 꿈"

Franz Liszt 1811∼1886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bern stehst und klagst.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한!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Und sorge, dass dein Herze gl?ht
und Liebe hegt und Liebe tr?gt,
solang ihm noch ein ander Herz
in Liebe warm entgegenschl?gt.

     그리고 애써라, 그대의 마음이 타오르도록
     그리고 사랑을 품도록 그리고  사랑을 간직하도록,
     그대의 마음을 향해 또 다른 마음이
     사랑으로 따뜻하게 두근거리는 한.

 

Und wer dir seine Brust erschließt,
o tu ihm, was du kannst, zulieb!
Und mach ihm jede Stunde froh,
und mach ihm keine Stunde tr?b. 

     그리고 그대에게 자기 가슴을 열어 놓는 자,
     오 그를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리고 그를 항상 기쁘게 하라,
     그리고 그를 한시도 슬프게 하지 마라.

 

Und h?te deine Zunge wohl!
Bald ist ein b?ses Wort gesagt.
O Gott, es war nicht b?s gemeint;
Der andre aber geht und klagt. 

     그리고 그대의 혀를 조심하라!
     곧 못된 말이 뱉어졌구나.
     오 이런, 그것은 나쁜 뜻이 아니었는데
     그 다른 사람은 그러나 떠나가서 슬퍼한다.

 


  


 


Balazs Szokolay, piano

 


 

Liebestraum No.3 'O lieb, so lang lieben du kannst'

 

M?ria Bord?s, soprano

Christen Stubbe Teglbjærg, piano

 

Thomas Quasthoff, bass

Justus Zeyen, piano

 

Claudio Arrau, piano

 

Evgeny Kissin, piano

 

Fernando Puchol, piano

 

Artur Rubinsteinl, piano

 

Lang Lang, piano

 


 

Seeli Toivio, cello & Kalle Toivio, piano

 

작품 배경 및 해설

 

사랑의 꿈으로 알려진 이 피아노곡의 원곡은, 리스트가 작곡한 3곡의 가곡을 모두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곡이다. 이 3곡의 가곡은 리스트의 가곡 "고귀한 사랑 G.307", "가장 행복한 죽음 G.308",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G.298"을 말하며, 리스트는 이 3곡의 가곡을 피아노 소품의 장르인 녹턴으로 편곡하여, 1850년에 "3곡의 녹턴 G.541"이라는 타이틀로 출판한다.

 

이 "3곡의 녹턴 G.541"에는 위의 가곡을 편곡한 3곡의 피아노 녹턴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3곡중에서 3번째 곡인 "녹턴 3번 A flat장조 작품62-1(G.541-3)" 번만이 "사랑의 꿈" 이라는 부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녹턴 3번 A flat장조 작품62-1(G.541-3)번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꿈"의 정확한 곡명이고, 이 곡의 원곡은 가곡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G.298" 이다.

 

1. 리스트의 가장 아름다운 소곡으로 알려져 있는 사랑의 꿈 제3번은 <오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다면>이라는 제명의 Frailigrath의 시에 곡을 붙인 세곡의 가곡을 피아노연주용으로 편곡한 세 개의 야상곡 가운데 하나이다. 원곡인 성악곡은 세곡 모두가 소프라노나 테너가수를 위해서 작곡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선율이 지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데 이것이 피아노로 재현됨으로서 리스트의 피아니즘이 표현하는 지순한 아름다움에 빛을 더하게 된 것이다. 곡은 비교적 빠른 템포로 연주되고 있으며, 첫 머리에 등장하는 감미로운 선율이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2. 피아노의 파가니니 리스트의 편곡 행위, 어떤 곡들은 심지어 원곡보다도 편곡된 곡이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진 일도 종종 있었다. <사랑의 꿈> 3번이 바로 그러한 예였다. 이 곡은 원래 Freiligrath[프레일리그라스(英) 프라일리히라트(獨)]의 시 <오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다면>을 바탕으로 1847년 처음 작곡되었지만 이후 편곡되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게 된 곡이다.


리스트는 이 곡 외에도 울란트라고 하는 시인의 시를 가지고 만든 두개의 또다른 가곡들을 편곡하였고 이렇게 해서 모은 3곡을 새롭게 <3곡의 야상곡>이라 이름붙였다. 그 3곡 중 특히 3번이 가장 유명하며 세 곡을 한꺼번에 연주하기도 하지만 3번만을 따로 떼어 연주하는 경우도 잦다. 부제가 가리키는 것처럼 쇼팽의 녹턴(야상곡)의 패러디라고 생각되는 이 곡집은 최초부터 피아노용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며 울란트와 프라일리히라트의 시에 붙여진 <테너 또는 소프라노 독창용의 3개의 가곡>의 편곡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집 중 세번째 야상곡의 첫 시작은 테너의 중후한 음성으로 막이 열린다. 피아노 트리오로 이 곡을 편곡한다면 첼로의 선율로도 옮길 수 있는 부분이며 테너와 피아노, 혹은 첼로와 피아노가 이끌어간 선율은 유려한 피아노 패시지의 브릿지를 거쳐 곧장 소프라노의 멜로디로 이어진다. 소프라노, 혹은 바이올린의 주제는 점점 더 긴장되고 고조되어 피아노의 격정적인 옥타브로 이어지게 되는데 잔잔하고 묵직하게 시작된 사랑이 정열에 불타오르는 것을 연상시킨다. 격정으로 휘몬 그러한 사랑을 매듭짓는, 이제 막을 내리는 마지막 부분 역시 열정은 사라졌어도 남아있는 사랑의 殘像으로써 무척 아름답다.

 

Franz Liszt (1811.10.22∼1886.7.31) 

 

프란츠 리스트는 12살 때 베토벤 앞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베토벤은 어린 소년의 연주에 완전히 감탄했다. 연주가 끝나자 소년을 꼭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이 유명한 장면은 한 장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 그림은 현재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어린 리스트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스트리아 빈을 찾아와 베토벤의 제자인 체르니(1791-1857)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베토벤은 제자의 청을 받아 신동의 연주회에 참석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어린 연주자들이 거장 앞에서 오디션을 보기 위해 줄을 서는 광경들은 흔하다.

 

2년 동안 리스트를 가르친 체르니,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

리스트의 스승이었던 체르니는 제자에 대한 첫인상을 “창백하고 병약하다”거나 “피아노를 술 취한 듯 두들겨대던, 손 모양에도 문제가 있는 아이”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 그중에서도 특히 “엄청난 즉흥연주”에 대해서는 스승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나 보다. 체르니는 리스트를 2년 동안 가르친 다음, 1822년 12월에 빈에서 데뷔 연주회를 치르게 한다. 자신의 스승인 베토벤에게 “선생님, 이 아이를 한번 봐 주세요.”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 이듬해에 리스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다. 이른바 리스트의 ‘파리 시절’이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리스트

 

리스트는 헝가리의 도보리얀 태생이다. 오늘날에는 지명이 라이딩(Raiding)으로 바뀌었고, 오스트리아 영토로 편입돼 있다. 리스트의 아버지인 아담 리스트는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다. 하지만 연주자로서 자리를 잡을 만한 실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생업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집사였다. 그러니까 하이든이 30년 가까이 음악 하인으로 봉직했던 바로 그 에스테르하지 가문이다. 헝가리에서 세력이 등등했던 아주 유명한 귀족 집안이다. 리스트의 아버지는 그 집안의 일을 돌보던 하인들 중에서 비교적 ‘고위직’이었던 것같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자면 지주의 땅을 관리하는 ‘마름’이었다. 덕분에 어린 리스트는 꽤 풍족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비록 귀족은 아니었지만 도보리얀 지역에서는 손가락 안에 드는 ‘부농’의 아들이었던 셈이다.

 

아담 리스트는 아들을 유명한 음악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첼리스트의 꿈이 좌절된 아버지, 사는 것은 제법 풍족했지만 신분은 그저 하인에 머물렀던 그는 아들의 음악교육에 매우 열성적이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그는 집안에서조차 헝가리어를 쓰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아마 독일-오스트리아를 향한 문화적 지향이 유난히 강했던 것같다. 그래서 결혼도 독일계 여성 안나 라거(리스트의 모친)와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일설에는 리스트 집안이 집시의 혈통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설(定說)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다.

 

아버지는 리스트를 데리고 훌륭한 선생들(체르니, 살리에리 등)을 찾아다녔고, 마차를 달려 곳곳에서 순회연주를 펼쳤다. 그것은 마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리스트가 열여섯 살이던 1827년에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직 열여섯 살에 불과했던, 거의 ‘파파 보이’로 살다시피 했던 그는 파리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방황의 시기를 보낸다. 물론, 연주자로서의 인기는 점점 높아 가고 있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신들린 비르투오소’의 소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리스트는 파리의 사교계에서도 점점 유명 인사가 되고 스무 살 무렵에는 베를리오즈, 쇼팽, 파가니니 등과 만나 교유를 시작하면서 일급 음악가의 반열에 올라선다.

 

원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그리고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말하자면 리스트의 ‘파리 시절’을 상징하는 연애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아들이 여자들에게 휘둘릴 것을 우려했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그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리스트는 스물세 살 때 7년 연상의 유부녀 마리 다구 백작부인을 만난다.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와 쌍벽을 이루던 여인이었다.

 

화가 요제프 단하우저가 그린 ‘파리의 살롱에서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라는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파리 예술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와 빅토르 위고, 조르주 상드, 니콜로 파가니니,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 그리고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물론 사진(실사)이 아니라 상상이 가미된 회화이다. 마리 다구 벡작부인은 피아노 치는 리스트의 바로 옆에, 등을 살짝 드러낸 섹시한 뒷모습으로 앉아 있다.

 

 


 

리스트는 그 여인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떠돌며 사랑의 도피 행각을 펼친다. 둘은 세 명의 아이까지 낳는다. 그중 두 아이는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말지만, 둘째 딸 코지마는 리스트를 열렬히 존경했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1830-1894)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코지마는 훗날 남편 뷜로의 곁을 떠나 자신의 아버지보다 두 살 많은 바그너와 함께 산다. 이렇듯 상궤를 벗어난 예술가들의 열애는 당대 유럽 사회의 풍속도 가운데 하나였던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으로는 근대와 계몽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자유를 향한 희구와 낭만적 방랑,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표출 같은 것들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부인은 1844년에 결별한다. 파리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두 사람의 열애는 1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끝난다. 이후 리스트는 많은 여자들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정확히 말해 1847년에 리스트는 두 번째 운명의 여인과 조우한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귀족이었던 카롤리네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 리스트의 두 번째 사랑이었다. 그녀는 키예프를 찾아온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한눈에 반해 버렸던 모양이다. 남편과 별거 중이던 그녀는 리스트가 있는 독일 바이마르까지, 그 머나먼 길을 딸까지 데리고 달려온다. 그 용감한 여인은 ‘파리 사교계의 꽃’이었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여인으로, 백작부인은 장미처럼 화려했지만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은 지성과 교양이 넘치는 차분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출처 : 관악산의 추억(e8853)
글쓴이 : 이종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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