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종교음악

[스크랩] 젤렌카: 성자를 위한 미사, ZWV 20 - Frieder Bernius cond.

P a o l o 2010. 8. 11. 19:33

Missa Dei Filii - ZWV 20

젤렌카: 성자를 위한 미사, ZWV 20

Jan Dismas Zelenka 1679 ~ 1745

I. Kyrie (전 악장연주)

 

   

Composed by Jan Dismas Zelenka
Performed by Tafelmusik Baroque Orchestra, Stuttgart Chamber Choir
with Christoph Pregardien, Nancy Argenta, Michael Chance, Gordon Jones
Conducted by Frieder Bernius

Audio CD (May 1, 1990)
Label: Deutsche Harmonia Mundi 1990
Copyright: (P)1990 BMG Music

I. Missa Dei Filii for soloists, chorus, instruments & continuo in C major, ZWV 20: Kyrie

1. Kyrie Elesion (Coro)
2. Christe Eleison (Aria: Soprano)
3. Kyrie (No. 1 Da Capo)

II. Missa Dei Filii for soloists, chorus, instruments & continuo in C major, ZWV 20 Gloria

4. Gloria In Excelsis Deo (Coro, Soprano, Alto, Tenore, Basso)
5. Qui Tollis Peccata Mundi (Soli: Soprano, Tenore, Basso)
6. Qui Sedes Ad Dexeram Patris (Coro)
7. Quoniam Tu Solus Sanctus I (Coro)
8. Quoniam Tu Solus Sanctus II (Coro)
9. Cum Sancto Spiritu I (Coro)
10. Cum Sancto Spiritu II (Coro)

     

     

얀 디스마스 젤렌카 (Jan Dismas Zelenka : 1679 ~ 1745)

독일 바로크의 꽃, 드레스덴의 교회음악을 선도했던 젤렌카의 화려한 부활은 우리 시대의 문화적 사건이라고 부를만 하다. 바흐와의 관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은 자체만으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성부(聖子)를 위한 미사’는 20곡이 넘는 젤렌카의 미사곡 중에서도 젤렌카의 음악을 연주하는 여러 지휘자들의 음반에 오를 만큼 돋보이는 작품으로서, 다양한 악장이 하나의 온전한 사이클을 이루는 독특한 구성과 다양한 색채로 텍스트를 구현하는 오케스트라, 정교하고 화려한 푸가 등 후기 바로크를 대표할만한 기념비적 대작이다. 합창음악의 대가 베르니우스가 만들어내는 뛰어난 연주 역시 주목할만 하다.

     

     

Jan Dismas Zelenka 1679-1745

젤렌카는 보헤미아 출신의 바로크 작곡가로 모험적이고 위대한 화성적 인벤션과 숙련된 대위법으로 유명하다. 바이올린족 현악기인 더블베이스와 유사한 비올족 악기중 저성부 음역을 갖는 비올로네 연주가이기도 하였다.

젤렌카는 프라하 남동쪽에 작은 도시인 Lounovice pod Blanikem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그곳 오르간 연주자이자 학교교장을 하였다. 젤렌카의 어린 시절에 대해 그리 알려진게 많지않으며, 아마도 프라하의 Clementinum이라 불리는 Jesuit college에서 초기 음악 교육을 받은것으로 추정된다. 젤렌카는 1710년 비올로네 연주자가 되어 드레스덴 궁정의 오케스트라에 연주자로 활동하기 전까지 프라하에 상주하여 지배하던  합스부르크가 프라하 총독을 위해 봉직했다. 젤렌카는 1715년부터 비인에서  당시 저명한 이론가이자 작곡가였던 Johann Joseph Fux 1660-1741에게 대위법을 공부했으며 1719년 다시 드레스덴으로 돌아갔다. 1723년 그의 스승이던 Johann Joseph Fux 의 오페라  "Constanza e Fortezza"의 상연에 참여를 위해서 프라하를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드레스덴에 상주하였다. 그가 베네치아를 방문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지만 어쨋거나, 간접적인 근거 기록이 남아있다.

드레스덴에서 그는 Kapellmeister였던 Johann David Heinichen1683-1729을 보조하는 일로부터 시작했으며, Heinichen의 건강이 쇠약해지자 점차 Heinichen의 직무를 인수받게 되었다. 1729년 Heinichen의 사망했을 때, 그는 저명한 드레스덴 궁정의 악장직에 도전했으나, 악장직은 Johann Adolf Hasse(1699-1783)에게 돌아갔다. 1735년 젤렌카에게는 교회음악 작곡가라는 직함이 주어져 있었다.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교회음악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던 바흐와 같이 좋은 사람들과 사귀었다. 젤렌카는 1745년 드레스덴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그의 삶 중  마지막 해에 쓰여진 작품은 그가 사는 동안 연주되지 못했다. 현대의 젤렌카 음악 연구가인 음악학자 Kohlhase에 의하면 그의 말년의 작품중 몇몇 작품은 엄청난 힘-"visionary power"를 갖고 있다고 한다.

예상한 바대로 젤렌카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종교 작품들이다. 3편의 오라토리오를 포함해 12곡의 미사, 수 많은 종교 음악 소품들이 있다. 젤렌카의 관현악 작품들과 성악작품들은 흔히 기교와 커다란 연습과 노력이 요구되는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작품중 저음악기를 위한 작품들은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에 비해 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연습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보이스트인 하인츠 홀리거 Heinz Holliger가 묘사한 것 처럼, 그의 트리오 소나타 중  "utopian"에서 작곡가가 오보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바는 널리 알려진 것이다.

대 바흐와 젤렌카가 깊은 친분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바흐의 최말년, B minor 미사가 완성될 무렵 바흐의 아들인 C.P.E. Bach가 J.N. Forkel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1945년 드레스덴 폭격으로 그의 많은 자필악보가 유실되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당시 그의 자필 악보는 성당에 보관되어있던 것이 아니라, 강의 북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물론 성당에 보관중이던 약간의 작품이 유실된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그의 작품 중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이제 유럽에서 소외된 Copenhagen과  Glasgow 같은 곳에서도 최근에 그의 작품에 대한 연주가 빈번한 것을 보면, 1960년대에 시작된 "Zelenka movement"젤렌카 복권 운동은 이제 상당한 탄력을 얻은 것 처럼 보인다. 대 바흐가, 멘델스존과 말러와 같은 19세기 작곡가들의 노력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을 견뎌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Jan Dismas Zelenka 역시 바로크 시대의 중심 인물로 정당하게 평가 받아야할 또 한사람의 잠자는 대가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출처 : 언제나 처음처럼
글쓴이 : 자유로움 원글보기
메모 :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