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quin Rodrigo호아킨 로드리고(1901 ~ 1999)
로드리고는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방에 위치한 사군토에서 태어났다. 3세 때 악성 디프테리아로 인해 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정신과 재능으로 오늘날 가장 이름 높은 스페인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 발렌시아 음악원에서 로페스 차바리에게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는데, 이 당시인 1924년에 <후글라레스>를 발렌시아 오케스트라에 의해 무대에 올렸다. 1927년 파리 고등 사범학교로 옮긴 그는 폴 뒤카에게 음악을 배웠고 같은 스페인 출신의 작곡가인 파야의 음악에 감동을 받았다.
1933년 터키의 피아니스트인 빅토리아 카피와 결혼한 그는 스페인으로 일단 귀국했다가 1934년, 다시 파리에서 음악학 등을 공부하였고, 스페인이 내전에 시달리던 당시엔 주로 독일에서 지냈다. 1939년에 귀국하여 마드리드에 정착한 그는 1940년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란훼스 협주곡>을 발표했다. 저음현의 지속적이고 활발한 공명을 통해 아란훼스 왕궁의 시적 정취를 독창적으로 들려준 이 곡으로 인해 로드리고의 명성은 급작스럽게 퍼져나갔다. 특히 제2악장의 주제 선율은 이후 파퓰러 음악이나 재즈를 비롯하여 각종 악기로 편곡 연주되었다.
그의 음악세계는 파야처럼 스페인 민중 속으로 깊이 침투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스페인의 색채를 신고전주의적인 양식으로 소화시켰다. 특히 협주곡에 있어 탁월한 면모를 보였는데 <기타 협주곡 '아란훼스'>이 외에 <어느 신사를 위한 환상곡>(1954)과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1967)이 유명하다. 스페인 저작권 협회(SGAE)에 따르면 그의 <아란훼스 협주곡>은 20세기에 가장 많이 편곡된 클래식 음악으로, 약 50여종의 편곡 음반이 발표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의 버전이었다. . . . . . 에스파냐 발렌시아주(州) 사군토 출생으로,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에스파냐 작곡가이다. 3세 때부터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어 색채의 세계와는 차단되는 대신 음의 세계에 더욱 접근하고 밀착하게 되어,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비상한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다.
파리로 유학하여 폴 뒤카(Paul Dukas)의 제자가 되어 작곡법을 배우고, 엠마누엘 부인과 피로 교수로부터 음악을 공부했다.
1940년 작곡하여 바르셀로나에서 큰 성공을 거둔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랑후에스 협주곡 Concierto de Aranjuez》의 초연이 끝난 뒤 에스파냐내란 후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곡가가 되었다. 대체로 신고전주의적 성격이 강하며 민속적인 색채를 훌륭한 관현악 편성과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선율을 결합시킨 것이다.
1991년 에스파냐 국왕 후안 카를로스로부터 에스파냐 음악발전에 미친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랑후에스정원의 후작 칭호를 하사받았다.
기타 음악으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관현악곡 《어느 신사를 위한 환상곡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 《어린 시절을 위한 5개의 소품 Cinco piezas in fantiles》 《음유시인 Juglares》 《정원음악 Musica para un jardin》, 발레곡 《국왕의 춤 Pavan Real》, 오페레타 《이별의 소나타 Sonada de Adios》, 피아노곡 《아침 수탉의 전주곡 Prelude au Coq Matinal》 등도 작곡했으며,
협주곡에 《아랑후에스 협주곡》 외에 《세레나데협주곡 Harp Concierto Serenata》 《여름협주곡:Concierto de Estio》 《영웅협주곡 Concierto de Heroico》 등을 작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