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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차이코프스키 / 그리움을 아는 이 만이( Net, tol’ko tot, kto znal) Op.6

P a o l o 2017. 5. 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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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t, tol’ko tot, kto znal, Op.6 - None But the Lonely Heart


차이코프스키 / 그리움을 아는 이 만이

Tchaikovskii, Pyotr Il'ich (1840 ~ 1893)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 Johann Wolfgang von, 1749.8.28 ~ 1832.3.22)의 독일어 시(詩)에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가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곡은 그가 작곡한 100여 러시아 가곡 중 하나로 29살의 젊은 시절 작품이라고 합니다.

   

   

곡은 원래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러시아 가곡입니다만 '바이올린의 전설' 아이작 스턴(Stern, Isaac)의 명연주로 정말 특별한 감동을 맛 볼 수 있는 곡입니다. '오직 고독한 마음뿐'이라는 우리말로 번역되는 "None But the Lonely Heart"

   

Nur wer die Sehnsucht kennt  by Goethe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아픔을 알리라!

홀로

모든 기쁨을 저리하고

저 멀리

창공을 바라보누나 

아! 나를 사랑하고 아는 님은

저 먼 곳에 있다.

몸이 어지럽고

애간장이 타구나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아픔을 알리라! 

Nur wer die Sehnsucht kennt,

Weiß, was ich leide!

Allein und abgetrennt

Von aller Freude,

Seh ich ans Firmament

Nach jener Seite.

Ach! der mich liebt und kennt,

Ist in der Weite.

Es schwindelt mir, es brennt

Mein Eingeweide.

Nur wer die Sehnsucht kennt,

Weiß, was ich leide!

None but the lonely heart

Can know my sadness

Alone and parted

Far from joy and gladness

Heaven"s boundless arch I see

Spread about above me

O what a distance dear to one

Who loves me

My senses fail

A burning fire Devours me

None but the lonely heart

Can know my sadness

   

<"None But the Lonely Heart" (Net, tol’ko tot, kto znal, Op.6)>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가 1807년 착수하여 1829년에 완성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Wilhelm Meisters Wanderjahre)"  속에 있는 詩에 곡을 붙인 것으로  `None but the lonely heart' - '오직 고독한 마음뿐'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Only one who knows loneliness' -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라고도 번역되어 남모르는 외로움에 빠진 이가 홀로 고독을 호소하는 애절한 노래로서 러시아 예술 가곡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서주 부분의 선율부터 끝까지 가슴 저미는 애절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절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곡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외롭거나 슬플 때,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아마도 실제로는 그런 곡은 귀에 거슬려 들을 수 조차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조용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듣거나, 차라리 아주 진한 슬픔을 맛 볼 수 있는 음악을 듣는 것이 훨씬 더 빨리 그러한 상황에서부터 자신을 구해내거나 벗어 날 수 있을 것입니다.


 



Schwarzkopf, Soprano

Mari Lanza, Tenor

   

바이올린의 전설’ 아이작 스턴 (Stern, Isaac, 1920.7.21 ~ 2001.9.22)

얼마전 화제를 모았던 영화 '샤인'에서는 어린 헬프갓에게 미국행을 제안하는 스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미국 음악계에 이른바 '유태 마피아의 대부'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스턴의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좋은 예다. 그는 연주여행으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도 그곳에 정착한 유태인들 중에 가능성 있는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핀커스 주커만이나 슐로모민츠 등은 그가 키운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스턴은 1920년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유태인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첫돌 전에 미국으로 왔다. 그리고 미국땅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1세때 데뷔 연주회를 가졌고, 1937년에 뉴욕에 데뷔했으며, 43년에 카네기홀 데뷔 연주회를 가졌다.미국땅에서 자라나 거시서 성공하고 또 그곳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연주가라면 다섯 손가락으로 꼽고 남을 정도로 드물엇던 시기에 그는 탁월한 재능을 자랑하며 당당히 '미국 연주가'가 되었다. 비근한 예를 찾으라면 아마 번스타인 외엔 찾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또 드물게 성공했기 때문에 그가 미국 음악계에 가진 영향력은 대단할 수 밖에 없었다. 번스타인도 역시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스턴과는 '팔이 안으로 굽는 사이'였다.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는 블라디미르 펠츠만의 예를 들면 알수 있을 것이다.

역시 유태인으로서 소련에 억류상태나 마찬가지였던 펠츠만을 빼내오기 위해 스턴은 당시 대통령 영부인에게 로비를 펴 구소련의 서기장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다. 두 나라의 국가간 중대사가 수도 없이 많았을 당시, 사람 하나를 부탁한다는 것이 얼마나 곤란하고 힘든 일이었을까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스턴은 대통령을 통하면 일이 더욱 힘들어질 것까지 계산에 넣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스턴의 연주도 번스타인만큼이나 미국적인 것이었다. 외향적으로 분출하는 남성적이고 힘찬 것으로 낙관이 넘치고 확신에 찬 것이었지만, 기교에 치중하는 면이 강하고 깊은 맛이 좀 떨어진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지금의 이자크 펄만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했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는 실내악에 치중했다. 물론 젊은 시절에도 유진 이스토민, 레너드 로즈와 함께 피아노 3중주로 곧잘 어울렸던 스턴이지만 최근 20년 내에 그의 솔리스토로서의 활동은 찾아보기 힘든 점으로 봉 어느 정도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 한 시도로서 비쳐지기도 한다.



 






 

출처 : 관악산의 추억(e8853)
글쓴이 : 이종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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