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recht Durer
“누구든지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사람은 이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을 채용해야 한다”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그림 1. 자화상)가 남긴 말이다.
뒤러는 독일 미술계에서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나란히 손꼽힐 정도로 높이 평가받는 화가.
뒤러에게 초상화를 부탁한 황제 막시밀리안이 그가 올라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사다리를 붙들고 시중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그려진 막시밀리안의 초상화(그림 2)를 두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유머와 포괄적인 보편성이 보이는 그림”이라고 찬양했다.
뒤러와 그의 그림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였던 뒤러와 프란츠.
둘은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틈틈이 그림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육체노동이 너무나 고돼, 그림을 충분히 그릴 수 없었다.
고민하던 프란츠는 “자신이 먼저 일을 해서
뒤러가 미술학교에 다니도록 도와주겠다”며
“뒤러가 성공하면 자신을 밀어 달라”고 말했다.
뒤러는 친구의 원조로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화가로도 크게 성공해 프란츠를 도와주러 돌아온다.
하지만 프란츠는 그동안의 고생으로 뼈마디가 일그러져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상태.
뒤러는 뒤틀려진 프란츠의 손을 붙잡고 통곡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자신을 위해 변함없이 기도하는 프란츠의 손을 보면서
종이를 꺼내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기도하는 손’(그림 3)이다.
뒤러는 이처럼 친구의 희생과 우정을 담은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줬지만,
또 다른 그림 ‘멜렌콜리아 I’(그림 4)으로는 골머리를 썩게 했다.
훗날 ‘미술사학의 우울한 저주’로까지 일컬어진 그림은 손바닥만한 동판화.
그림 속 박쥐 날개에 새긴 `멜렌콜리아 I`의 ‘I’이 숫자 1인지
라틴어 IRE의 줄임말인지에서 시작된 논란은
돌로 깎은 다면체 뒤쪽에 곤로와 집게가 연금술의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불거졌다.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이 그림을
‘뒤러의 정신적 자화상’이라고 해석하면서,
뒤러를 “우울질과 지적인 토성의 영향을 받은
가장 인문주의적인 천재”라고 평한다.
자신의 저서 <인문주의 예술가 뒤러>(한길아트. 2006)에서다.
<인문주의 예술가 뒤러>는 뒤러의 연구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걸작으로 손꼽히는 고전.
저자인 파노프스키는 뒤러의 전 생애와 시대를 꼼꼼히 추적하고,
그의 30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
방대한 참고문헌을 기초로 분석하고 있다.
[북데일리 서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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