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Kosaken Chor / Don Cossack Choir
Don Kosaken Chor Serge Jaroff
* 세계 3대 합창 중의 하나인 <돈 코사크 합창단 / Don Kosaken Chor / Don Cossack Choir>에 대해 논하자면 세르게 야로프(Serge Jaroff)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돈 코사크 합창단을 만들고 키워 낸 지휘자 세르게 야로프는 1897년 코사크 땅의 돈 강변의 카스트로마에서 재목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우람한 체구를 지닌 코사크인들 사이에서 유난히도 몸집이 왜소했던 야로프는 주위 친구들로부터 멸시를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걱정이 된 아버지는 아들을 상업학교에 입학시켜 장차 상인이나 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목소리가 뛰어나게 아름다웠던 야로프는 친구의 권유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스크바의 그리스 학교에 들어가 합창 음악에 대해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 후 페테르스부르크(지금의 레닌 그라드)의 황실합창 학교에서 합창 지휘자 훈련을 받았다.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짐에 따라 야로프도 러시아의 코사크 기병 연대에 들어가 장교로 참전하였다. 야로프는 합창 지휘자로서뿐만 아니라 편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손에 의한 많은 편곡은 돈 코사크 합창단 이외에도 온 세계의 남성 합창단에 의해 애창되고 있다. 옛 러시아 속담에 <코사크인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이 있다 세르게이 야로프가 이끄는 돈 코사크 합창단이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야로프의 운명을 바꾸고 코사크 합창단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으로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된 것은 10월 혁명이었다. 이때 레닌이 주도하는 혁명군(노동적군)과 이에 대항하는 제정 러시아군(백위군)의 치열한 싸움은 1922년까지 계속되었다. 반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몰려든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의 외국군의 협력으로 백위군은 잠시 전세가 유리했으나 1918년 8월부터 차리친(지금의 볼고르라드) 공방전 이후 혁명군의 공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맹렬해져서 정부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그 후 계속되는 패주 속에서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목청 좋은 장병을 모아 합창단을 편성하고 지휘자로 5척 단구의 야로프 중위가 선출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돈 코사크 합창단이 탄생하게 된 경위이다.
하지만 전쟁이 혁명군의 승리로 돌아가고 1921년 그들은 터키의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때와 땀으로 절은 남루하기 그지없는 군복에 구멍난 군화를 신은 40명의 합창단은 조국에 대한 향수와 그들에게 닥친 불행한 운명을 노래로 달래며 합창단으로서의 골격을 갖추고 활동하다가 불가리아로 이송되었는데 이즈음 그들은 제법 유명해져서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있던 러시아 공사관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노래를 할 수 있었으며 1922년에 소피아에서 가진 첫 공연은 대성공을 거둔다. 1922년 전쟁이 종결되고 러시아가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자 그들은 오스트리아로 망명해 본격적으로 자유롭게 연주 활동을 시작한다. 바야흐로 돈 코사크 합창단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듬해인 1923년에 빈의 호프브르그 대 연주 홀에서의 공연을 시발점으로 하여 유럽 투어에 나섰다.
런던에 갔을 때는 인도 국왕의 궁전에 초대되어 연주회를 열었다. 마침 그곳에 함께 초대되어 와 있던 러시아의 세계적인 베이스 가수로서 혁명 후(1922년) 망명한 표도르 샬리아핀(1873-1938)이 야로프의 어깨를 껴안으면서 <러시아의 주막에서 한잔 걸치고 싶군. 번쩍이는 궁전도 호화로운 호텔도 다 역겨워졌어. 그 고향의 주막에서 한잔 걸치면서 노래하는 러시아인의 마음이 요즘 가슴 속에 끓어오른다네>라고 속삭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역시 망명하여 미국에 살고 있던 작곡가 S 라흐마니노프(1873-1943)가 매년 스위스에 요양차 왔을 때 야로프는 직접 그에게서 많은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돈 코사크 합창단에게 미국 공연에 대한 요청이 있었으나 근대적인 기계 문명의 나라 미국에서 투박하고 거칠며 흙냄새 물씬 풍기는 러시아 민요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망설이며 선뜻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국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전 단원은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어 영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본거지로 삼아 전세계를 쉴 새 없이 1만 회 가까운 순회 공연을 펼치는 바쁜 나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1979년 야로프는 물론 많은 단원들이 죽었거나 노쇠하여 합창단을 운영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파리 공연을 마지막으로 합창단을 공식으로 해체하게 된다. 더이상 그 빛나는 절묘한 인간의 목소리의 앙상블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돈 코사크 합창단(세르게 야로프 지휘)은 혼성합창단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고 여성적인 팔세토 (falsetto, 가성) 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을 내는 바소 프로폰도 (basso profondo) 의 거칠고 남성적인 소리로 저음에서 고음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소리를 이끌어 낸다. 돈 코사크는 가슴이 저미는 종소리, 음산한 바람소리와 같은 러시아적인 정서와 밧줄로 배를 끄는 인부들의 고달픈 삶의 무게를 토해내는 페이소스를 가장 잘 표현한 합창단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애달픈 <망향의 아픈 마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지금 얼마 남지 않은 몇 개의 레코드로 밖에 들을 길이 없다.
1921년 창단 후 1979년 까지 세르게 야로프 지휘로 운영되던 돈 코사크 합창단을 <Don Kosaken Chor Serge Jaroff>라 구분하여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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