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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란 독서하거나 집필 혹은 사색할 장소는 아니다. 어떤 진실된 심적 단련이나
정신의 드높은 비상(飛翔)을 즐기기에는 해변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그런데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기대에 부풀어 책과 원고지와 회답이 늦어진
편지와 작업목록
그리고 훌륭한 의욕까지를, 색이 바랜 마대(麻垈)
가방에다 툭 불거지도록 잔뜩 집어넣고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책장은 들추어보게도
되지 않고
원고지 꾸러미는 구름 한점 없는 하늘처럼 고스란히 동댕이쳐 있다.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쓴다거나는 물론이고 사색에 잠기는 일마저도 불가능하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다.
처음엔 지쳐 떨어진 몸이 옴쭉달싹을 못하게 한다. 모처럼의 의욕도, 온갖 조촐한
결심도 어쩔 수 없이 해변의 원시적 일렁임 속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부서지는 파도, 모래톱 위를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왜가리의 느릿느릿한 날개 소리는,
도시의 아우성치는 소음과
빈틈없는 일과(日課), 예정 같은 것을 말끔히 잊어
버리게 한다. 말하자면 바다가 그렇게 만든 편편한 해변에 드러누어 그 해변과
하나가 되고 만다.
어제의 온갖 어지럽던 흔적이 오늘의 밀물로 말끔히 씻겨진
바닷가처럼 아무런 꾸밈도 없고 탁 트이고 텅빈 마음이 되어.
마음은 해변을 간질이는 그 게으른 물결처럼 표류하고, 뛰놀고, 부드럽게 굽이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아무도, 이 한가하게 일렁이는
무념(無念)의 파도가
의식(意識)있는 마음의 평온한 모래톱에 무슨 우연의 보물을 밀어 올려줄는지를 모른다.
그것이 아주 동그란 조약돌일는지, 아니면 깊은 바다 밑으로부터 떼밀려 온
보기 드믄 조개 껍데게일는지를, 어쩌면 그것은 소라 고둥이나 달고둥,
아니면
배낙지조개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로 그런 보물을 찾아내려 하거나
파내어서는 안 된다.
정말이다! 바다 밑을 파 뒤집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모든 것이 허사가 될 것이다.
바다는 너무 극성스럽고 욕심을 부리고 안달하는 사람들에겐
보답을 베풀지 않는 법.
보물을 찾아 파헤친다는 건 무엇인가, 초조하게 안달하고 탐욕스럽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은 곧 신념의 결핍을 나타낸다.
참을성, 참을성, 참을성--- 이것이 바로 바다의 가르침인 것이다. 참을성과 신념.
사람들은 텅 빈, 시원스레 트인, 허심틴회한 해변 같은 마음으로
바다가 보내는 선물을 기다려야 한다.
해변을떠나며
내 마대 가방을 집어 든다. 모래가 발 밑에서 부드럽게 허물어진다.
묵상의 시간은 이제 거의 끝나 버렸다.
일상 생활의 단순화, 내적인 성실, 보다 완전한
인간 관게를 위한 모색--이는 하나의 제한된 견해가 아닐까? 이런 요체를
얕잡아 보기 쉽지만 그것을 젖혀 놓고 살 수는 없다. 그것들은 강을 이루는 물방울
같은 것이다. 생명 그 자체의 본질이다. 커다란 책임에서 도망 칠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이해와 해결 방법을 향해 진정한 한 걸음을 내디뎌 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출발할때, 우리는 원의 외곽으로부터 펴져 나간 가치있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어떤 즐거움을, 이곳의 어떤 평화를 그리고
나와 너와의 어떤 사랑을 찾아내게 된다. 파도 소리가 등뒤에서 메아리친다.
인내--신념--관용, 하고 바다는 내게 가르쳐 준다. 단순화--고독--단속성
그러나 가보아야 할 해변은 이곳 외에도 많이 있다. 이번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바다의 선물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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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다의 선물-린드버그(A.Lindber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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