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그리움 / 이해인
마르지 않는
한 방울의
잉크빛 그리움이
오래전 부터
내 안에 출렁입니다
지우려 해도
다시 번져 오는
이 그리움의 이름이
바로 당신임을
너무 일찍 알아 기쁜것 같기도
너무 늦게 알아 슬픈것 같기도
나는 분명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잘 모르듯이
내 마음도 잘 모름을
용서 받고 싶습니다....
너에게 가겠다/ 이해인
오늘도
한줄기
노래가 되어
너에게 가겠다
바람 속에 떨면서도
꽃은 피어나듯이
사랑이 낳아준
눈물 속에
별로 뜨는
나의 시간들
침묵할수록
맑아지는 노래를
너는 듣게 되겠지
무게를 견디지 못한
그리움이 흰 모래로
부서지는데
멈출 수 없는
하나의 노래로
나는 오늘도
너에게 달려가겠다
보고 싶은데 / 이해인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
오늘은 이 말이 새롭다
보고 싶은데
비오는 날의
첼로 소리 같기도 하고
맑은 날의
피아노 소리 같기도 한
너의 목소리 들을 때 마다
노래가 되는 말
평생을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말
사랑 한다는 말 보다
더 감칠맛 나는
네 말 속에 들어 있는
평범 하지만 깊디 깊은
그리움의 바다 보고 싶은데
나에게도 푸른파도 밀려 오고
내 마음에도 다시 새가 날고
보고 싶은데...
비가 전하는 말 / 이해인
밤새 길을 찾는 꿈을 꾸다가
빗소리에 잠이 깨었네
물길 사이로 트이는 아침
어디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나를 부르네
만남보다 이별을 먼저 배워
나보다 더 자유로운 새는작은 욕심도 줄이라고
정든 땅을 떠나 힘차게 날아오르라고
나를 향해 곱게 눈을 흘기네
아침을 가르는 하얀 빗줄기도
내 가슴에 빗금을 그으며 전하는 말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이라고 -
오늘은 나도 이야기하려네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
꽃잎인연 / 도종환
몸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만큼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만큼이었을까.
가지 끝에 모여와 주는
오늘 저 수천 개 꽃잎도
때가 되면 비 오고 바람 불어
속절없이 흩어지리.
살아 있는 동안은
바람 불어 언제나 쓸쓸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도
빗발과 꽃나무들 만나고 헤어지는 일과 같으리.
당신은 나에게 언제나 그리움만 줍니다 /황수정
오후에 갑자기 비가 왔습니다.
창 밖으로 비를 피해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며서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오늘 우산을 갖고 나왔을까?
갑자기 내린 이 비를 잘 피하고 있을까?
비오는 거리를 보면서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을 잊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 처음 만난 날도 비가 왔습니다.
짙은 회색 점퍼에 달린 모자를 꺼내 쓰면서
나에게 우산을 건네 줄 때의 그 미소를,
가슴이 떨린다는 것이
어떤 거란걸 깨닫게 해 준 그 미소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미소를 떠 올리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부딪쳤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멍해져 버렸습니다.
이미 당신은 이 세상에 없는데
아직도 당신과 내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다니...
난 또다시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껴야만 했습니다.
나에게 당신은 언제나 그리운 사람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언제나 그리움만 줍니다...
기도 / 원태연
그 사람 아마도
무엇하나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리고
그사람 누구하나
마음 기댈 곳 없는 사람일 겁니다
그래서 그사람
언제나 어느순간에서나
이가시린 외로움에
떨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런 사람
내게 보내주십시오
너무나 필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는 해줄 줄 아는 사람
아무것도 못하지만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사람과
사랑하며 살다 죽고싶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 꼭 같은 사람
그런 사람 만나
사랑만 하며 살다 죽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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