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Violin Concerto 'The Four Seasons' Antonio Vivaldi (1678 - 1741)
봄의 제 1악장은 ‘봄이 왔다’로 시작된다. 이윽고 ‘새들은 즐겁게 노래하며 봄에 인사한다’로 이어지며 음악도 그 정경을 묘사한다. 새들의 노래, 봄바람의 속삭임, 목동들의 춤.
제2악장 여름에서는 더위에 허덕이는 농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폭풍우.
제3악장 가을에서는 봄의 요정과 목동들의 전원무곡으로 이어진다. ‘가을’에서는 수확의 기쁨, 아름다운 전원의 서정.
4악장 ‘겨울’에서는 벌거숭이가 된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는 삭풍, 따뜻하고 즐거운 난로, 얼음 위를 달려가는 사람들, 이윽고 남쪽에서 다시 불어 오는 봄바람.
The Four Seasons 클래식 음악과 인연이 멀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비발디(Vivaldi)의 ‘사계’를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영어로 The Four Seasons 라고 불리우는 이 음악,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한국에서 처럼 열열히 환영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Four Seasons’ 연주로 정평이 있는 ‘이무지치(IMUSICI)’ 합주단의 CD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를 계속하였으며 이밖의 악단이 연주한 CD도 나왔다하면 불티나게 팔리곤 하였다.
그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비발디의 ‘사계’는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는 곡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정상이 아니라고 할 정도다. 그런 탓으로 일부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정도는 누구나가 아는 음악이 아니냐고 오히려 평가 절하하려는 경향마저 있다. 가령, 한 청년이 여자친구로부터 클래식 음악 중에서 무슨 곡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이때 언뜻 머리에 떠오른 것이 비발디의 ‘사계’였지만 순간 머뭇거리게 되는 분위기. 그래, 고작 그렇게 흔해 빠진 비발디의 ‘사계’냐고 핀잔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대답을 꺼리게 되는 그런 야릇한 분위기 말이다.
음악에서 뿐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볼 수 있는 경향이기 때문에 한국은 분위기의 나라라는 말을 듣게 되지만 클래식 음악이라면 심각한 것, 어려운 것, 복잡한 것을 아는척 해야만 애호가 축에 낄 수 있다는 웃지 못할 분위기를 미국 에서까지 느낄 정도다. 비발디는 1675년,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바흐보다 10년 전에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다. 1693년, 수도승이 되었으며 머리카락 색깔이 빨개서 ‘붉은 사제’라고 불리기도했다.
1704년에는 ‘피에타’ 음악학교의 교단에 섰으며 이 음악학교에 있는 동안 성악, 기악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새로운 시험을 거듭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740년, 세상을 떠나기 3년 전까지 이 학교에 재직하였고 그 기간 중에 수시로 국외로 연주여행을 떠나 당시의 최고의 바이올린 주자로 불렸다. 작곡가로서는 약 40개의 가극 외에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하였으며 바이올린 협주곡 79, 바이올린 소나타 18, 각종 악기를 위한 협주곡 65 등, 수 백곡을 남겼다. 요한.세바스챤.바흐가 한때 비발디에 큰 관심을 기울여 그의 음악을 교본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비발디의 몇가지 협주곡이 바흐에 의해서 편곡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비발디는 합주 협주곡의 양식을 완성시켰고 독주 협주곡의 양식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후세에 남긴 공적이 크다. 그러나 이른바 베네치아 악파(樂派)의 대작곡가로서 그 진가를 정당하게 인정받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음악사를 읽을 때 ‘표제음악’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것은 낭만악파에 속하는 베를리오즈(Berlioz)의 ‘환상 교향곡’이나 리스트(Liszt)의 ‘전주곡’처럼 순수한 기악곡에 제목을 붙임으로써 그 음악이 제멋대로 해석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작품의 음악적, 시적, 사상적, 철학적 이념을 확실하게 전달하자는 그런 음악이다.
표제음악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다섯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악장마다에 제목이 붙어 있다. 제1악장 ‘꿈, 정열’, 제2악장 ‘무도회’, 제3악장 ‘들의 풍경’, 제4악장 ‘단두대에의 행진’, 제5악장 ‘사바트의 밤의 꿈’. 베를리오즈는 이 ‘환상 교향곡’ 음악에 앞서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 예술가가 사랑에 실패하여 인생에 절망하고 음독자살을 기도하지만, 약은 치사량에 못 미쳐 그는 고통스러운 잠 속에서 기괴한 환상을 본다’는 말을 적고 있다. ‘환상 교향곡’은 극히 드라마틱하며 변화무쌍한 관현악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완벽한 통일감을 지닌 음악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편 베토벤은 어떨까. 그가 아홉개의 교향곡을 썼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베토벤의 교향곡 중에서 그 중 널리 알려진 작품, 제6번 ‘전원’은 매우 이색적이다. 악장이 다섯개라는 것도 그렇고 악장마다에 표제가 달려 있다는 것도 다른 교향곡에서는 볼 수 없다.
제1악장부터 ‘시골에 왔을 때의 유쾌한 마음’, ‘시냇물가의 정경’, ‘시골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 ‘뇌우, 폭풍’, ‘목동들의 노래 ? 폭풍후의 기쁨과 감사’. 이 교향곡 역시 표제음악임에 틀림이 없다. 이렇게 생각할 때 비발디의 ‘사계’도 표제음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표제음악’이라는 말은 예를 들면 바그너, 림스키.콜사코프, 리히아르트.슈트라우스, 무조르그스키 등 표제음악의 걸작을 남긴 작곡가들이 19세기에 활약하였기 때문에 19세기라는 시대의 제약을 받기는 하나 그들보다 1세기 전에 활약한 비발디의 ‘사계’를 표제음악이라고해서 안 된다는 법은 없을 것이다.
비발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협주곡을 많이 쓴 사람이다. ‘사계’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이름을 붙인 네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이루어졌다. 협주곡은 보통 각각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는 만큼 ‘사계’는 모두 12개의 악장이며 그 악장마다에 소네트(sonnet)라고 부르는 이른바 14행시가 씌어 있어 음악은 그 소네트가 묘사하는 내용에 따라 진행된다. 지금으로부터 280여년 전에 비발디가 느낀 계절에 대한 정서와 이미지가 그의 ‘사계’를 듣는 순간, 오늘날을 사는 우리 마음 속에 되살아난다는 것은 희한하다기 보다 놀라운 일이다. 비발디는 같은 형식의 협주곡을 많이 썼기 때문에 어떤 곡이 어떤 곡인지 분간키 힘들다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몇 번씩 들어보면 미묘하게 표정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테크닉이 얼마나 놀라운 가를 우리는 그의 ‘사계’ 속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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