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ac Manuel Francisco Albéniz i Pascual (May 29, 1860 – May 18, 1909)
알베니즈(Albéniz, Isaac)는 스페인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그의 작품 중에서 스페인 민요에 근거한 피아노 작품이 잘 알려지고 있다.
1860년 5월 29일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의 캄프로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터 음악의 천재성을 보여 1864년 4살의 나이로 바르셀로나에서 첫 공개 연주회를 가질 정도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이유로 그는 피아노곡을 주로 작곡했지만 기타 선율 또한 그의 귀에 늘 가깝게 들리곤 했다.
1867년 7살에는 파리 음악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였다.(그러나 공을 가지고 놀다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13세가 될 때까지 2번 가출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연주여행으로 생계를 해결했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방랑에 대한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냈다. 14세 때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돈이 떨어지자 왕실 하사금으로 브뤼셀에서 공부했다. 15세에 여러나라에서 연주회를 갖기 시작하여, 라이프찌히 음악원에서 잠시 수학하다가 1876년 브루셀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1880년에는 리스트에게 배우고져 부다페스트로 갔었으나, 그는 독일의 라이프찌히에 체류하고 있었다.
1883년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 정착하여 그에게는 특별한 해로 제자이었던 레지나와 결혼도 하고 노음악가 펠리페 페드렐(Felipe Pedrell)를 만나 작곡을 배우며 감명을 받아 스페인 모음곡(Suite Española, Op. 47.) 과 같은 스페인的인 명곡을 쓰게 되었다. 이 스페인 모음곡 가운데 Asturias 라고 불리는 다섯번째 곡은 피아노를 위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타레가(Tarrega, 1852-1909)에 의해 기타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되어 오늘날 클래식 기타 연주자들에게는 아마도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알베니즈는 자신의 오리지날 작품보다는 타레가가 기타로 편곡한 작품을 보다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전에 그는 피아노를 위한 가벼운 살롱 음악을 작곡했지만 1890년경부터는 런던과 빠리에서 극장 음악을 주로 썼고 진지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스페인 음악에서 민족주의 운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펠리페 페드렐에게 사사했으며 1893년에는 파리로 옮겼다. 그곳에서 뱅상 댕디, 폴 뒤카스 등 프랑스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한동안 스콜라 칸토룸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1900년부너 만성 신장염을 앓으며 피아노 음악으로 회귀하여, 1908년에 작곡한 12개의 피아노 모음곡인 Iberia 는 그의 작품에서 오늘날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다. 관현악 작품으로는 스페인 광시곡 (Spanish Rhapsody, 1887) 과 카탈로니아(Catalonia) 가 있으며 말년에 브라이트병이 악화되어 여러 해를 거의 병상에서 보내다가 1909년 48세의 나이로 타국 프랑스의 피레네 산맥의 캄포 레 바인스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스페인 작곡가로서 피레네 북부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명성은 주로 스페인 민속음악의 선율양식·리듬·화성을 사용한 피아노곡에 기인하고 있다. 그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베리아 Iberia〉(1906~09)를 들 수 있는데 대가다운 12곡의 피아노 소품을 묶어놓은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스페인, 특히 안달루시아 정신의 심오한 발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남긴 그밖의 걸작으로는 유명한 〈세비야나 Sevillana〉가 들어 있는 〈스페인 모음곡 Suite española〉과 〈코르도바 Cordoba〉가 포함되어 있는 〈스페인의 노래 Cantos de España〉, 그밖에 〈나바라 Navarra〉·〈D장조 탱고 Tango in D Major〉 등이 있다. 그의 피아노 소품을 관현악용으로 편곡한 곡들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