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명작 <옷을 벗은 마하 The Naked Maja>와 <옷을 입은 마하 The Clothed Maja>가 걸려 있다. 똑같은 여성이 똑같은 자세로 옷을 벗은 모습과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Goya, Francisco
The Nude Maja
1800
Oil on canvas
97 x 190 cm
Museo del Prado, Madrid
Goya, Francisco
The Clothed Maja
1801-03
Oil on canvas
95 x 190 cm
Museo del Prado, Madrid
두 작품은 모두 1803년 스페인의 재상 마누엘 고도이(Manuel Godoy)의 저택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엄격한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에서 감히 <옷 벗은 마야>를 내걸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고도이는 <옷을 입은 마하>를 걸어둔 벽을 밀어서 한 바퀴 돌리면 <옷을 벗은 마하>가 나오는 비밀 공간을 만들어놓고 사람들과 함께 즐겼다는 속설이 있다.
또 혼자 있을 때는 기분에 따라 두 그림을 바꿔 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옷을 벗은 마하>가 1800년에 먼저 그려졌고, 몇 년 뒤에 <옷을 입은 마하>가 그려졌다. 고야는 왜 두 개의 <마하>를 그렸을까? 이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열쇠는 그림의 모델이 쥐고 있다.
고야는 모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는 고야의 애인이었던 알바 공작부인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는고야에게 그야말로 미의 여신 비너스 같은 존재였다.
고야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집에 걸어두었던 그녀의 또 다른 초상화에서 그녀를 향한 고야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녀가 오른손의 검지로 가리키는 아래쪽에 ‘Goya(고야)’라고 서명하고 그 옆에 ‘Solo'를 써놓았다.
즉, ‘Solo Goya'는 ‘고야뿐’이라는 의미다.
또 그녀의 손가락에 낀 반지에는 두사람의 머리글자를 새겨놓기도 했다.
검지 손가락의 두사람의 이니셜 반지
손가락이 가르키고 있는 발밑의
미술사상 최초의 누드화는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이다.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도 누드화가 그려졌지만 그것은 신을 그린 것이었고, 인간 여성을 그린 누드화는 <옷을 벗은 마야>가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고야는 결국 이단으로 몰려 교회의 심문을 받았다. 공작부인의 유족 측에서도 체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작부인이 ‘나체’ 그림의 모델이 되었을 기라 없다고 주장했다
.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유족들은 심지어 1945년에 묘를 파 전문가에게 유골을 조사하게 했다.
스페인에서는 남에게 알몸을 내보이고 그림까지 그리게 한 것을 죄악으로 여겼기 때문에 조상의 ‘오명’을 없애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의도하지 않은 반응을 불러왔다. 고야의 묘도 이전에 파헤쳐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신문에서는 ‘두 사람은 죽어서도 운명을 같이 했다’라고 쓰며 그들의 연인 관계를 기정사실화 했던 것이다.
한편에서는 마하가 알바 공작부인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공작부인의 초상화와 마하’ 닮지 않았고, 제작 기간이 고야와 공작부인이 밀회를 거듭했던 시기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옷을 벗은 마하>는 재상 고도이의 주문으로 그린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의 알몸을 타인의 주문을 받고 그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하의 모델이 재상의 애인이었던 페피타 투토라는 설에 힘을 실어준다.
투토의 초상화를 보면 확실히 마하와 닮았다. 고도이는 당시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의 애인이기도 해서 왕비의 총애를 믿고 제 멋대로 행동했다.
그는 또 바람둥이답게 권력을 앞세워 유명 화가들의 누드화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런 고도이라면 자신의 애인을 모델로 세우고 <옷을 벗은 마하>를 그리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마하는 지금도 옷을 벗었든 입었든 그 수수께끼 같은 매력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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