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zigane, Op.76
for violin & orchestra
라벨 / ‘치간느’
Joseph Maurice Ravel 1875-1937
라벨의 <치간>은 1924년 연주회용 랩소디(rhapsodie de concert)로 작곡되었으며(후에 라벨 자신이 관현악 반주로도 편곡), 헝가리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옐리 다라니(Jelly d'Arányi, 1895-1965)에게 헌정되었습니다. 1922년 옐리 다라니는 한 작은 연주회에서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였는데, 라벨은 그녀에게 집시음악을 연주해줄 것을 부탁하였고 그녀는 다음날 아침이 되기까지 곡에 곡을 이어 집시음악을 연주하였다고 합니다. 감명을 받은 라벨은 그녀를 위해 특별한 곡을 쓰기로 마음먹고 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합니다.
라벨은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을 <치간>의 모델로 삼는 동시에 이 곡을 통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의 기교에 애정 어린 마음을 담았습니다. 헝가리 민속무곡 차르다시(csárdás)를 바탕으로 느리고 긴 무반주 카덴차로 시작되어 차츰 격정이 고조되어 가면서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가 마음껏 과시되고 있습니다. 초절기교의 향연이 <치간>의 본질입니다. 라벨은 자신에게 어려운 과제를 부여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왈츠 리듬만으로 된 <라 발스>,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볼레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등이 그러한 라벨의 열정의 소산입니다.
*치간(tzigane_‘지간’으로도 발음합니다)은 ‘집시, 보헤미아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독일어로는 치고이너(Zigeuner)라 하며, 스페인에서는 히타노(gitano), 이탈리아에서는 징가로(zingaro)라고 합니다. 공연 프로그램 안내나 웹에 올라온 글에는 ‘찌간느’라 쓰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관행이더라도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치간’ 또는 ‘지간’으로 표기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치간’으로 표기^
지네트 느뵈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 1919-1949)는 20세기 바이올린 역사에서 가장 아깝게 요절한 천재로 기록되고 있다. 1919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10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 불과 8개월 만에 1등상을 받고 졸업했을 정도로 천부적 재능을 지녔다. 16세 때인 1935년 비네야프스키 콩쿠르(Wieniawski Competition)에서 금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여겨지는 러시아 출신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27세)를 제치고 우승하였다.
지네트 느뵈는 카를 플레슈와 조르주 에네스쿠에게서 사사했으나 어느 특정 악파를 대표하고 있지는 않다. 그녀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에게 가장 잘 알맞다는 것이면 그 어느 악파로부터도 다 따왔다. 이러한 그녀의 특성은 활을 잡는 모양으로 모든 바이올린 연주의 권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는 어떤 날은 하이페츠처럼, 다른 날은 프란체스카티처럼, 또 어떤 날은 티보 같은 운궁법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을 관찰한 빈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그녀에게 사람들이 이끌리는 것은 그녀의 실제 연주와 그 비범한 개성 사이에 존재하는 완전한 조화이다. 어떤 특별한 악파에 대한 편향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그녀의 오른손은 비할 바 없는 집중력을 지니고, 그리고 고귀한 감수성의 강한 정신에 이끌려서 톤의 갖가지 기술적인 변화를 지배한다. 그러나 온갖 광채를 내뿜으며 이룩하는 그 톤과 악마적인 피치카토를 튕기기 위해 그녀가 활을 조종하는 그 믿어지지 않는 확실함만이 지네트 느뵈의 개성에서 뛰어난 특징이라는 것은 아니다. 창조하고 또 창조한다. 여기에 그녀의 재능이 있는 것이다.”
1945년에는 런던에서 라벨의 <치간>을 연주하여 열광적인 찬사를 받고, 1946년에는 시벨리우스의 협주곡도 녹음했다. 1946년 런던에서 그녀의 베토벤 협주곡을 듣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49년 10월 20일 살플레이엘에서 연주회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집시음악
인도 북부 지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집시(자기들 스스로는 Rom이라 불렀다) 집단은 유럽 쪽으로 이주하면서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스페인까지 들어가 정착하였다. 특히 동유럽 지방에 많이 정착하여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에 많이 살았다. 영국에서는 이들을 이집트에서 온 유랑민족으로 착각하여 이집트인(Egyptian)이라 했는데 후에 e음이 없어지고 집시(Gypsy)가 되었다. 이들은 유럽 전 지역을 유랑하면서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으며 오늘날에도 이리저리 내쫓기고 있다. 음악은 이들 생활의 주축이 되어온 문화이지만 정착지의 지방음악과 자기들 고유의 음악을 잘 조화시키면서 늘 새롭고 독특한 음악을 발달시켜 왔다.
클래식에서는 집시음악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들이 많은데 그중에 유명한 것으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라벨의 <지간> 등이 있다. 버르토크(Bartók), 에네스쿠(Enescu), 코달리(Kodály) 등 헝가리계의 작곡가들이 집시음악과 동유럽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곡들을 많이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