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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이 되기 싫은 까닭 / 이 해인

P a o l o 2006. 9. 22. 16:34








남이 되기 싫은 까닭



이해인



우리는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깃을 꽂고 산들 무엇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엇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담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 마디



먼지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가는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 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출처 : 남이 되기 싫은 까닭 / 이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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