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친구이자 '피아노의 왕자'라고 불렸던 리스트도 쇼팽과 마찬가지로 피아노 협주곡을 두 곡 밖에 쓰지 않았다. 이것도 참 우연한 일이다. 하긴 리스트의 경우에는 이밖에도 습작 정도의 것을 몇 곡 썼던 모양이지만 현재 일반적으로는 두 곡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두곡도 거의 같은 무렵에 착수한 것이다.
이 제1번은 1849년에 작곡되었다. 리스트가 카롤리네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 사랑에 빠진 뒤, 그녀의 권고에 따라 화려한 피아니스트로서의 연주생활을 그만두고 바이마르 궁정악단의 지휘자 겸 작곡가로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전해인 1848년이므로, 그가 인간적으로나 일에 있어서나 점차 성숙해 갔던 시기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곡은 완성된 뒤 6년 동안은 공개석상에서 한번도 연주되지 않았고 그뒤 1851년에는 더 완전을 기하기 위해서 가필 수정되었다.
리스트가 자기에게 있어서 첫 피아노 협주곡인 이 곡을 발표함에 있어서 얼마나 신중을 기했는가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창작태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초연은 1852년 2월에 바이마르 궁정 연주회에서 행해졌다. 피아노 연주는 작곡자 자신이 했고 지휘는 마침 리스트를 찾아온 베를리오즈가 맡았다. 이 두 사람은 다 개성이 강한 음악가였으며, 이 연주회는 참으로 상상 이상의 재미로 끝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이 곡은 구성에 있어서 종래의 고전적 협주곡의 스타일을 완전히 깨뜨리고 있는 것이 큰 특색이다. 첫째, 전체는 네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부분은 중단 없이 연주되므로 마치 교향시 같은 느낌을 준다. 둘째, 베를리오즈가 <환상교향곡>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고장악상처럼 제1악장의 서두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동기가 전체를 통하여 중요한 구실을 한다. 셋째, 제3악장에 협주곡으로서는 드물게도 스케르초를 두고 있으며, 또 트라이앵글을 사용하고 있어서 한슬릭(E. Hanslick)같은 독설가는 <트라이앨글 협주곡>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리스트는 이 곡에서 피아노가 갖는 기능을 최고도로 발휘시키고 있다. 당시는 마침 피아노가 급속히 개량되고 있었는데, 그 기능의 한계점까지 구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와 충분히 맞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완전히 압도하기도 한다. 이 곡을 들어보면 피아노는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은 다채로운 효과를 내고 있다. 고금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틀어서 피아노를 이처럼 찬연하게 하는 작품은 그 예가 없다.
Alfred Brenel,
Franz Liszt- Piano Concerto No.1 in E flat major S.124
1. Allegro maestoso
2. Quasi adagio
3. Allegretto vivace
4. Allegro marziale animato
낭만주의 시대 피아노 협주곡의 이상은 고전주의 시대 피아노 협주곡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 초기에는 작곡가가 곧 피아니스트였던 시기였던 만큼, 당시 피아노 협주곡들은 독주자의 기량을 뽐내기 위한 장식적인 화려함이 우선했다.
베토벤 이후 1830년대에 발표된 모셀레스나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은 비교적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솔로의 융합을 이루고자 노력한 작품이었지만, 독주자에게 기대는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젊은 세 거장이 1830년대부터 새로운 형식의 피아노 협주곡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곡들은 진정한 낭만주의 시대의 협주곡의 이상을 확립한 명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 장본인들은 쇼팽과 슈만, 그리고 리스트였다.
이 가운데 쇼팽은 피아노 파트의 새로운 서정을 뽑아내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오케스트레이션에서는 반주 기능 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슈만의 경우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1839년 한 편지에서 교향곡과 협주곡과 그랜드 소나타의 중간 단계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 이후, 1841년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Op.54]는 전통적인 장르의 벽을 넘어 새로운 종류의 융합물을 이룩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독창적 아이디어와 현란함이 작열하는 번개와도 같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때만 해도 협주곡의 특징이었던 피아노와 관현악의 교향악적 통합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슈만 이전에 유행한 협주곡들에서는 그런 고전적 이상이 철저히 포기되었는데, 슈만은 이처럼 거장 독주자가 작품을 압도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시적이고 아름다우며 내용적으로 완벽하게 통합된 새로운 형식의(환상곡풍의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이 갖고 있던 저 드높은 위상은, 리스트라는 희대의 비르투오소가 나타나면서 입지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어찌보면 천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제들이 펼쳐지며, 거장적인 동시에 형식파괴적인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청중들을 단번에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시대의 황제이자 이단아
리스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모든 장르, 모든 방면으로 분출시킨 외향적인 작곡가였다. 리스트는 자신의 수많은 작품들을 출판 이전과 이후에 빈번히 개정하고 개작했다. 그렇지만 베토벤이 주요 작품들의 최종에 도달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힘들여 스케치하고 다듬은 과정을 리스트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트는 전생애에 걸쳐 시대를 앞서거나 혹은 시대에 영합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 주요 원동력은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였다. 그의 작품들은 양적 풍부함뿐만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불타는 욕구, 그 질적인 풍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슈만, 브람스의 고전주의적 접근 방식과 바그너와 그의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장대한 효과, 극적 수법이 19세기 음악사의 커다란 두 갈래 흐름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이 두 개의 길은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는데 브람스적 전통은 도흐나와 메트너와 같은 작곡가들로 이어지면서 그 흐름이 점점 사그러들었고, 바그너적 전통은 엄청나게 부풀어 오를대로 올라 R. 슈트라우스와 말러에 이르러 결국 흔적도 없이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 리스트는 바그너를 존경했고, 바그너에게 그의 딸을 내주며 사위로까지 맞았지만 결코 바그너의 음악적 양식을 따르지 않았다. 물론 브람스의 고전적 경향도 역시 거부했다.
리스트 소년의 연주에 감탄하여 이마에 입맞추는 베토벤
리스트는 만년에 이르러서 급격한 스타일의
변화를 보였다. 이 두 갈래의 길 모두를 완전히 뛰어넘어 자신만의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특히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19세기를 넘어서서 20세기의 인상주의(음향의 교묘한 중첩을 통한)나 원시주의(대중적인 멜로디로부터 원초적인 힘을 이끌어내는)까지를 미리 예견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스트는 고전파의 아버지 하이든의 타계 2년 뒤에 태어나서 현대적 작곡가 알반 베르크가 태어난 뒤 1년 후에 서거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리스트는 이들 양쪽 음악세계 사이의 공간을 연결한 교두보 역할을 한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비르투오소로서 혁신적인 테크닉의 향상과 그만의 독특한 오케스트레이션 및 작곡 기법이 더해져 간혹 지루하거나 천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분명 동시대의 음악과는 구분되는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창조해냈다. 그는 이런 개척정신을 동시대 베를리오즈와 공유했고, 다음 세대에는 페루치오 부조니에게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당시로서는 분명 너무도 혁신적인 나머지 이질적이었지만, 오히려 자기 시대의 음악에 끼친 독특한 공헌에 대해 무한한 찬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선명함과 복잡합의 변증법적 조화
이 작품은 젊은 시절로부터의 아이디어에서 기인한 만큼 완전히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주제들은 화려하고 독창적으로 처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솔함을 불러일으키는 특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용으로부터 감동을 얻으려고 하더라도 우선 그 비르투오소적인 과시적 요소들이 너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고상한 품격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화려함을 강조하기 위해 원래 속도보다 두 배 정도로 빠르게 연주하는 현대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품격의 단점은 강점으로 탈바꿈되기도 했다. 네 개의 악장은 이전에 작곡된 [방랑자 환상곡]을 모델삼아 휴지부 없이 계속 이어져나가며, 서정적인 느린 악장의 주제는 피날레 행진곡 악장의 주제로 변형 되어간다.
흥미로운 점은 리스트가 오케스트라 독주 악기들을 피아노와 결합시켜 사용한 것에 있다. 제1악장에서 클라리넷 독주가 나오는 긴 구절이 그 예이다. 이는 전적으로 리스트의 전형적인 오케스트라적 접근 방식이다. 그의 목적은 언제나 선명성이었으며 바그너를 비롯한 기타 19세기 작곡가들이 집요할 정도로 추구했던 두껍고 칙칙한 텍스추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실내악’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주창자로서 말러나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현대 작곡가들의 현대적 기법을 예견했다. 몇몇 총주 구절들에서만 복잡하고 무거운 관현악법을 구사했다.
사실 리스트가 이런 구절에서 간혹 지나치게 복잡하게 음표를 써넣는 경우도 있다. 금관악기 작법이 둔중하고 품위가 없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느닷없는 트라이앵글로 인해 당대의 평론가 한슬릭으로부터 [트라이앵글 협주곡]이라는 비아냥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리스트 목적은 자신의 생각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음향이 종종 빈약하고 가냘프게 들려도 개의치 않았으며, 또 안전하지만 단조롭고 빼곡한 텍스추어보다는 다양성과 색채를 얻어내는 데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슈만이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악보들과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악보들과 비교만 해도 우리는 이러한 접근 방식의 본질적인 차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낭만주의자에게 드리워진 20세기의 그림자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번보다 훨씬 더 성공적인 작품이다. 이 곡은 1839년에 처음 작곡되었고 그로부터 1861년에 이르는 시기에 지속적으로 개정되었다. 초연은 1857년 역시 바이마르에서 열렸고 출판은 1863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주제들은 1번 협주곡보다 훨씬 흥미로우며 발전적이다. 특히 첫 도입부 주제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음향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이와 똑같은 형태는 그 이후 전혀 등장하지 않고 언제나 아르페지오 혹은 분산코드 형태가 되거나,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장식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이러한 처리 수법에서 리스트의 대가적인 면모가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개성적인 발전 방식이다. 느린 도입부에서 그 다음 알레그로의 전환 역시 탁월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언제 넘어갔는지 인식할 수도 없는 사이에 재빨리 빠른 템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펼쳐지는 군악대 리듬은 저속하긴 하지만 리스트의 최대 걸작 가운데 하나인 이 아름다운 협주곡의 명성을 떨어뜨리진 않는다. 눈에 띄는 점은 그 주제의 변용에 따른 피아노 테크닉의 변화무쌍함이다.
만년의 리스트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를 연상시키는 듯 하나의 주제가 계속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면서, 피아노의 신답게 그 변용에 따라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피아노 테크닉을
선보이며 전적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음향의 효과에 몰입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최면적인 효과 덕분에 리스트는 낭만주의 음악사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끌어냈다고 평가받았지만 이후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했다. 다만 그가 피아노 협주곡 양식에서 새롭게 완성해낸 순환주제적 성격(자신의 교향시 장르에서 전형적일 정도로 사용했던)은 20세기 중반 아르놀트 쇤베르크에 의해 온전히 계승되었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장식적인 측면에서도 전무후무한 업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장식의 의미는 쇼팽이 사용한 장식의 의미와는 전적으로 달랐다. 쇼팽에게 음악적 장식은 음악의 선율과 프레이즈를 그 신비함 속에 가두어버리려는 구심점이다. 그러나 리스트에게 있어서는 선율과 영감을 힘있게 밀어내는 원심점이다. 또한 장식적인 고음부는 리스트에게 있어서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표현 구역이 아니라, 신비적인 전율과 번득임 속에서 자신만의 역동성을 발산할 수 있는 창조적인 장소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리스트는 단순히 장식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2류 작곡가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는 실제로 과거의 거장인 팔레스트리나, 랏수스, 그레고리오 성가 등의 연구에 기초해 음악적 간결함, 의고성, 비장식성을 발전시켜 나갔는데 여기에는 항상 불안한 감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노라면, 느린 악장에서의 아름답고 처연한 멜로디에 배어있는 불안함이 빠른 악장의 난폭할 정도로 씩씩한 멜로디에 의해 정복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1인칭적인 관점에서 펼쳐지는 내면 독백으로서의 피아노 협주곡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같은, 의식의 흐름으로 확장되는 점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얼마나 현대적인 기법인가. 아니, 당시로서는 터무니없이 급진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9세기를 박차고 20세기의 격동을 향한 창문을 제시한 프란츠 리스트. 그는 고급과 저급, 낭만과 현대, 세속과 종교를 오가는 영원한 오딧세이와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